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산 上

구카이의 진언종 개창 성지
日서 가장 종교색 짙은 곳
시코쿠 순례 前後 찾아와
안녕과 원만 회향 기원해

▲ 일본 진언밀교의 성지 고야산(高野山)의 전경. 8개의 봉우리에 둘러쌓인 분지인 이곳에서 홍법대사 구카이 스님은 전법을 펼쳤고, 지금도 그 가르침은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일본 나라와 교토에는 불교 뿐만 아니라 신도, 토착 종교, 도교 등에 걸친 영험한 성지가 곳곳에 존재한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기이산지의 영지와 참배길(紀伊山地の靈場と參詣道)’이다.

요시노/오미네·구마노산잔·고야산 3곳의 영지(靈地)와 나라와 교토에서 이어지는 참배길을 말하는 이 유산은 일본 종교와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아직도 전국에서 많은 참배객과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3곳의 영지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 ‘요시노/오미네(吉野/大峯)’는 기이산의 북쪽 끝에 있으며, 슈겐도(修驗道)의 본산으로 관련 사원과 수행자들을 만날 수 있다. 슈겐도는 일본의 고대 산악신앙에 불교와 도교가 가미된 종교이다. ‘구마노산잔(熊野三山)’은 기이반도의 남동쪽 끝에 있는 구마노혼구타이샤·구마노하야타마타이샤·구마노나치타이샤 3개의 신사를 말한다.

기이반도 북서부에 위치한 ‘고야산(高野山)’은 ‘진언밀교(眞言密敎)’의 성지로 일본에서 가장 종교색이 짙은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리적으로는 이마키봉 등 8곳의 봉우리로 둘러있는 분지를 총칭하는 고야산은 일본 불교 진언종(眞言宗)의 창시자인 홍법대사 구카이(空海) 스님에게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 구카이 스님의 진언밀교를 현실화한 단조가란의 근본대탑.
구카이 스님은 774년 시코쿠 사누키국(讚岐國, 현재의 가가와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사누키국을 세운 유력한 가문이고 어머니는 헤이안 시대 고승을 배출한 집안출신이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유교 경전과 중국 〈사서〉를 배웠지만 어느 날 한 승려를 만나 ‘허공장구문지법(虛空藏求聞持法)’을 백만 번 외우면 모든 가르침의 참뜻을 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출가의 뜻을 굳혔다.

결국 20세에 출가해 24세 때는 〈삼교지귀(三敎指歸)〉라는 책을 저술해 일찍이 배운 유교와 불교·도교를 비교하고 불교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남다른 식견을 보여주기도 했다. 30세에는 당나라로 건너가 청룡사의 혜과 스님을 만난다. 그곳에서 구카이 스님은 밀교를 전수받게 된다.

귀국 후 스님은 고야산으로 들어와 밀교 경전을 널리 전파하고 이른바 진언종 동밀(東密) 일파를 개창했으며 진언종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다가 62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고야산에는 고카이 스님의 진언밀교에 대한 상상을 현실화한 단조가란(壇上伽藍)을 비롯해 117개의 사찰이 존재하며, 일본 국보의 2%가 이곳에 소장돼 있다. 말 그대로 일본 불교와 종교의 한 단면이 고야산에는 존재한다. 이와 함께 고야산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곳이 시코쿠 순례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기 때문이다.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네 개의 본섬 중에 가장 작은 섬인 시코쿠에 있는 순례길인 ‘헨로 미치’는 번호가 붙은 88개의 절을 순서대로 돌아 1번 절로 돌아오는 1,200킬로미터의 장거리 순례길이다. 시코쿠에서 태어나 시코쿠에서 깨달음을 얻은 구카이 스님의 발걸음을 좇는 순례이기도 하다.

현재 연간 15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시코쿠 순례길은 일반적으로 도보를 원칙으로 한다. 88개의 사찰을 전부 순례하는 데 40~60일이 소요되며, 형편에 따라 일주일 혹은 열흘씩 나눠 걷기도 한다.

▲ 시코쿠 순례자들은 고야산에서 순례를 시작하거나 회향한다.
이 순례길에 오르는 이들은 ‘하쿠이’라 불리는 흰 웃옷을 입고, ‘스게가사’라 불리는 삿갓모자를 쓰고, 구카이 스님을 상징하는 ‘즈에’라는 이름의 지팡이를 들고 걷는다.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시코쿠 순례 도중 사망했고, 현재도 1년에 20명 씩 순례 중 운명을 달리한다. 과거에는 순례 중 죽으면 땅에 묻은 후 그 위헤 삿갓을 덮고 지팡이를 꽂았다고 한다. 이는 순례처 어디서도 죽어도 좋다는 순례자의 각오이다.

순례자들은 순례 전이나 순례 후 고야산으로 간다. 구카이 스님이 입적한 오쿠노인을 참배하며 순례의 안녕을 기원하거나 무사히 마침을 감사드린다.

구카이 스님이 안민과 구복을 위한 깨달음의 길은 현재에도 면면히 고야산을 중심으로 내려 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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