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a in Comic & Ani- 아라카와 히로무의 ‘은수저’

도시 학생의 농업고교 적응기
소년만화로는 파격 소재 평가
가축과 애완동물의 차이부터
농업 자본화까지 사유케 해


▲ 아라카와 히토무의 ‘은수저’ 1권
다음 중 소년만화 장르의 이야기 소재로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①초능력 히어로 ②판타지 용자 ③학교 일진 ④예비 농부·낙농인.

누가 봐도 정답은 4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비관심 직종인 농부, 낙농인을 청소년들이 보는 만화의 소재로 사용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런 상식을 과감히 부순 만화가 있다. ‘강철의 연금술사’라는 21세기 가장 핫한 히트작을 냈던 아라카와 히로무(荒川弘)의 신작인 ‘은수저-Sliver Spoon’다. 작가의 4번재 장편작이자 첫 주간 연재인 이 작품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다.

단행본 8권까지 누적 발행부수는 1000만 부로, 이는 연재지인 ‘소년 선데이’의 역대 만화 4위에 해당되는 수치다. 지난해에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실사 영화로도 개봉된다. 

만화 ‘은수저’는 기본적으로 ‘농·축산업 전문 고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학원물이지만, ‘도전과 성장’이라는 소년만화의 공식은 충실히 지키고 있다.

입시 명문 신 삿포르 중학교에서 좌절한 주인공 하치켄 유고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홋카이도 시골의 오오에조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한다. 통칭 ‘에조노’로 불리는 이 고교에서는 농업과 낙농업을 가업으로 삼는 아이들이 대부분.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주인공은 얼떨결에 농부의 길을 가게 된다. 농부의 길 속에서 주인공은 고민하고 좌절하고 도전하면서 성장해 나간다.

농업이라는 꽤나 전문적(?)인 소재를 전문적이라는 느낌 없이 개그와 진지함을 잘 섞어 깔끔한 작화로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작가의 능숙함은 이 만화의 백미다. 이런 디테일은 작가 자신이 농업고교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제 만화의 배경인 ‘에조노’의 모델은 작가의 모교인 ‘오비히로 농업고등학교’이기도 하다.

▲ TV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된 '은수저' 오프닝 장면. 도시 학생의 농업고교 적응기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한다.
‘도시 입시생의 농업고교 적응기’라는 발랄함 속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모든 음식들이 수 많은 생명들의 희생을 통해 식탁에 올라온다’라는 진중한 성찰이 존재한다. 또한 영화 ‘워낭소리’와 같은 소규모 낙농부터 현대의 대규모 기업화 낙농을 에피소드로 소개하며 현재 일본 농·낙농업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이는 아기돼지 에피소드를 통해 알 수 있다. 주인공 하치켄은 양돈장에서 유독 적응하지 못하는 아기돼지를 발견한다. 약하면 도태되는 생태계. 제대로 된 어미 젓을 찾아가지 못하는 돼지의 모습에서 입시 경쟁에서 좌절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하치켄은 아기 돼지에게 ‘부타동(돼지덮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돌본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의 모습에 학우와 선생은 반대한다. 정이 들면 도축장으로 보낼 때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주인공은 낙담하면서도 애정을 가지고 ‘부타동’을 돌본다. 그런 모습에서 다른 학우들은 생각한다. “내가 가축과 애완을 나눠서 생각한 것은 언제부터였던가?”

시간이 지나고 ‘부타동’도 식육업자에게 출하돼 고기로 변해 돌아오고, 주인공은 여름방학 농장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돈으로 이 고기를 전량 구매하고 이를 베이컨으로 가공한다. 그러면서 하치켄은 말한다. 생명에 대한 고마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겠다고.

“생명체를 먹는다는 것은 다 그런 것이라고 달관하면 편해요. 하지만 이 아이(돼지)들을 보면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 고민에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해도 좋아요. 중학교 입시 노이로제보다 훨씬 보람있는 고민입니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농가의 삶은 기본적으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자연의 삶은 탄생과 죽음이 항상 공존하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그 굴레를 이어가고 있음을 깨달아 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 주인공 하치켄 유고는 농업과 낙농업을 접하면서 생명이 생명을 섭취하고 사는 데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가지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같은 불교의 공양게송은 연기적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오관게(五觀偈)라고도 하는 공양게는 식사를 하기 전에 음식에 담긴 다섯 가지 의미를 관찰하는 것이다.

하나의 곡물을 수확하기 까지 태양은 자신을 태워 빛과 열을 내고, 대지는 이를 넉넉히 품을 수 있는 자리와 양분을 내놓는다. 흔히 만날 수 있는 고기 역시 이 같은 공덕과 더불어 가축의 자기희생을 빌어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그래서 공양게는 음식에 대한 소중함과 여기에 투여된 은혜와 노고를 상기시키는 연기적인 통찰이자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서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는 식사를 하는 것을 ‘공양한다’고 하고 식사시간을 공양시간이라 한다. 여기서의 공양은 누군가가 공양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상기시켜, 시은(施恩)을 잊지 않게 하려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생명들을 짊어진다는 의미다. 이는 채식주의자가 됐던 육식주의자가 됐던 마찬가지이다. ‘나를 위해 희생된 생명붙이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삶의 명제가 이 작품에는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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