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오사카 시텐노지
쇼토쿠 태자 7대 도량 중 하나
종파 구애 않는 日불교 총본산
區가 곧 사찰… 교육·복지 총력
쇼토쿠 태자가 제정한 17조 헌법 중 일부이다. 쇼토쿠 태자는 불교를 통해 일본의 초기 국가 체제를 완성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 그의 17조 헌법에는 삼보를 공경할 것을 명하고 선악의 도리로 불교를 채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쇼토쿠 태자는 17조 헌법을 통해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사상인 ‘와(和, 화합)’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일본의 전통 시조를 와카(和歌), 일본 전래의 풍속을 와후(和風), 일식을 와쇼쿠(和食), 일본 전통 과자를 와카시(和菓子, 화과자)라고 부르는 것도 다 여기서부터 유래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불교 전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585년부터 일본은 불교 공인 여부를 둘러싸고 극심한 내홍을 겪게 된다. 내홍은 숭불 세력인 요메이 천왕과 소아 씨는 당시 배불세력이었던 귀족 모노노베 씨와 전쟁을 벌였다. 당시 13살이었던 쇼토쿠 태자마저도 전쟁에 가담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쇼토쿠 태자는 전쟁에 참전하던 중 한 숲에 들려 붉나무(옻나무과)를 잘라서 ‘사천왕상’을 만들어 높이 받들면서 무릎 꿇고 사천왕에게 맹세하기를 “만약에 이번 전쟁에서 제가 적과 싸워 승리하게 해주신다면 반드시 사천왕님들을 받드는 절과 탑을 세우겠나이다”라고 다짐했다. 이때 총사령관인 소가노 우마코 대신도 “사천왕들께서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 주신다면 절과 탑을 세우고 삼보(三寶)를 널리 위하겠습니다”라고 굳게 맹세했다. 이후 전란을 수습한 쇼토쿠 태자가 오사카에 ‘시텐노지(四天王寺)’를 건립한 것은 이 같은 발원을 지키기 위함 이었다.
시텐노지의 구조는 백제 가람과 매우 흡사하다. 사찰의 중문과 오층탑 및 금당을 남북 일직선으로 해 사방은 회랑으로 둘러쳐 있다. 특히 오층탑의 웅장함은 가히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시텐노지가 백제 가람과 닮은 것은 가람을 지은 사람이 백제의 명공 유 씨(柳氏)였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시텐노지를 건립한 명공 유 씨는 쇼토쿠태자의 생부인 요메이 천황에게 곤고(金剛·금강)라는 이름을 하사받았고, 훗날 이 가문은 오사카의 건축 전문회사인 ‘곤고구미(金剛組)’로 발전했다.
‘구세관음’을 본존불로 삼고 있는 시텐노지는 현재 오사카의 한 구(區)를 차지할 정도로 사격이 크다. 시덴노지가 있는 지역명은 정확하게 오사카 덴노지구(大板 天王寺區)로 이 지역의 대부분의 토지는 시텐노지 소유다. 본존불이 자비를 나타내는 구세관음인 만큼 시텐노지는 교육과 복지 등 지역민을 위한 기간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덴노지구 안에는 시텐노지가 운영하는 시텐노지 병원과 시텐노지 학원(중·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시텐노지 학원의 경우 일본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 학원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이 국민들을 위한 교육과 복지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일본불교의 모습은 한국불교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고구려와 백제의 스님을 스승으로 삼고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정립해 낸 쇼토쿠 태자. 일본이 불국토가 되길 바랬던 그의 염원은 시텐노지에서 지금도 면면히 전해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