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나조노 대학 특강-수불 스님(동국대 국제선센터 선원장)

간화선 수행의 단계
갑갑함 밀려오며 의심 일어나면
저절로 화두 들리는 의정에 들어가
목에 걸린 밤송이처럼 의단 뭉쳐진 후
시절인연 따라 은산철벽 무너져

불속에서 연꽃 피는 도리 체득
곧바로 선지식 찾아 점검

▲ 수불 스님이 김영택 화백의 범어사 일주문 펜화를 하나조노대 호소가와 학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스님은 같은 대학 도서관에 <선문촬요> 범어사 인경본도 기증했다.

1. 활구(活句) 의심이 걸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참의심’을 할 수 있을까요? 공안 상에서 의심이 일어나면 어떻게든 공안의 낙처(落處)를 알고 싶어서 갑갑하고 조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화두를 들고 공부하려는 의지 속에서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갑갑함이 점점 커져서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 활구를 들고 바르게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단 활구가 들려 공부의 방향이 제대로 잡혔더라도, 마치 여울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뱃사공처럼 힘이 듭니다. 그럴 때 최선을 다해 밝은 해를 볼록렌즈로 비춰서 불을 얻듯이 초점을 맞춰 집중해야 합니다. 고인들은 이 일을 쥐를 잡으려고 만들어진 물소 뿔로 된 덫 속으로 쥐가 먹이를 찾아 들어감에, 꽉 끼어서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곳에서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또한 모기가 무쇠소의 잔등에 붙어서 주둥이로 계속해서 뚫어서 몸까지 뚫고 들어가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화두를 들자마자 처음부터 앞뒤가 꽉 막혀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인연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한 번 물면 이빨이 빠지든 목이 끊어지든 절대로 놓지 않는 사나운 개처럼, 화두를 한 번 들면 일념만년이 되도록 지독한 마음을 가져야 의심을 제대로 지어갈 수 있습니다.
이치가 이렇기 때문에,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철두철미하지 않고서는 결국 사구(死句)를 들고 시간만 보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발을 잘못 내디디면, 시간이 지날수록 잘못된 방향으로 굳어지기 때문에 참으로 조심해야 합니다. 학인은 자신이 활구를 들었는지 사구를 들었는지 스스로 알기 어렵기 때문에, 옆에서 지켜보는 눈 밝은 선지식의 점검과 지남(指南)이 요긴한 것이 간화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화두 의심이 의정(疑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참의심이 한 줄기로 꿰어지면, 강력한 정신적 벽이 앞을 가로막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알 수 없었던 근본문제와 맞닥트리게 된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용맹심을 발해서 머리로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오직 온몸으로 그 벽을 향하여 정면 돌파해야 합니다. 이렇게 화두에 집중하면 할수록 어느덧 화두를 내려놓을 수조차 없게 됩니다.
이때는 화두가 저절로 들리게 되는 상태가 이루어져서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정 상태가 되면 힘을 쓰지 않아도 화두가 잘 들려지고 있기 때문에, 학인에게는 마치 화두가 없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비유하면 알약을 한 번 삼키면 약기운이 몸속에 퍼지듯이, 화두 기운이 이미 몸속에 퍼진 것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화두가 들려지고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필요 없이 하던 공부를 계속해서 하면 됩니다.
화두가 힘들이지 않고 잘 들려지는데도 불구하고 미세한 번뇌 망상은 여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일어나는 망상을 없애고 공부하려하지 말고 망상이 일어나더라도 내버려두고 화두에 집중하면 됩니다. 그러다가 의정이 동정(動靜) 가운데 하루 종일 흩어지지 않고 급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으면서 저절로 이어지는 호처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는 자연스럽게 들려진 화두를 잘 호지하고 그대로 시간을 보내면 됩니다.

3. 의단독로(疑團獨露)가 되어야 합니다.

화두의심이 의정화 되고, 의정은 마침내 의단독로하게 됩니다. 마치 감옥에 갇혀 진퇴양난에 빠진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어찌 해볼 도리도 없이 꽉 막힙니다. 마치 독약에 중독된 것처럼 숨통이 막히고, 사방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옥죄어올 것입니다. 송말(宋末) 원초(元初)에 살았던 고봉원묘(高峯原妙) 선사는 《선요(禪要)》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심하고 의심하여 안과 밖이 한 조각이 되게 하여 온종일 털끝만치도 빈틈이 없어서 가슴에 뭉클한 것이 독약에 중독된 것과 같으며 또 금강권(金剛圈)과 율극봉(栗棘蓬)을 삼켜 꼭 내려가게 하려는 것과 같이 하여 평생의 갖은 재주를 다 부려서 분연히 힘쓰면 자연히 깨칠 곳이 있을 것이다.”
금강권은 가슴이 의단으로 꽉 뭉쳐서 온몸이 감옥에 갇힌 것처럼 강한 기운이 사방에서 짓누르는 것을 말합니다. 율극봉은 의단이 뭉쳐서 밤송이처럼 목구멍에 걸린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목에 걸려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니까, 숨통이 막혀 갑갑하기 짝이 없게 됩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고, 삼킬 수도 없는 밤송이를 삼키려고 애쓰다 보면, 어느덧 의단만이 홀로 드러나는 경계로 들어갑니다. 꽉 막힌 감옥 속에서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여기에 이르러서도 처음부터 해온, 답 찾는 일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집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시절인연 따라 은산철벽이 무너짐을 스스로 보게 될 것입니다.

4. 불속에서 연꽃이 피는 도리

의단이 독로하여 시절인연이 오면 순간적으로 의단을 타파하게 될 것입니다. 그 통쾌함은 직접 맛본 사람만이 압니다. 큰일을 마치고 난 뒤에는 꽉 막혔던 속이 텅 비게 됩니다. 온 몸과 마음이 새의 깃털 보다 가볍고 앞뒤가 툭 터져 한없이 시원해집니다.
화두가 타파되면, 마치 소나기가 내린 뒤 먹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몽땅 드러나듯 확연한 것이 시원하고 통쾌합니다. 마치 꿈속에서 깨어난 듯 분명해집니다. 그동안 알 수 없었던 공부상의 인연들이 드러나면서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불속에서 연꽃이 피는 도리를 온몸으로 체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하게 되었을 때는 곧바로 선지식을 찾아가서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공부한 것까지도 내려놓고, 흐름에 맡겨 세월을 잘 보내야 합니다. 늘 부끄러움을 아는 수행자로서 자세를 낮추고 정진하다보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입니다.

 

▲ 수불 스님이 김영택 화백의 범어사 일주문 펜화를 하나조노대 호소가와 학장에게 전달하고 있다. 스님은 같은 대학 도서관에 <선문촬요> 범어사 인경본도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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