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원성 보살의 바라밀 일기

독자 위해 쓴 일기 ‘나’ 바로보게 해
‘나’를 드러내는 일 조심스럽고 어려워
추억이 ‘무상’을 증명

바라밀 일기
오늘은 부산불교방송 ‘무명을 밝히고’시간에 초대되어 방송을 하고 왔다. 현대불교신문에 ‘바라밀 일기’를 연재한 것이 인연이 되어 방송에 까지 나가게 됐다. 신문에 연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쑥스럽고 걱정스러워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벌써 시작한 지가 1년이 다 되어가고 그로 인해 방송에 초대까지 받게 되니 더욱 쑥스러웠다. 연재를 시작할 때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방송국을 찾았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왔던 지은아 아나운서가 담당 진행자여서 반가웠다.
진행자는 나의 근황과 바라밀 일기를 통해 소개되었던 나의 이야기들에 대해 물었다. 사실 나는 좋은 시절과 인연을 만나 신문에 연재도 하고 방송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부처님 말씀 따르며 나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 나의 작은 신행과 수행이 너무 크게 만들어진 것 같아 부끄럽다.
부처님께 귀의한 불자로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대로 생각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텐데, 그것이 특별한 일도 아니어야 하는 것인데 방송을 하는 내내 쑥스러운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언가를 바라고 하는 일만 아니라면 불자들끼리 서로 서로의 신행담이나 수행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스승이 되어주는 기회가 된다면 서로의 이야기를 알리는 것도 좋은 신행의 한 방편이라는 생각이다.
방송이 나간 후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 그동안 ‘바라밀일기’를 애독해 주셨던 분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다. 신문의 글을 쓸 때는 썼다가 고치기도 하고, 천천히 생각하면서 쓸 수 있는데, 방송은 즉석에서 말로 하게 되니 더욱 조심스러워 많이 떨렸다. 사람은 누군가가 나에게 사소한 일이라도 관심을 가져준다면 작은 행동과 말도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어 조심하게 된다. 그렇게 보면 올 한 해 동안은 내가 쓴 ‘바라밀 일기’가 독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글 쓰는 동안, 또 글을 쓰고 나서 나를 바로 볼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 또 다른 수행의 시간이었던 같다. 더욱 많은 생각을 하고, 더욱 조심스럽게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나에겐 ‘바라밀 일기’였던 것이다. 세상을 향해 ‘나’를 드러낸다는 것이 이토록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깨달았다.
이제 올 해도 저물어간다. 마지막 달력인 12월만이 쓸쓸히 남아 있다. 매년 이맘때면 누구나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저물어간다는 것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 특히나 나처럼 나이를 먹은 사름들은 저물어가는 인생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진실한 삶으로 후회 없이 살고 다음 생을 맞고 싶다. 그래도 이만큼 열심히 살 수 있었던 것은 고암 스님, 일타 스님, 법정 스님, 지관 스님 등 많은 스승님들 덕분이란 생각이다. 그 외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스님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부모님은 나의 육신을 있게 한 은혜이지만, 불법의 인연으로 부처님의 법을 바로 알게 해 주신 스승님들 또한 소중한 은혜이다. 연말이다. 각자 차분하게 정리하는 시간과 희망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길 기원한다.

추억은 무상의 증거
동해남부선 기차선로가 바뀌면서 지금까지 기차를 타고 동해 바다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여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12월 1일부터는 기존의 그 길 (수영에서 송정 해수욕장 까지)에서 볼 수 있었던 경치를 볼 수 없게 됐다. 그 기차를 타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유래 없는 인파였다. 나와 몇몇 도반들도 그 행렬에 끼기로 했고, 오늘 다녀왔다.
오래전, 새마을호가 생기기 전에나 타 보았던 무궁화호를 타고 가까운 울산으로 가게 되었다.
부산에서 1시간 40분 거리였는데, 우린 그 옛날 처녀시절을 떠올리며 수다를 떨었다. 삶은 계란을 준비해온 사람도 있었고, 따끈한 커피를 준비해온 사람도 있었고, 또 과일을 준비해온 사람도 있었다. 나도 준비해 간 떡과 녹차를 내놓았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추억이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기차에서 내려 제일 먼저 고래박물관엘 갔다. 학생들처럼 견학을 마친 뒤 점심을 먹고 태화강의 아름다운 산책길을 걸었다. 대숲이 웅장하게 펼쳐진 길가엔 겨울 갈대들이 차가운 바람 속에서 하얀 솜털을 날리며 서있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지게 되어있다. 늘 변해가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고 추억하는 것이 결국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해감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 늙어가는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겨울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드문드문 떠있었다. 어릴 적 보았던 그 맑은 하늘과 그 구름을 보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변해가지만 기억이라는 게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또한 기억이라는 게 있어 세상이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추억이라는 게 무상(無常)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도 아침처럼 다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왔다. 오늘 만든 추억도 무상함의 증거로 남을 것을 생각하니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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