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에서 망상이 일어나고
온갖 욕심이 생기는 것이며
큰 고통을 받게 된다
환히 밝아졌을 때
깨쳤다 하며 도통했다 한다
깨친 다음에는 망상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이 경지를 열반이라 한다

 

4-3 귀경례

지심귀명례극락세계아등도사아미타불(至心歸命禮極樂世界我等導師阿彌陀佛) (一拜)

사람이 살아 나가는 데 오고 가는 사람의 왕래가 있다. 자기가 거처하는 집을 깨끗이 청소를 하고 그 다음에는 꽃을 심어 단장한다든지 향을 피운다. 그러면 자기가 거처하는 곳이 곧 성현이라도 거처할 수 있는 집이 된다. 성현 중에도 대표자 격인 부처님을 모셔오기로 한다.

부처님이라고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석가모니부처님. 이에는 인도라고 하는 지역 석가족성(釋迦族姓)이며 시대의 한계성이며, 또 정반왕(淨飯王)의 아들, 마야부인(摩耶夫人)의 아들, 야수다라부인(耶輸陀羅夫人)의 남편, 라후라(羅候羅)의 아버지라는 하나의 국한(局限)된 인간상(人間像)이 떠오른다. 인간적인 국한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이 또한 중요한 사실이다. 인간적인 국한을 받으므로 이 국한을 초탈하여, 만덕을 구비한 그 대인격자의 이상(理想) 아이디어를 우리가 인격화하여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를 부처님의 인격이라고 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릇 모든 덕(德)을 다 거룩하게 갖추신 부처님을 우리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원효대사는 아미타불을 말씀하시기를 무덕불비(無德不備)라고 하였다.

아미타불은 석가모니의 이상인 동시에 전 세계 인류의 이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 이 부처님은 보신불(報身佛) ― 형상이 있는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세 가지 있다고 본다. 삼신불(三身佛)이라는 것인데 첫째는 법신불(法身佛) (Dharmakya)로 진리의 몸뚱이라는 뜻이다. 둘째는 보신불(報身佛) (Kalmakaya), 형상이 있는 또한 업보(業報)가 있는 부처라는 뜻. 그리고 셋째는 화신불(化身佛) (Sambogakaya), 교화(敎化)하는 부처님의 몸.

아미타불은 실재(實在)하는 보신불(報身佛)로서 우주 법계의 덕과 같으며, 우주의 체상(體相)을 구비하였다. 그리하여 열반(Nirvana)의 경지에 있는 부처님이시다. 열반이란 모든 망념(妄念)에서 벗어나 깨달은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이것이 와전되어 흔히들 입멸(入滅)하였다 죽었다는 것을 열반하였다고 쓰는데, 이는 잘못이고 그것은 반니르바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극낙(極樂)을 역시 천당(天堂)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기독교의 천당은 지옥(地獄)에 대한 것으로 심판(審判)에 의하여 선악(善惡)의 보상(報償)을 받는 것이라고 하지만 베다(Veda) 성전(聖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불교에는 그런 것이 없다. 이런 것은 불교의 근본 문제도 아닐 뿐더러 이를 부인하는 것이며 극락세계란 천당과는 완전히 다르다. 극락(極樂)은 극고(極苦)와 대비된다.

이 두 개의 세계는 누구의 심판에 의한 것도 아니고 선악이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절대경(絶對境)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들이 지금 많은 고통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것은 밝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이것은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밝지 못한 여기에 우리들이 매어달려 헤매고 허우적거린다. 이에서 망상이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남에 따라 온갖 욕심이 생기는 것이며 욕심을 만족치 못할 때에 큰 고통을 받게 된다.

무명이 오관(五官)을 통해서 움직이는 동안 욕망을 충족시킬 때도 있고, 그리 못할 때도 있어 많은 고통을 받는다. 이를 칼마(Karmr)라고 하여 업(業)이라고 하는 그것이다. 나는 이것을 ‘짓’이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깨칠 것 같으면 우리들은 이제 망상에 움직이지 않고 모두 환하게 밝아진다. 환히 밝아졌을 때 우리는 이를 깨쳤다고 하며 도통(道通)하였다고 한다. 깨친 다음에는 망상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깨쳤다느니 하는 이 경지를 열반(涅槃)이라고 하는 것이다. 깨쳤다 할 때에는 커다란 광명(光明)이 있다. 오로지 광명뿐이다. 이것을 도통했다고도 한다.

광명이 있으면 그저 환히 밝기만 하다. 어두운 것은 왜 어두운가? 무슨 원인이 있는 것인가? 어둠, 그 자체를 포착하려 들면 퍽이나 어두워진다. 그러나 광명이 있으면 어둠은 사라진다. 어두운 것은 광명이 없어졌을 때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비쟈(Abija) 무명(無明)이란 것은 깨치지 못하였을 그때에 있는 현상이다. 무명이 없어졌다, 할 때는 우리들이 부처가 되었다. 깨쳤다 할 때다. 그러므로 깨쳤을 그 때에는 우리에게는 환희와 보은(報恩)과 대자대비(大慈大悲)가 있고 오직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따름 아무런 고(苦)가 없다는 그때를 일컬어 부처님이 대각(大覺)을 성취했다고 한다.

이 지경이 극히 낙되는 곳, 극낙세계(極樂世界)다.

자기 한 몸으로 우주와 전 인류를 가름할 수 있고, 전 인류가 자기 자신에게 대체될 수 있는 그런 지경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되면 자기와 남이라 하는 그런 차별 관념이 전연 없고 자기와 일체중생, 전사회가 자기다 하는 그런 사명을 깨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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