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마을 공동체 성미산을 가다

육아 시작해 20년 간 진화
이제 주거·교육·문화로 확대
구성원 수평적 관계가 ‘해답’

 

 

 

 

▲ 2011년 성미산 마을 축제 모습. 한국사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마을 공동체로 전국 지자체가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찾고 있다. 〈사진제공=김명집〉

 

성미산마을은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인근을 이른다. 수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동체 정신을 배우겠다며 벤치마킹하러 들르는 곳이지만, 이곳에는 따로 마을이 없다. 행정구역상 경계도 불분명할뿐더러 언뜻 보면 다른 동네와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을을 모른다고 하는 주변 사람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주민수도 구역도 불분명한 곳. 하지만 이곳에서 마을 주민들은 기업도 세우고 학교도 세웠다.

성미산마을은 공동체 운동의 ‘조상’격이다. 20여 명의 주민들이 공동육아를 해보자고 모여 1994년 문을 열게 된 공동육아협동조합 우리어린이집이 현재 많은 수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의 시초였다. 그 후 날으는어린이집, 성미산어린이집 등이 잇달아 문을 열면서 성미산 마을에는 현재 5개의 어린이집이 있다. 공동육아에서 시작한 운동이 자연스레 대안학교 등 교육으로 외연을 넓혔고 반찬가게, 생협, 식당, 마을극장 등으로 규모를 키우며 문화경제생활형 공동체로 자리잡아갔다.

 

 

8가구 정도가 모여사는 소행주(소통이 있어서 행복한 주택)라는 공동주택도 생겨났다. 집값 부담을 줄이고 이웃끼리 오순도순 모여 살면 좋겠다는 생각 하에 구상된 것이다. 설계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단계에 거주자들의 의사가 반영됐다. 마을의 일상적 욕구와 필요에 따라 사람들이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이러한 마을 기업의 운영은 주민들의 출자로 이루어진다. 원하는 주민들이 각자 조합원이 되는 것이다. 사랑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다수의 제안에 따라 까페 작은나무가 만들어졌고 160여 명이 이에 동참했다. 공동의 필요에 의해 네트워크화 된 느슨한 커뮤니티다 보니 수익이 목적은 아니다. 결산을 0에 맞추고 1년에 한 번씩 이사회를 개최해 운영상황을 점검하는 것이 전부다.

성미산마을이 20년이 되도록 와해되지 않고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느슨함에 있다. 각 단위 운영은 개별 운영위원회가 맡지만 1년마다 운영진들이 바뀌고 주민들의 대등한 참여를 보장한다. 사람과 마을이라는 주재자 역할을 하는 단위가 운영조직간 소통과 외부와의 연결을 담당할 뿐이다.

사람과 마을의 운영위원장인 김우 씨는 성미산마을은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권력을 배제하고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다 보니 공의를 모은 과정 중에 크고 작은 갈등이 일어나지만 구성원들은 이를 필연적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초중고 12년제로 운영되는 성미산학교는 이러한 능동적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교육과정에 적극 포함시킨다.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사람’을 교육이념으로 삼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협동을 몸소 익힌다.

스스로 진화해 온 성미산마을은 공동체의 가능성을 확대하며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 만들어진 좋은날 협동조합은 학교를 졸업한 장애인들의 취업을 연계함으로써 노동력을 순환시킨다. 주민들이 만든 비누는 두레생협연합회를 통해 전국으로 판매되며 사회로 점차 발을 넓혀가고 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