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행복을 주제로 부처님이 준비한 연극
성도는 행복을 주제로 부처님이 준비한 연극
  • 정리=배현진 기자
  • 승인 2014.01.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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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선센터 일요법회-탄덕 스님(국제선센터 포교 차장)

<사문 고타마가 구도과정 중 마지막 순간까지 투쟁했던 상대는 어떤 신도, 물질도 아니다. 오직 인간의 본능적 욕구인 애욕과 공포였다. 1월 8일 성도재일을 맞아 국제선센터에서 포교차장 탄덕 스님은 이렇게 말하며 성도는 특출한 누군가를 위해 준비된 과정이 아니라 모두가 갈 수 있는 길이라 강조했다. >

▲ 탄덕 스님은 자승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직지사에서 구족계를 수지하고 은해사, 운부암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하였다. 용인 대덕사 총무, 불교대학부학장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국제선센터 포교차장 소임을 맡고 있다.

성도에 담긴 의미
번뇌는 자신이 만든다는 사실알고
중도 수행으로 자등명 법등명하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어

부처님의 열반은 중생 제도의 방편
이번 주는 성도절 기간이므로 성도절에 대해 말씀을 드리려고합니다.  부처님은 태어날 때부터 부처님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흠모하는 왕자의 지위를 버리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이 없는 영원한 삶의 길을 찾아나선 지 6년 만에 마침내 그토록 갈망하던 참사람의 길을 찾아냅니다. 인생의 진면목과 우주의 대진리를 인류 역사상 최초로 발견하신거죠. 그 과정에서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죽음과의 투쟁은 물론 마왕 타순의 집요한 유혹도 물리칩니다. 이처럼 부처님은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여 성도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처님은 인간의 길, 행복한 사문의 길을 최초로 발견하신 위대한 탐험가요, 위대한 길 안내자이며 곧 대도사이신것입니다. 우리는 이 뜻 깊은 성도절 기도 기간을 맞이하여 인간 싯다르타 태자가 세존으로 새롭게 태어나신 의미를 재인식하고 성도절 기도를 통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교훈을 되새겨 봐야 합니다.

‘성도’는 석가모니 부처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성취해야 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이 길은 참되게 사는 길이요, 생노병사를 뛰어넘어 영원한 삶을 성취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석가모니 가르침을 따르고 그분의 언행을 본받고 그분처럼 되려고 하는 종교입니다. 정반왕의 아들이자 카필라 성지의 왕세자였던 싯다르타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달으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신앙하는 종교입니다. 보리수 아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부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29세에 출가한 후 6년이란 긴 세월의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서 마지막 용맹정진 후, 동녘하늘에 떠오른 별을 본 순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셨다고 대부분의 불자들은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묘법연화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이미 한량없는 옛날 옛적에 성불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다시 왕자로 태어나셔서 힘든 고행 후 새삼스레 보리수 아래서 성도하셨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역시 경전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묘법연화경>을 통해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불한지는 한량없고 가없는 백천만억 나유타 겁이니라. 중생을 위하여 방편의 힘으로 멸도를 말하고 있으나 능히 법과 같이 설하였으므로 나를 허망하여 허물이 있다고 하지 않으리라.”

이 말씀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것도 사실은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의 멸도만이 아니라 출생에서부터 출가, 수도, 성도, 열반이 모두 다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하시겠다는 대비심에서 펼친 장엄한 하나의 연극이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생제도를 위한 방편이다해서 결코 허망하다 할 수 없으며 진실한 법으로 이루어진 연극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모든 언행은 그 모두가 중생제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성도과정을 통해서도 중생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들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권력과 재산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이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부자지간에도, 친형제간에도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고대사회의 왕자 신분이란 요즘 대통령 자제와는 다르지요. 권력세습에 있어서 태자란 부와 권력이 보장된 신분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가장 서원하는 부귀영화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마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태자인 싯다르타는 이 기득권을 버리고 수도의 길을 떠났습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출가상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죠.

“중생들아. 너희들은 겉으로 돈과 권력을 사모하지만 그것으로 인생의 행복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보아라. 나는 그것을 소유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는 행복할 수 없어서 미련없이 버리고 떠나지 않았느냐.”

부처님은 출가를 통해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재산이나 권력이 아니란 사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우리들이 가장 서원하는 부귀영화가 행복의 조건이 아니고 그것으로 우리가 행복할 수 없다면 행복할 수 있는 대안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린 아이더러 좋아하는 사탕을 먹지 못하게 하려면 사탕 대신에 어린이를 만족하게 할 무엇이 있어야 하듯이요. 만일 대안이 없다면 인생이란 비참하고 허망하며 불행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바로 이에 대한 해답을 성도를 통해 연출하셨던 것입니다.

성도는 재산과 권력, 사치와 향락으로도 얻을 수 없는 인생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준 참으로 멋진 연극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도를 싯다르타 태자가 고행 끝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신 것으로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성도절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깊은 교훈이 숨어 있습니다.

첫째로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근본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싯다르타는 왕궁을 빠져나와 그 당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수행자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때는 이미 싯다르타 태자가 아니라 고타마 사문으로서 열렬한 구도행각을 펼칩니다. 처음에 찾아간 사람은 고행주의자였던 밧가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행 목적은 죽어서 하늘에 태어나는 것으로 고타마의 출가목적과는 달랐습니다. 고타마는 그들과 작별합니다. 출가한 목적은 생사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싯다르타는 인도에서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진 수행자였던 알라라 깔라마와 우다카 라마푸타를 찾아가기도 했지만 그들에게서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여러 수행자들을 방문한 결과 그 누구에게서도 인생의 근본대사인 생노병사에 대한 답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는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죠. 이런 결론에 도달한 사문 고타마는 홀로 고행림을 찾아가서 외로운 구도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처럼 생사에 대한 근본 문제는 결코 남의 가르침이나 스승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자기 문제는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둘째로 부처님께서는 성도에는 중도의 수행이 따른다는 교훈을 주십니다.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부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선정주의자들을 찾아가 그곳에서 맹렬히 수행하셨습니다. 그 결과 선정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목표인 무소유, 최고경지인 비비상처정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목표에 도달하고 보니 그들의 이상은 수행상 하나의 과정일 뿐 수행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선정상태에 들었을 때는 정신이 통일되어 몸과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지만 항상 선정에만 머물러 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선정주의자들과 작별한 고타마는 고행림이라고 불리는 숲속에 들어가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행을 시작하셨습니다. 이 때 고타마가 한 고행은 앞서 말한 외도들의 고행과는 목적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육체를 학대함으로써 하늘에 태어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고타마는 생노병사를 해결하고 진리를 발견하고자했습니다. 고타마의 고행은 말과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혹독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절에 가면 부처님의 일대기를 벽에 그려놓은 팔상성도를 볼 수 있는데, 이 벽화가운데 설산수도상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뼈와 가죽이 달라붙고 갈빗대가 튀어나온 그림이 바로 부처님이 고행하실 때의 참혹한 모습입니다. 이 고행 기간이 자그마치 6년입니다. 그러나 고타마는 결국 이 고행도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선정이란 극단적 정신일변도의 수행은 물론 고행같은 육체일변도의 수행도 올바른 수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을 통해 깨달으신 것입니다. 그 고행을 버리신 고타마는 수자타라는 처녀로부터 우유죽을 받아먹고 강에 몸을 씻고 건전한 심신상태를 회복하셨습니다. 그리고 보리수 아래 정좌하시고 일주일간 용맹정진한 후 성도하게 됩니다. 이로써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태도로 수행을 해야하는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바로 중도의 길입니다.

셋째로 부처님은 성도를 통해 생사의 근원이 외부에 있지 않고 자기자신의 마음 가운데 있다는 걸 깨우쳐 주었습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 사상계는 우주의 근원, 인생의 근본을 브라만이라는 유일신에게 있다고 보거나 아니면 다수 물질적 요소에 있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인간을 괴롭게 하고 자유를 약탈하는 요인이 신이나 물질과 같은 외부적인 것에 있지 않고 자기 내부에 존재한다는 걸 깨달으셨고 성도를 통해 그 점을 강조했습니다. 싯다르타는 성도하기직전까지 마왕 파순의 집요한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삼계가 오직 이 한마음의 소작이므로 마왕도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한 모습일 따름입니다. 마왕은 바로 무명이요, 팔만사천마왕의 권속들은 바로 중생들의 팔만사천번뇌 망상입니다. 번뇌 망상을 극복하고 청정 본연의 자성을 찾아내는 일이 바로 성도고 성불인 것입니다. 무명이란 마음으로부터 파생한 헤아릴 수 없는 번뇌 망상이 우리의 자아를 덮고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자신의 참성품, 참모습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번뇌망상이 경전에서는 때론 여인으로 때론 험상궂은 병사로 변하여 성도를 목전에 둔 고타마에게 갖은 유혹과 협박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타마는 이 근본 욕망인 무명을 극복하고 마침내 새벽하늘에 찬란히 반짝이는 별을 본 순간 자기의 참모습을 발견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무상정득정각이며 우리말로는 위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인 것입니다. 무상정득정각이란 외부의 대상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고 석존 자신의 내부에 간직된 진실한 자아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그 결과로 우주와 인간 온갖 사물의 위치를 바로 보게 된 것이지요.

끝으로 부처님은 성도를 통하여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평범한 이가 갖은 번뇌망상에 시달리다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성도했다는 사실은 우리도 부처님처럼 바른길을 찾아서 용맹정진하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음을 일깨웁니다. 처음부터 중도를 걷지 않고 굽은 길을 돌아서 목적지에 가신 것도 바로 이같은 깊은 뜻이 있다고 봅니다.

불교는 타종교와 달리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하늘에 태어나기 위해 불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깨달음에 의지하여 현세에서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고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 진리를 깨달아 생사윤회를 단절하고 이 땅에 불국정토를 이룩하자는 이상을 가지고 있는 종교입니다. 불자들이 만나서 헤어질 때마다 하는 인사가 ‘성불합시다’입니다. 이 인사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불할 수 있고 성불해야합니다. 그러나 성불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절에 다니는 불자가 얼마나될지 의심스럽습니다. 성불은 범부들이 근심 걱정없는 행복한 인간이 되리라는 노력을 버리지 않는 한 마침내 이룰 수 있는 거란 사실을 우리는 새삼 인식해야합니다.

우리 모두는 성불할 수 있는 불자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낮추어 어찌 성불을 바라냐며 체념해버리기 때문에 성불의 길이 늦어지는 것입니다. 성도절은 부처님께서 성도하는 시범을 보이신 날입니다. 우리 모두 성도절 기도기간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 되실 분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존경함으로써 우리 자신가운데 간직된 부처님의 성품이 빛을 발하도록하여 성불하도록 힘써 정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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