Buddha in Comic & Ani-③ 허영만의 ‘식객’과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

단순 미식 정보 전달 아닌
음식과 인생사를 연결한
韓·日 음식만화의 새 장

소소한 저녁식탁에서도
행복의 진리는 담겨있어

▲ 대표 한일 음식만화 허영만의 〈식객〉과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
수자타는 심상치 않은 꿈을 꾸었다. “수자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신 분에게 최초의 공양을 올릴 기회를 놓치지 말라.”

토지신의 목소리는 수자타의 귓전에 쟁쟁했다. 수자타는 정성스럽게 소젖을 짜 일곱 번을 끊인 다음, 정수만 골라 새 그릇에 새 쌀과 함께 다시 끊여 죽을 만들었다.

조용한 거리에서 볼품없는 천을 두른 한 수행자가 나타났다. 수자타는 무릎을 꿇고 준비했던 우유죽을 올렸다. 수행자는 우유죽이 든 발우를 들고 강가로 가서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맛있게 먹었다. 수자타의 우유죽으로 기운을 찾은 수행자는 바른 법을 성취할 자릴 찾아 숲으로 나아갔다.

위 장면은 싯다르타가 고행을 거듭하다 네란자라강의 우루베라라는 마을에서 만난 소녀 수자타가 주는 우유죽을 마시고 기력을 회복하고 정각을 이루는 부처님 일대기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서슬 퍼런 칼날 위에 선 듯한 고행으로 피폐해진 몸으로는 선정의 기쁨도 감당할 수 없음을 안 싯다르타에게는 달콤한 죽 한 그릇이 감로수였을 것이다.

부처님의 생애를 통하지 않더라도 음식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역사를 거듭하면서 인간은 음식 재료를 좀 더 맛있게 먹기 위한 요리를 고안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세상에는 우리가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의 산해진미가 존재한다. 오죽했으면 ‘살기 위해 먹는 것인가, 먹기 위해 사는 것인가’라는 명제가 존재할까.

당연히 만화에서도 식도락 욕구를 채우기 위한 다양한 소재의 작품이 있다. 음식만화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맛의 달인〉은 단행본 100권을 훌쩍 넘긴 장수 만화이고, 중흥기를 이끈 〈쇼타의 초밥(한국명 미스터 초밥왕)〉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신의 물방울〉은 한국 사회에 와인 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중 허영만 화백의 〈식객〉과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은 이전 음식 만화와는 비교해 조금은 색다른 음식만화이다.

한국의 〈식객〉은 대령숙수의 후계자로 꼽혔던 성찬이 전국 팔도 진미를 접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것이고, 일본의 〈심야식당〉은 동명의 식당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인생 군상들의 라이프 스토리를 보여준다. 단순히 음식 정보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한 가지 음식에도 백 가지 인생사가 담겨 있다는 것을 두 작가는 원숙한 작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 〈심야식당(사진 왼쪽)〉과 〈식객(사진 오른쪽)〉의 한 장면. 두 작품 모두 음식과 인생사를 원숙하게 엮으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 초대받은 사람들이 한·두가지 종류의 요리를 가지고 와 정해진 장소에 모여 즐기는 파티)에서 만난 고시생은 자신을 뒷바라지하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애인을 추억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독백한다.

“눈만 뜨면 얼굴을 마주보고 살을 비비고 살던 사람이 죽었어도 시간이 지나면 TV앞에 앉아 코미디 프로를 보면서 낄낄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때 느끼는 죽은 자에 대한 죄책감도 화장터 높은 굴뚝의 연기만큼 빠르게 흩어져 버린다. 때로는 무엇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괴로울 때가 있다.”〈식객 中〉

〈식객〉의 강점은 전국 팔도에 있는 다양한 한국의 음식문화와 요리를 심도 깊은 취재로 전달하면서도 그 안에 우리네 인생을 절절하게 녹아낸다는 데 있다. 이는 미각에 대한 추구이면서도 삶의 대한 성찰을 놓치않는 작가 정신이 투영돼 있다.

〈심야식당〉은 요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소재일 뿐 정확하게는 우리의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심야식당〉의 요리는 이를 먹는 사람들과 많이 닮아 있다.

당장에라도 회칼과 총을 들고 ‘의리없는 전쟁’을 벌일 것 같은 야쿠자는 문어형 비엔나소시지를, 이제는 지명이 없는 늙은 게이는 달콤한 계란말이를 각각 주문하고, 초로의 유랑악사와 유명 요리 평론가는 버터라이스를 시켜 그간 회포를 푼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심야식당〉에는 기적과 같은 신분상승이나 해피엔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식과 손님, 주인장이 존재하고, 이들의 이야기는 너무 슬프지도 않게, 너무 기쁘지도 않게 흘러간다.

분명, 식욕은 인간이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는 욕망이다. 현대인의 비만과 성인병들은 대량생산, 소비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는 감로수로, 누군가에게는 독으로 작용하는 것은 음식이 가진 힘이다.

추억의 음식에서도, 친구와 혹은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탁에서도 우리는 소소한 행복을 만난다. 우리에게 행복이라는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 싯다르타를 정각에 이르게 한 죽 한 그릇도, 오늘 내가 먹는 한 그릇의 식사도 모두 그들만의 인생사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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