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국화당초문 → 영기꽃(보주꽃), 영기문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국화문(菊花文) 모양은 매우 많은데 현실에서 보는 국화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국화꽃 종류에는 한 가지 모양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다른 모양이 있으며, 또 우리가 알고 있는 국화문 모양은 반드시 국화에만 한정하여 있는 것도 아니다. 국화문의 정체는 지금까지 매화점이 무량보주임을 밝히면서 저절로 풀리게 되었다. 국화꽃 모양이 아니고 무량보주의 조형임을 좀 더 본격적으로 증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흔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을 보고 ‘무늬’를 연구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무늬가 전공이 아니고 여러 가지 무늬라는 조형을 새로이 해독하여 건축 전체, 조각 전체, 회화 전체, 공예 전체 등을 다루고 있으며 조형미술의 모든 장르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하고 있다. 조형미술에서 몇 가지 중요한 조형에 따른 개념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보주(寶珠)’이다. 보주의 본질이 풀리니 미술사학의 수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풀려지고 있다. 결국 보주의 올바른 개념을 모르니 현실에서 보는 국화꽃과 비슷하다고 하여 국화꽃이라 부르거나 매화꽃 같다고 하여 매화점이라 부르고 있으므로 그 조형의 상징적 의미를 밝힐 수 없었다. 국화꽃 모양이 왜 보주꽃인지 그 성립하여가는 과정을 명료하게 밝혀보려 한다.(도 1)

그러면 특히 고려청자 가운데 국화문이라고 흔히 부르는 조형이 많은데 그 모두가 영기꽃, 즉 보주꽃이다.(그림 ② ③ ④ ⑤) 영기꽃[靈花]이라는 것은 포괄적인 개념으로 영화된 모든 꽃을 뜻한다. 왜 영화된 꽃이냐 하면 모든 꽃의 중심에는 씨앗을 무량하게 지닌 씨방이 있는데 그 씨앗들이 보주들로 변하는데, 즉 매우 고차원적 변화를 이루므로 보주꽃[寶珠花]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보주나무[寶珠木]라는 용어도 만들어낼 수 있다. 심증은 가지만 오래 동안 그 확실한 증거를 찾으려 노력하였으나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다. 과연 국화꽃 모양이 국화가 아니고 보주나무라는 것을 명징하게 증명할 수 있을까? 그러던 차에 2012년 가을,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천하제일 고려청자> 기획전에서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작품을 감격스럽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림 ⑥-1)

그 고려청자 접시의 중심에 상감된 조형을 백묘(白描)하고 채색분석하여 보았다.(그림 ⑥-2) 그 조형의 전개과정을 다음에 단계적으로 설명한다.

① 중심의 무량보주(無量寶珠) 안에 작은 알갱이 같은 검은 색 보주들이 네 군데 있으며 중심에 빨간 색 보주들이 다섯 개 있으며 주변에 네 개의 잎이 있는데 국화꽃의 잎 같지만 실은 제3영기싹이다. ② 즉 제2영기싹 갈래에서 만물이 생기는 조형을 잎처럼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만물생성의 근원인 중요한 보주들과 제3영기싹들이므로 중심에 집중하여 모여 있을 수가 있다. ③ 그 무량보주의 양쪽에서 강력한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 ④ 봉황의 꼬리는 영기문으로 길게 뻗어나고 있는데 실은 이 꼬리의 영기문에서 봉황이 화생하고 있는 것이다. ⑤ 꼬리의 영기문의 전개 원리는 제2영기싹이 두 번 연이어 나오다가 한 줄기 영기문이 길게 뻗어나가는 제2영기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기문의 표현원리를 틀림없이 따르고 있다. ⑥ 봉황의 부리는 ‘보주 꽃’가지를 물고 있는데 끝에 둥근 빨간 보주가 있다. 그러나 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량한 보주를 발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⑦ 즉 봉황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오는 것을 중앙의 무량보주의 조형으로 나타낸 것이다. ⑧ 무량보주를 중심으로 두 봉황이 회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우주에 충만한 영기의 역동적 대 순환을 상징한다. ⑨ 이 도상은 큰 원 안에 있는데 큰 원은 영기창(靈氣窓)이다. 즉 영기창을 통하여 대 우주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국화꽃’이 올바르지 않은 용어라면 국화꽃들을 각각 끝에 맺으며 전개하는 ‘국화당초문(菊花唐草文)’이 그릇된 용어임은 자명한 일이다. 다음 회에 그 수많은 국화당초문이 만물을 탄생시키는 영기문임이 밝히려 한다. 회화에는 물론 도자 공예, 금속공예, 나전칠기, 복식 등에 보이는 수많은 국화문이란 용어로는 한국미술 더 나아가 일본미술이나 중국미술은 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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