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살이 상주하는 북한산 이야기 - 석가봉

칼바위능선의 봉우리로 성북구 정릉동에 속해 있다. 〈북한지〉에 “동문 밖 청수동 위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에서 ‘동문’은 지금의 대동문을, ‘청수동’은 현 정릉부근의 청수장 일대 계곡을 말하는 것이다. 대동문 밖이라 하였으므로 석가봉은 속칭 칼바위능선의 정상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 보국문 자리를 예로부터 석가고개라 불러왔는데 북한산성 축성 후 봉우리들의 이름을 새로 지으면서 석가고개에서 가장 가까운 현 칼바위능선 정상에 붙인 이름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조실록 9년 기록에도 이름을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있다. 석가봉은 부처님이 계시는 봉우리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칼바위능선 아래 작은 초막을 짓고 사는 불망 스님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스님이 고구려에서 왔다고 해서 고구려 스님이라 불렀습니다. 이곳은 밤에는 호랑이가 출몰해서 약초꾼들도 해가 지기 전에 하산을 서두르는데 불망 스님은 해가 지면 칼바위능선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삼매에 들었습니다. 스님의 소원은 단 하나, 부처님을 친견하는 일이었습니다.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간절히 기도하였고, 이곳에 온 지도 벌써 십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처음에 불망 스님은 삼 년 만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 부처님이 모습을 나타내실 것이라 생각했지만 부처님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원망스러웠지만 조금 더 간절히 기도를 하면 언젠가는 뵐 수 있으리라 기다린 세월이 십년이 된 것입니다. 스님의 눈앞에 그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달이 뜬 날에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비바람이 몰아치고, 눈이 내리는 날에도 한 결 같이 기도를 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니 장하고 대견스러웠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나 말고 누가 또 있을까?’하는 자만심에 빠져 산을 내려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자신이 앉았던 발아래 푸르스름한 이끼가 붙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바위에 바짝 몸을 붙이고 나직이 숨을 쉬는 이끼를 보는 순간 불망 스님은 부끄러워졌습니다.
“저 작은 생명도 비바람, 눈서리를 맞으며 버티고 있는데 기껏 삼년을 견뎠다고 대가를 받으려하다니…”
불망 스님은 다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또 다시 삼년이 지났지만 불망 스님은 여전히 부처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금생에는 부처님을 뵈올 수 있는 복이 없는 모양이구나.”
스님은 자신의 복 없음을 한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전처럼 부처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금생에 복을 짓지 못했으니 내생에나 친견할 원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앉았던 바위 앞에 깃털 속에 목을 묻고 떨고 있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자신의 앞가슴에 새를 넣고는 저고리를 느슨하게 풀어 편히 숨을 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고는 이 작은 새도 모든 시련을 겪으며 묵묵히 살고 있는데 사람인 내가 이 정도에서 물러설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삼년 기도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오자 스님은 품었던 새를 멀리 날려 보냈습니다. 새는 대견스럽게도 힘차게 날개짓을 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스님은 다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구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여전히 부처님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지만 불망 스님은 아직 자신의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 여기며 부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부처님이 어디에 계시든 편안하시길 기원했습니다.
불망 스님이 바위를 내려가기 위해 아래를 바라보니 호랑이가 토끼를 잡기위해 앞발을 높이 쳐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호랑이에게 잠시 기다리라하고 토끼에게 사정을 물었습니다. “추위에 가족이 굶어 죽을까 먹이를 구하러 나왔다가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그러니 저를 살려 주십시오.” 스님은 토끼를 살려 보내자고 했지만 호랑이 또한 당장 먹이를 가져가지 않으면 새끼들이 굶어 죽게 생겼다고 했습니다. 불망 스님은 토끼 대신 자신을 먹으라며 호랑이를 설득했습니다. 눈을 껌벅이던 호랑이가 몇 번을 되묻자 불망 스님은 입고 있던 옷을 훌훌 벗고는 자신을 먹으라는 듯 두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그때 우우웅, 범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스님이 눈을 떠보니 칼바위 능선 꼭대기에 광명이 비추고 드디어 부처님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 부처님.”
불망 스님은 호랑이에게 부처님을 뵙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청을 하고는 칼바위 능선으로 향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스님 앞에 우뚝 섰습니다. 금빛 찬란한 몸, 너무나도 성스러운 얼굴, 불망 스님은 가슴이 벅차올라 부처님 발밑에 몸을 굽혔습니다.
“부처님, 제가 그토록 부처님을 친견하고 싶어 할 때는 어디에 계시다가 이제야 모습을 나타내셨습니까?”
“불망아, 나는 늘 네 곁에 있었는데 네가 나를 보지 못했을 뿐이다.”
스님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부처님을 우러러 보다가 호랑이와의 약속이 생각나 고개를 들어보니 부처님도, 토끼도, 호랑이도 다 사라지고 천지에는 향내만 가득했습니다.
불망 스님은 칼바위 능선 꼭대기를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아 합장했습니다.
“부처님, 당신을 친견하는 이치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 이치를 아는데 십년이 걸렸습니다.”
합장을 한 불망 스님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은 감사와 환희의 눈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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