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과 경제 上-정재락(전 영산대 교수)

초기불교
수입 일부 재투자해 이윤 얻도록 하는 등
재가 신도들에게 적극적으로 영리추구 권장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개인 이득 추구에 머물지 않고 
보시로 공동체 삶에 도움줘야

1.들어가는 말

흔히 불교는 세속적 가치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인지 타종교에서 불교를 폄하하는 말 중 단골메뉴가 ‘불교 믿는 나라는 다 가난하다’이다. 심지어 어느 유명 교회의 잘 나가는 목사님은 2005년 발생한 쓰나미로 폐허가 된 서남아시아 국가들을 언급하며 ‘예수를 안 믿고 불교를 믿는 까닭이라’해서 그에 대한 논쟁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도 있다.
이에 대한 불교신자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일본이 어디 가난한 나라인가’, ‘아프리카나 남미 등 예수를 믿는 나라도 가난한 곳이 많지 않은가’ 등 정면으로 이야기를 반박하는 것이다.
정말 부처님께서는 세간 사람들이 가장 가혹하게 부딪치는 경제 현상에 대해 침묵을 지키신 것일까. 아니면 재가 신도들을 위해 설하신 부처님의 교설이 간과되고 있는 것일까.
근래 우승택이라는 분이 불교 TV에 나와 ‘32개의 경제지표로 공부하는 금강경’이라는 강의를 해서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남의 돈을 맡아 불려주는 증권사 자산관리사인 그가 한때 잘못된 투자로 자신과 타인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힌 후 깊은 시름 속에서 우연히 금강경을 읽게 되었는데 바로 거기에서 자신이 처했던 모든 문제들의 원인과 해답이 있더란다. 금강경의 ‘공’, ‘무아’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세상을 바로 보는 안목이 생기니 부자는 물론이거니와 원하는 건 뭐든지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불교를 잘 이해하고 그 원리를 적용하면 무엇이건 성공할 수 있다는 홍보대사가 되어 방송과 신문 등 언론매체는 물론이거니와 부자 되는 경영 컨설턴트로서, 불교와 재산증식에 관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연예인 못지않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전문 불교학자도 아닌 그가 투자전략을 금강경의 32품에 대입하여 조목조목 강의한 아이디어도 참신했지만 논리의 비약 없이 합리적이고 공감 가는 비즈니스의 경험을 적절히 섞어 대중 친화적이면서도 가장 예민한 현실적인 욕구를 솔직담백하게 파헤쳐 풀어나간 것이 인기 비결이 아닐까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금강경과 경제’강론에서는 첫째, 초기불교 경전에 실린 붓다의 말씀을 인용해 초기불교의 경제철학을 이해하고 둘째, 대승불교의 출현과 반야부의 핵심인 금강경과 유식사상을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셋째, 금강경의 사구게를 통해 경제 원리를 소개하며 넷째, 결론과 함께 강론을 요약 정리해보고자 한다.

2. 초기불교와 경제

석가세존의 원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아함부’의 경전을 살펴보면 부처님과 부처님을 둘러싼 초기 교단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거기에는 물론 출가 비구들을 위한 근본 가르침인 삼법인과 존재의 보편적인 모습인 연기법을 인간의 실존에 비추어 열두 단계로 설명하신 십이 인연법을 통해 존재의 실체가 없음을 깊이 통찰하여 그로부터 벗어나 니르바나의 세계로 안내하는 사성제와 팔정도의 가르침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출가 수행자들의 경제 행위는 일체 금지되어 있었다. 수행자들이 걸식으로 식생활을 해결하는 것이 당시 인도의 사회풍습이었으며 또한 거처도 나무 밑 혹은 바위 위를 권장하였기 때문에 경제 행위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석존도 예외가 아니어서 병자를 제외하고는 그날 분의 걸식이 남으면 충분히 걸식하지 못한 동료에게 나누어 주거나 혹은 강, 들판에 버려 물고기나 들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였지 다음날을 위해 남겨서도 안 되었다.
시간이 지나며 생활의 불편을 덜기 위해 소유품의 수가 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초기불교 교단의 경제적 원리는 철저한 무소유이며 생산과는 거리가 먼 공동소비체적이라 볼 수 있었다. 당시에도 출가교단의 수행자들은 무위도식하며 국가나 사회에 손해를 끼치는 존재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음은 <잡아함경>에 실린 내용이다.
어느 때 거룩하신 스승(부처님)께서는 마가다나라 남산에 있는 ‘한포기 띠(芽)’ 라고 하는 바라문 촌에 계시었다. 그때 밭을 갈고 있던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는 씨를 뿌리는 데에 필요한 오백 자루의 괭이를 소에 메웠다. 때 마침 그는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기에 스승은 한쪽에 가 서 계시었다. 바라문 바아라드바아자는 음식을 받기 위해 서 있는 스승을 보고 말했다.
“사문(沙門)이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사문이여, 당신도 밭을 가십시오. 그리고 씨를 뿌리십시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으십시오.”
스승은 대답하셨다.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
바라문이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멍에나 호미, 호미날, 작대기나 소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갈고 뿌린 다음에 먹습니다’라고 하십니까?”
스승은 대답했다.
“바라문이여, 나의 믿음은 종자요,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내 멍에와 호미, 부끄러움은 괭이자루, 의지는 잡아매는 새끼줄, 생각은 내 호미날과 작대기입니다. 몸을 근신하고 말을 조심하며, 음식을 절제하여 과식하지 않습니다. 나는 진실을 김매는 것으로 삼고 있습니다. 온유함이 내 멍에를 떼어 놓습니다. 노력은 내 황소여서 나를 안온의 경지로 실어다줍니다. 물러남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 피안에 이르면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이 밭갈이는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고 단 이슬(甘露)의 과보를 가져 오는 것입니다. 이런 농사를 지으면,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잡아함 98경>
붓다의 말씀은, 황폐한 땅을 농부가 경작하듯 불교수행자 또한 마음의 밭을 부지런히 경작하니 무위도식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경제행위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가 신도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현세적인 재(財)를 존중할 것을 설하고 있다. 우리는 대개 석가세존의 모습을 부처님 입멸 후 승단의 출가 비구들을 위해 결집된 철저한 무소유와 걸식에 의한 삶을 살아야한다는 가르침을 통해서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부지불식간 경제 행위는 천박하고 탐심 가득한 비불교적인 행위라고 오해하기가 쉬운 것이다. 그러나 재가 신도들이 재산 증식을 위해 노력함을 높이 평가한 경전도 있다.
“비구들이여, 어떤 상인이 있어 오전에 열심히 일하지 않고 낮에도 열심히 일하지 않고 오후에도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면 이 세 가지 조건을 구비한 상인은 아직 얻지 못한 재산을 얻을 수 없고 이미 얻은 재산을 늘릴 수도 없느니라, 비구들이여, 어떤 상인이 있어 오전에 열심히 일하고 낮에도 열심히 일하고 오후에도 열심히 일한다면 이 세 가지 조건을 구비한 상인은 아직 얻지 못한 재산을 얻을 것이고 이미 얻은 재산을 더욱 늘릴 수가 있느니라.” -증지부경전3집차장품 <남전대장경>
한편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가능한 소비와 절제, 보시를 통해 공동체의 삶에 도움을 주어야한다는 말씀도 있다. 한때 세존께서는 왕사성 성안에 살고 있는 장자의 아들 신가라에게 여러 방편으로 사람의 책임과 의무를 설하여 주셨다. 그 가운데는 재산을 탕진하여 망하는 여섯 가지, 첫째 술과 약물에 중독되는 것, 둘째 일없이 바깥으로 돌아다니며 빈둥대는 것, 셋째 축제나 구경 같은 것에 탐닉하는 것, 넷째 노름에 취미를 두는 것, 다섯째 나쁜 이들과 어울리는 것, 여섯째 특별히 게으른 것 등이 있다. 이처럼 법답게 얻은 재산일지라도 사치하지 않고 남들에게 베풀어 복을 쌓으면 살아서 행복하고 죽어서 천상에 태어나리라는 것이 <육방예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적극적인 내핍 생활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며 불교의 중도사상에 의해 수입과 지출의 균형이 잡힌 당시 사회 통념상 적당한 생활수준의 유지를 권하는 것이다.
<앙굿타라 니까야>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수록되어 있다.

“좋은 집안의 사람은 재산의 수입과 지출을 알아 균형이 잡힌 생활을 하여 지나치게 사치하지도, 지나치게 궁핍하지도 않는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재가신도들의 경제행위, 특히 재산의 획득과 증식에 대한 불교의 기본정신은 금욕적 노력의 정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와 같이 얻어진 재산의 분배에 관한 교설을 살펴보면 <잡아함부>에서는 수입을 4등분하여 사분의 일은 생활비에 쓰고 사분의 이는 생업을 경영하는데 재투자해서 이윤을 얻도록 하며 사분의 일은 저축해서 자신이나 타인의 궁핍에 대비하도록 권하고 있다. 결국 소득 중에서 생활비와 저축에 쓰인 나머지를 재생산을 위해 회전시키라는 것을 미루어 보건대 초기불교는 영리추구를 오히려 권장한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당시 인도사회의 정통 종교인 브라만교는 사성계급제도에 의해 출생에 의한 직업의 구별을 철저히 인정하고 있어 자유로운 경제 행위를 할 수 없었지만, 붓다는 출생상의 신분에 따른 직업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붓다를 찾아오는 대중의 대부분은 경제 활동으로 부를 축적하는 상인계급이 주류였던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붓다와 출가승단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서 우기에 비를 피하며 안거하시도록 곳곳에 정사를 지어 헌납했던 상인들을 위해 붓다께서 그들의 경제 활동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셨음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3. 대승불교와 금강경의 등장

붓다가 입멸했다. 그 후 여기저기서 붓다의 가르침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논쟁이 일기 시작하였다. 이에 가섭존자가 중심이 되어 교단의 말씀을 남기어 후세에 전하고, 또 붓다의 말씀에 대한 통일을 기해 제자들 사이 논란의 여지를 줄일 목적으로 500여명의 제자들이 라자그리하(왕사성) 칠엽굴에 모였다. 이 칠엽굴은 우기동안 비구들이 비를 피하며 수행하던 곳이었다. 이것이 바로 가섭존자가 상좌가 되어 아난존자의 구술을 바탕으로 승단의 출가 비구들 전원 만장일치로 채택된 1차 결집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으므로 부처님의 열반을 전해들은 갠지스 강 유역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스승의 가르침을 전도하던 많은 제자들이 1차 결집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이때 참석치 못한 제자들이 같은 도시의 다른 곳에서 별도의 결집 모임을 갖게 되었는데, 이 2차 결집에는 1차에 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비구, 비구니뿐만 아니라 평신도들도 많았다고 하며 따라서 이들이 기억하는 부처님의 설법 내용은 승단의 비구들 위주로 결집된 1차 결집 때와는 달랐을 것으로 추정되며 1차 결집 때에는 반야경과 반야부의 핵심인 금강경이 포함되지 않고 2차 결집 때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결집된 경전들의 대부분은 1,2차 공히 몇몇 도덕적 공리들을 제외하고는 비전(秘典)으로 전수되다가 2세기나 되어서야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고 콘제(Conze)는 추론하고 있다.

<계속>
이 원고는 본각선교원에서 강의하는 내용을 미리 간추려 소개한 것입니다. 본각선교원 (02)762-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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