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학맥과 교류 자료

▲ 추사의 편지를 모아 상·하로 편집한 책 〈완당척독〉.
초의에게 보낸 편지 12신 수록

〈완당척독(阮堂尺牘)〉은 추사의 편지를 모아 상, 하(上下)로 편집한 책이다. 1867년 〈담연재시고〉와 함께 간행된 〈완당척독(阮堂尺牘)〉은 추사와 교류했던 당대의 인사들뿐만 아니라 백파와 초의 같은 승려들에게 보낸 편지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추사의 학맥이나 교류 폭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그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는 〈답초의상인〉장에 분류, 총 12신이 수록되었는데, 12신의 편지 중에는 〈완당전집〉 ‘여초의’와 〈벽해타운첩〉, 〈영해타운첩〉에 중복된 편지가 무려 11신이나 되고, 여기에 소개할 편지만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강상(江上)에 머물던 시기에 보낸 편지라 추정되는 이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겨우 읍내에서 온 인편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받아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달 승려가 가져온 그대의 편지를 받고, 돌아간 후에도 참선과 독송(讀誦)이 길하고 편안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의)편지를 받은 후에도 수행이 가볍고 편안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 이 세간에도 맑고 신성한 부처님의 은택이 내려져 (세간의)사람을 다스려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의 행차는 모레쯤 길을 떠난다하여도 그대와 함께하기는 또한 멀 것입니다. 강상의 구름과 안개는 돌아갈 수 없으니 생각으로만 사모하는 정이 무수히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요. 설령 생각과 마음을 놓아 버린다하여도 일종의 속진 뿌리를 반드시 갈아 없앴다는 것은 불가한 것이 있을 뿐입니다. 금강의 영신에 의거하여 논한다 해도 이는 들쭉날쭉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탄식케 합니다. 만약 나의 행차가 잘못된다하여도 멀리 밖의 일이니 어찌 반드시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 곧 달 승려를 선사(仙寺)로 돌려보내더라도 찾아 온 곳이니 그대는 당연히 나의 습관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았다고 웃겠지요. 껄껄… 응언(應彦)과 정 두 승려가 만일 읍의 역참(驛站)을 따라온다면 마침내 지난 일을 보답할 수 있으리니 미리부터 기다려지고 기다려집니다. 여기 복 승려가 돌아간다기에 잠시 이곳의 소식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만 줄입니다.(?從邑便有書 未知收照歟 達衲之來 承獲梵緘 知歸錫吉利 想於書後 禪誦輕安 不覺此世間 梵雨?人甚善甚善 此行以再明起程與師亦遠矣 江上煙雲能無 頭依依戀否 雖遣想遣心 一種根塵必有不可磨滅處耳 金剛依領信論之 又此參差 令人可歎 如失此行遠外事 又何可必也 卽使達衲轉送仙寺爲推來地 師當笑我習有未除矣 且呵且呵 彦靜兩衲若?邑站來 會可酬夙昔 預企預企玆因福衲之歸 暫此申復 都留不式)

추사가 어느 지역을 여행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나의 행차는 모레쯤 길을 떠난다하여도 그대와 함께하기는 또한 멀 것입니다”라 한 것으로 보아 초의와 함께 할 수 없는 경황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강상의 구름과 안개는 돌아갈 수 없으니 생각으로만 사모하는 정이 무수히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요” 라고 초의에게 되물어 자신의 안타까운 속내를 표현하고 있다. 한편 세속에도 맑고 신성한 “부처님의 은택이 내려져 (세간의)사람을 다스려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고 기원했던 그였지만 생각과 마음을 “놓아 버린다하여도 일종의 속진 뿌리를 반드시 갈아 없앴다는 것은 불가한 것이 있다”는 현실을 탄식하였다. 언과 정 승려는 추사에게 도움을 준 인물인 듯, 정 승려와 편지를 전한 달 승려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응 승려는 만덕사에 주석했던 혜장의 제자, 체경(?鯨)인 듯하다. 〈동사열전〉에 “그는 영암 사람으로, 만덕사에서 출가하였고, 어려서부터 강개(慷慨)한 뜻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읍의 역참을 따라 온다면 “지난 일을 보답할 수 있어서” 미리부터 기다려진다는 추사의 말은 이들에게 보인 그의 우정과 살가운 인간의 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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