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누고 더 낮추고 더 비우자”
“더 나누고 더 낮추고 더 비우자”
  • 홍사성
  • 승인 2014.01.0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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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식으로 행복해지기

▲ 홍사성/불교평론 편집인, 시인
세상에서는 물질적 풍요가 행복의 척도다. 얼마나 큰 집에 사는가, 얼마나 큰 차를 타는가, 명품은 몇 개나 가졌는가, 해외여행은 몇 번이나 했는가로 행복의 등급이 매겨진다. 우리가 이런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50-60년대만 해도 절대빈곤의 시대였다. 그때는 어떻게든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사는 것이 소원이었다. ‘잘 살아보세’가 노랫말이었다. 돈을 위해서라면 생머리도 잘라서 팔던 때였다.

덕분에 이제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2만 달러가 넘었다. 텔레비전 냉장고 없는 집이 없고 자동차 보급대수도 1천만대가 넘었다. 몇몇 나라를 빼고는 우리도 경제적으로 꿀릴 것이 없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좀 산다는 나라들이 가입한다는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겨우 32위다. 가난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정반대의 사례 하나를 살펴보면 답이 될지 모르겠다. 히말라야 기슭에 인구 70만 명의 부탄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다. 텔레비전도 90년대 들어서야 보급됐을 정도로 경제적 풍요와는 거리가 먼 나라다. 그렇지만 이 나라 국민은 97%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기서는 치열한 경쟁이 적고 서로 나누며 사는 공동체가 확립돼 있다. 이웃나라들이 경제성장에 목을 맬 때도 정부는 생태와 전통보존, 국민건강을 고려한 정책을 폈다. 선진국도 부러워하는 행복지수는 소박한 삶이 부끄럽지 않은 정신적 만족에 있다는 것이다.

‘행복한 부탄’의 경우에서 확인되듯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보장한다’는 믿음의 허구다.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다 도리어 불행에 빠질 뿐이다. 일찍이 이 사실을 깨달은 부처님은 참다운 행복이 어떤 것인가를 설법하고자 했다. 하지만 〈증일아함경〉10권 권청품에 따르면 부처님은 처음에는 설법을 주저했다고 한다. 부처님이 가르치고자 한 진리는 물질숭배자들이 좋아하는 삼독(三毒)의 길과 반대되는 역류도(逆流道)였다. 그런 사람들에게 욕망을 줄이라고 한다면 누가 동의하고 따르겠느냐는 우려였다. 

아닌 게 아니라 중생들은 예로부터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려는 탐욕(貪), 남을 억누르고 잘난 척하다가 그것이 잘 안되면 일으키는 분노(瞋), 모두가 헛된 것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痴)의 노예로 살아왔다. 현실에서 자주 목도되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훔치거나 속이는 일,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죽이는 일, 헛된 이름을 얻기 위해 벌이는 치사한 짓은 모두 삼독심의 결과다. 이 ‘욕망에 의한 삶’은 결과가 뻔하다. 끝내 자기를 파멸시키는 독사처럼 위험한 것이어서 삼독심(三毒心)이라 부를 정도다.

자비로운 사람이라면 이를 방치할 수 없다. 자비로운 스승께서는 ‘내가 이제 행복의 문을 열 테니 귀 있는 자는 듣고 낡은 믿음을 버리라’고 선언하며 설법에 나서기로 했다. 이 스승께서 45년간 했던 설법을 요약하면, 진정으로 행복하고자 한다면 새로운 길을 선택하라는 권유였다. 

부처님이 제시한 행복의 길은 간단하다. 지금까지 가던 길을 거꾸로 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늘 남보다 많이 가지려고 안간힘을 쓴다. 99개 가진 사람이 1개를 더 갖지 못해 안달이다. 이 욕심은 마치 소금물 같아서 채우면 채울수록 목이 마른다. 부처님은 그 반대의 방법인 ‘나누기’ 즉 보시(布施)를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야 증폭되는 불행이 멈춘다는 것이다.

우리는 또 늘 내가 남보다 잘난 것으로 착각한다. 지위가 높고 힘이 셀수록 남이 나에게 복종하기를 바란다. 남을 용서할 줄 모르고 화부터 낸다. 부처님은 그 반대의 방법인 ‘낮추기’ 즉 하심(下心)을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야 더 깊은 불행에 늪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늘 모든 것이 영원하고 불변할 것으로 생각한다. 청춘과 건강과 명예와 사랑이 항상할 것이라 집착하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온갖 못된 짓을 서슴지 않는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부처님은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고 집착의 반대인 비우기(無着)를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야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불교수행이란 결국 삼독심의 반대인 나누기, 낮추기, 비우기를 얼마나 실천하느냐 하는 것이다. 잡아함 〈진인경(眞人經)〉에 보면 ‘참다운 수행자는 명상과 선정을 얼마나 오래도록 닦았느냐에 있지 않다. 삼독심을 얼마나 줄였느냐에 있다’는 말이 있다. 행복은 탐욕 대신 나누기, 분노 대신 낮추기, 집착 대신 비우기를 얼마나 잘 실천했느냐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불교는 참다운 행복(涅槃)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종교다. 누구든 행복해지려면 더 나누고, 더 낮추고, 더 비우는 수행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삼독을 줄이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가는 길을 거스르는 길(逆流道)이지만 행복하게 사는 올바른 방법(正法)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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