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대근본물질 上 (地ㆍ水)

지수화풍은 고유한 성품 지닌
궁극적 실재인 물성
사대는 함께 일어나는 서로의 조건

몸을 단지 성품으로 볼 수 있으면
자아에 대한 잘못된 견해 뿌리뽑혀

땅의 성품인 견고성과 물의 성품
모두 무상하고 자아 없어


물성은 홀로 일어나지 않고 무리지어서 일어난다. 이러한 각각의 무리들은 여러 가지 물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대(四大, 마하-부따루빠)’라고 하는 네 종류의 큰 물성이 있다. 이것은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든 바깥에 있는 물질이든지 간에, 모든 물질이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난다. 사대 이외의 물성은 이 네 가지 물성에 의존하며 그것들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사대는 다음과 같은 물성들이다.

지대(地大): 땅의 성품 즉 견고성
수대(水大): 물의 성품 즉 응집성
화대(火大): 불의 성품 즉 열성
풍대(風大): 바람의 성품 즉 이동성

여기서 말하는 지, 수, 화, 풍은 관습적인 언어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르며 다양한 철학체계에서 말하는 관념적인 사상들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논장에서는 그것들은 자신의 고유한 성품을 지닌 특정한 궁극적 실재인 물성을 의미한다.

지대(빠타위다투)는 단단하거나 부드러운 특성을 가진다(땅의 성품은 단단함, 거침, 무거움, 부드러움, 매끄러움, 가벼움으로 인식된다). 접촉할 때 단단하거나 부드러운 것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이것을 체험하기 위해서 굳이 그 물질에 ‘지대’란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다.
그것은 생기고 사라지는 하나의 성품으로 지속되는 실체가 없고 어떤 ‘자아’ 도 없다. 단단함이 얼마동안 지속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즉시 사라져 버린다. 물질은 업, 마음, 온도, 영양분 등 네 가지 요인들 중 하나에 생성될 조건이 갖추어지는 한 생기고 유지된다. 지금 지각되는 단단함은 방금 전에 일어난 단단함과 다르다.

우리는 만져서 방석이나 의자를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자세히 보면, 접촉으로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단단함이나 부드러움이다. 우리는 전에 경험한 기억에 의해 방석이나 의자를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이 ‘방석’이나 ‘의자’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예에서 우리는 궁극적인 실재와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으나 생각할 수 있는 개념 간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몸과 우리 주위의 바깥 사물들이 다양한 물질들의 구성체라고 보는 것은 우리들에게 새로울 수도 있다. 물질들이 추상적인 범주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드러나는 실재라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물질의 정의를 ‘청정도론’이나 ‘앗타살리니’ 등의 주석서에서 인용하고자 한다. 이런 정의에는 물질의 고유한 특성, 역할, 드러남, 가까운 원인 등이 언급되어 있다. ‘청정도론(11,93)’에서는 땅의 성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지대는 단단함의 특징을 가지며 토대의 역할을 하고 받아들임으로 나타난다…”

각각의 실재는 다른 실재와 구별할 수 있는 고유한 개별적인 특성을 가진다. 땅의 성품인 견고성은 단단함(혹은 부드러움)이라는 특성이 있으며, 불의 성품은 열을 특성으로 한다. 그것들이 생길 때 그러한 특성이 체험될 수 있다. 물질은 다른 물질들 또는 마음과 연관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땅의 성품은 토대, 즉 하나의 그룹으로 함께 일어나는 다른 물질들을 위해 토대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것이 땅의 성품의 기능이다. 예를 들어, 냄새는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며 토대로 견고함[지대]이 필요하다. 그것은 눈을 통해서 체험하는 색도 마찬가지다. 색은 지지하는 지대의 견고함이 필요하며 홀로 일어날 수 없다. 색과 함께 일어나는 지대의 실재인 견고성은 보이지 않으며 색만 보이게 된다. 드러남이란 실재가 항상 나타나는 방식이다. 땅의 성품은 받아들임으로 드러나는데, 그것은 더불어 일어나는 다른 물질들의 토대역할을 하기 때문에 다른 물질들을 받아들인다. 가까운 원인에 관해서는 ‘청정도론’(14, 35)에 따르면 사대의 각 성품들은 나머지 세 가지 성품들을 가까운 원인으로 한다. 사대는 함께 일어나며 서로서로의 조건이 된다.

처음에는 실재들에 대한 정의가 복잡해보이지만, 실재를 탐구해나가다 보면 이렇게 하는 것이 여러 가지 실재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른 실재들에 역할을 하는 방식과 실재가 그들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법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실재를 공부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사물을 보는, 직접적 깨달음을 계발하는 기반이 된다.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긴 경’(맛지마 1, 28)에서 사리뿟따는 사대에 관해서 비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반들이여, 무엇이 땅의 성품입니까? 땅의 성품은 몸 안의 것과 몸 밖의 것이 있습니다. 몸 안의 땅의 성품은 어떠한 것입니까? 몸 안에 있고 고유한 특성을 가진 것에 속하거나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것에 속하건 간에 거칠고 단단한 것은 무엇이든지, 예를 들면, 머리카락, 털, 손발톱, 이,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신장, 심장, 간장, 근막, 지라, 폐, 창자, 장간막, 위속의 음식(영어원본에는 stomach(위장)으로 되어 있으나 청정도론과 한글본 맛지마(대림 역)에 의하면 ‘위속에 있는 소화되지 않은 음식’으로 되어 있다. 열거된 것에 뇌를 추가해서 땅 성품이 우세한 몸의 부분 20가지이다), 대변, 또는 그 외에 무엇이든 간에 거칠고 단단한 것은 안에 있는 (땅의 성품)….”

몸을 단지 성품으로 볼 수 있다면, 자아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뿌리 뽑힐 수 있다. 땅의 성품인 견고성은 몸의 안의 것이거나 또는 몸의 밖의 것이다. 견고성은 또한 우리가 산이나 바위라고 부르는 모든 물질적인 현상에 다 존재한다. 사리뿟따는 비구들에게 땅의 성품의 무상함을 이렇게 일깨워주었다.

“존경하는 도반들이여, 몸밖에 있는 땅 성품이 교란되는 시기가 오면, 그때에 몸밖에 있는 땅 성품이 사라집니다. 오래 된 이 바깥세상의 땅 성품의 무상함을 알 수 있습니다. 벗들이여, 그것이 쉽게 파괴되고, 썩고,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물며, 갈애에서 유래된 이 짧은 수명의 몸뚱아리를 ‘나’ 또는 ‘나의 것’ 또는 ‘나는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여기에는 없습니다….”

땅 성품의 무상함은 지진과 같은 자연재난에서 스스로 드러나지만, 사실은 매순간 물질들은 생기고 사라지며 지속되지 않는다.

물 성품(아뽀다뚜), 즉 응집성에 관하여 ‘청정도론’(11,93)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수대는 흘러내림이 특징이며 강화하는 기능을 하고 서로 결합시킴으로 나타난다.”
물 성품인 응집성은 몸의 감촉을 통해서는 경험되지 않는다. 우리가 물을 접촉할 때 몸의 감촉을 통해서 땅 성품, 열 성품, 바람 성품들은 지각할 수 있지만 물 성품은 지각하지 못한다. 어떤 종류의 물질이 생기든지 생길 때, 물 성품은 함께 생긴다. 그것은 동반하는 다른 물성들을 응집시켜 흩어지지 않도록 한다. ‘앗타살리니’(2, 2권, 3장, 335)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물 성품 때문에 철 등과 같은 것들이 함께 덩어리로 묶여서 단단해진다. 심하게 묶여있기에 단단하다. 돌, 산, 야자의 씨, 코끼리의 엄니, 황소의 뿔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물 성품인 응집성은 이 모든 것을 결합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결합하기 때문에 단단하다.”

위에서 인용한 경에 사리뿟다가 승려들에게 안의 수대(물 성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몸 안에 있고 고유한 특성을 가진 것에 속하거나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것에 속하건 간에 액체나 흘러내리는 무엇이든지, 예를 들면,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피부의 기름기, 침, 콧물, 관절액, 소변(물 성품이 우세한 12가지 몸의 부분이다. 이 중 고름, 소변은 오직 온도에서 생긴 것이고, 땀, 눈물, 침, 콧물은 온도와 마음에서 생긴 것이며 나머지는 네 가지 원인에서 생긴 것이다.-청정도론 2, 94 참조) 또는 그 외의 액체나 흘러내리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안에 있는 (물 성품)….”

우리가 눈물을 흘리거나 침을 삼킬 때 내 몸의 액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자아가 아닌 오직 물 성품일 뿐이다. 사리뿟따는 승려들에게 바깥에 있는 물 성품이 흔들려 마을과 도시와 지역이 파괴될 수 있고 대양의 바다가 낮아져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고 상기시켰다. 그것은 변하기 쉽고 그래서 무상하다. 내적, 외적인 물 성품은 다 무상하고 자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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