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사찰 건축-2. 안성 도피안사 향적당

옥상 종루의 '도솔문'은 문없는 문
종교건축물 정체성 집약한 부분
본채, 활공루 '채나눔' 기법 소통 도모
다용도 공간으로 실용성 높여

"형태만 있는 전통 의미없어
재료 바꾼다고 전통 버리는 건 아냐
밖이 안 보이면 나가서 숲을 걸어야"

▲ 현대식 사찰의 원조격인 안성 도피안사 향적당은 콘크리트라는 가장 실용적인 재료로 지어져 불교건축의 새 가능성을 보여줬다.

 콘크리트 사찰, ‘보편’이 될 수 있을까
 소박한 오솔길 끝에 도피안사가 있다. 속세를 떨치듯 도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이지만 절입구에서 만난 건물은 의외로 도시스러운 건물이다. 회색빛 콘크리트에 다홍빛 주련을 걸친 향적당. 건축 잡지에나 실릴법한 건물이 산 중턱 그것도 사찰 안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생경하다. 서체 디자이너 안상수 교수가 쓴 ‘법의수레 미묘법문 굴려지이다’ 같은 한글 주련이 걸린 향적당은 사찰의 당우라기에는 초현대적이고 산 속에 있기에는 이질적인 느낌의 건물이다.

 “보편적인 사찰건축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 시대에 흔한 재료로, 이 시대에 적정한 절 집을 짓자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누가 봐도 ‘저 절은 이 시대에 지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절 집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건축가 이일훈 씨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향적당을 철근콘크리트로 지어 올렸다. 불교건축이 자꾸 전통적 기와집 형태를 답습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전에도 사찰 불사 의뢰가 들어오면 이러한 제안을 내놨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사찰이 변모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공의가 형성되지도 않았고, 있었다하더라도 파격에 가까운 그의 시도는 불교계 정서상 무리였던 것이다. 그러다 현대식 사찰 불사를 생각 중이던 도피안사 주지 송암 스님과 만나게 되었다.

 도피안사가 창건된 때는 1992년. 향적당 설계의뢰를 1999년에 했으니 그 당시 동국대 대각전 등을 제외하고는 현대식 사찰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새 사찰이니 새롭게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통적인 사찰은 다른 곳에서도 많이 짓잖아요. 도피안사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평소에 친분이 있던 홍익대 안상수 교수님이 그러더라구요. ‘불교는 1500년 전 그대로 머물러 있다. 건축을 보더라도 조선시대 복제품은 있을지언정 현대에 어울리는 불교 건축은 없다’고요.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대 건축에 있어서 불교 건축에는 분명히 공백이 존재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동시대인의 아이디어와 불교적 사상이 어울리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송암 스님은 “신라시대에 철근콘크리트가 있었다면 그것으로 절을 지었을 것”이라며 불교 건축물이 시대에 맞게 창의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공통적으로 하던 건축가 이일훈씨에게 도피안사 향적당을 맡겼다.

 향적당 속 다양한 읽을거리
 뜻이 통하니 건축 과정도 수월하게 흘러갔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작업을 하며 서로 입장차만 벌이기 십상인데 두 사람 다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데다 의욕마저 넘치니 일이 수월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향적당에는 스님과 건축가의 합동작업, 콜라보레이션이 등장한다. 종교적 상징물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옥상 위 작은 종루에 도솔문이라 이름 붙인 것도 송암 스님이다. 옥상을 올라가는 이들에게 그대로 ‘경책’이 되곤 하는 난간없는 계단, 그 끝에 자리한 도솔문은 종교건축물이라는 정체성을 집약하고 있는 부분이다. 직사각형의 프레임안에 종이 달린 도솔문에는 정작 문이 없다. 때문에 프레임 안에 허공이 가득차고 색인지 공인지 분간할 수 없는 세계가 구현된다.

▲ 향적당 옥상에 설치된 '문없는 문' 도솔문은 허공과 어우러져 그대로 색즉시공이다.

 크게 본채와 활공루 두 부분으로 나뉜 향적당은 구성이 특이하다. 기둥으로 건물을 높이 들어올리고 남은 빈 공간에는 나무 평상을 늘어놓았다. 다람쥐가 뛰어다니고 바람이 통하는 누각을 현대적 방식으로 재현해낸 활공루다. 그 옆 본채는 여남은 개의 계단을 올라가게 만들어 2층같은 1층 느낌을 연출한다. 전통사찰건축에서 볼 수 있는 기단처럼 높이를 주어 당당하게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담겼다. 지하층의 환기나 채광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 

 이처럼 건물을 두 부분으로 분리시킨 데는 이일훈 씨가 평소 건축설계방식으로 내세우는 ‘채나눔’ 기법이 적용됐다. 채나눔은 전통 가옥에서 사랑채와 안채 등을 분리한 것처럼 건물 고유의 성격을 살려내 각각의 독립된 공간을 부여해주자는 이일훈 씨만의 건축이론이다. 한 건물 안에서 의식주는 물론 쇼핑, 은행, 운동까지 가능한 현대 건축물은 동선을 최소화해 소통을 어렵게 한다는 문제점에 착안, 안과 밖을 나눠 ‘교류’를 만들자는 생각이다. 이러한 기법을 적용시킨 건물로 그는 서울시 건축상(97), 강원도 건축상(98) 등을 수상했다. 그가 설계한 24평짜리 주택은 거실과 다실이 나뉜 까닭에 비바람을 맞고 차를 마시러 가야하지만, 움직임과 커뮤니케이션이 강조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건물은 기존 건물에서 추구되던 효율과 편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설계 6개월, 시공 8개월 끝에 2000년 완공된 향적당은 당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주말마다 향적당을 보기위해 도피안사를 찾아오는 이들 역시 많았으나 그들 중 일부는 낯선 사찰의 모습에 실망해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대로 돌아가기도 했다. 

 겉모양은 다소 차가운 느낌이 드는 향적당이지만, 내부는 나무로 마감해 화사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자세히 보면 활공루 위 천장과 경사로가 있는 기둥 천장도 나무를 덧대어 포근함을 입혔다. 겉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친근한 기분을 안고 경사로를 따라 향적당으로 들어가려는데 출입구가 두 개다. 정면 계단은 종무소로 이어지고 건물 왼쪽에 있는 출입구는 2층으로 갈 수 있는 계단으로 통한다. 그런데 입구 경사로가 유난히 좁다 싶은가하면, 경사로가 끝나는 곳의 계단은 또 이상하게 넓다. 이일훈 씨는 “전통 건축에서 좁은 문을 통해 넓은 마당으로 나가는 것처럼 다양한 길과 공간의 경험을 통해 다채로운 느낌을 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건물 외관에 차곡차곡 담긴 건축가의 뜻은 내부에서도 이어진다. 향적당 1층에 자리한 종무소 너머 공양간은 특이하게도 좌식이다. 나무탁자 여러 개를 늘어놓아 소모임 등 다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 ‘최소 공간, 최대 인원’을 충족시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다. 

 이처럼 향적당은 공간 용도를 규정해두지 않고 사용자 편의에 따라 쓰임에 탄력성을 두었다. 선방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2층 활공루 건물도 그 중 하나다. 본채에서 좁은 복도를 따라 가면 나오는 선방은 현재 차실로 활용되고 있다. 짧은 복도를 일직선상으로 내어 바로 통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한번 꺾어줌으로써 길을 확장했다.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늘려 살기’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채나눔기법이 적용된 결과다. 산중 가람에서 가장 깊숙이 자리한 선방을 현대적으로 재현해낸 것이기도 하다. 동선은 늘었지만 송암 스님은 “걸으면서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며 향적당 중 마음에 드는 곳으로 이 복도를 꼽았다. 
 

 마음을 비워내고 들어간 활공루 안은 창문이 유난히 작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을 법도 하지만 천장에 햇빛을 받을 수 있는 ‘빛우물’을 내어 채광을 보완했다. 격자무늬로 낸 장식은 창문에 설치한 한옥문 모양의 덧창과 어우러지며 방안을 부드럽게 밝힌다.

▲ 창문을 좁게 내고 천장의 빛우물을 통해 채광을 보완한 향적당 활공루 위 선방.
 처음에 송암 스님은 “산에 있는 절인데도 창밖의 숲이 보이지 않는다”며 창문크기를 넓혀달라고 건축가에게 주문했다. 그러나 건축가 이일훈 씨는 밖이 안 보이게 하는 것이 자신이 의도한 바라며 “숲을 보고 싶으면 편하게 앉아서 보지 말고 밖으로 나가 숲을 걸으면 더 좋다”는 뜻을 전했다. 건물에 미묘법문이 녹아 든 셈이다.

 불교 건축의 새 가능성을 실험하다
 불교적 전통성을 계승하면서도 실용성을 잃지 않는 향적당이지만, 이를 납득시키기 위해 개최한 설명회에서는 신도들 대다수가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콘크리트’란 말에서 ‘불사’가 아닌 불도저식 건축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사실 콘크리트는 현대에서 도시 미관을 해치는 주범으로 손가락질당하고 있지만, 근대건축은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쓰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다. 이전까지만 해도 벽돌, 나무 등 소재의 한계에서 비롯된 획일적 형태에 갇혀있던 건축물은 비로소 마음대로 주물이 가능한 콘크리트를 통해 건축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왔던 것이다. 콘크리트가 보편적으로 쓰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소재에 담긴 무한성에 있다. 도피안사는 가장 실용적인 재료로 불교 건축의 새 가능성을 타진했다. 

 많은 건축물들이 콘크리트로 지어지는 동안에도 사찰이니까 괜찮다며 구습을 고집해온 것은 어찌보면 아만이 아니었을까. 불교 건축이 1500년전 박제품에서 벗어나 시대문화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것이 종교이기 때문이다. 근본을 버리지 않되 많은 수의 사람들과 보편적으로 접할 수 있는 방법을 부단히 찾아내야 하는 것이 종교의 의무인 것이다. 부처님 또한 왕궁 밖으로 스스로 걸어나가 거리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설법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불교 건축에 대한 무조건적인 고집과 성찰없는 답습은 불교 사상을 퇴보시키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이일훈 씨 역시 불교건축이 현대적으로 거듭나야 되는 이유에 대해 비슷한 말을 한다.

▲ 도피안사 향적당을 설계한 건축가 이일훈 씨.
 “형태만 있는 건축은 의미없습니다. 공간과 형태가 같이 존재해야 좋은 건축이죠. 이 시대의 공간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이 시대의 형태가 되는 거지요. 그 과정에서 전통을 살리면서 새로운 건축이 미래의 전통이 된다면 의미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피안으로 가는 길에서 서성이는 우리들에게 도피안사는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에 뚝심있게 발을 내딛으라 말하는 역설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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