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전속 신이한 이야기(47) - 수제가의 과보

옛날 수제가라는 한 장자가 있었다. 그의 창고는 금과 은 보배로 가득했고, 남종과 여종이 줄을 이루어서 모자란 바가 없었다. 어느 날, 흰 수건 하나를 못가에 걸어두었는데 하늘에서 바람이 불어와 수건이 국왕의 정전 앞으로 날아갔다.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점을 치게 하며 그 까닭을 묻자 신하들이 말했다.
“나라가 장차 흥성하려 하여 하늘에서 흰 수건을 내리신 것입니다.”
신하 수제가가 잠자코 말이 없자 왕은 물었다.
“경은 어찌 말이 없는가?”
수제가는 대답했다.
“감히 왕을 속일 수 없어서입니다. 그것은 신의 집에서 몸을 닦는 수건으로 못가에 걸어둔 것이었는데 바람이 일어서 정전 앞에 날아 온 것입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아홉 가지 색으로 된 수레바퀴만 한 꽃이 또 하늘에서 바람이 일어나 왕의 정전 앞으로 날아왔다. 왕이 다시 신하들과 함께 점을 치게 하며 묻자 수제가가 대답했다.
“그것은 신의 집 동산에서 시들어 떨어진 꽃인데 바람에 날아왔을 뿐입니다.”
왕은 수제가에게 물었다.
“경의 집이 과연 그러하단 말이오? 나는 20만의 대중을 거느리고 경의 집에 가소 구경하고 싶소.”
수제가는 대답했다.
“원하신다면 함께 가시지요.”
왕이 20만 대중을 거느리고 수제가의 집에 이르러서 남쪽 문으로 곧장 들어가니, 서른 명의 사내아이들이 있었다. 왕은 수제가에게 물었다.
“이들은 경의 집 아들인가?”
수제가가 말했다.
“이들은 신의 집에서 문을 지키는 남종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중각에 이르자, 스무 명의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왕이 수제가에게 물었다.
“이는 경의 집의 딸들인가?”
수제가는 대답했다.
“이들은 신의 집에서 중각을 지키는 여종들입니다.”

삽화=강병호
더 나아가 지게문에 이르렀더니 백은으로 된 은 벽과 수정으로 이루어진 땅이 있었다. 왕이 물이 흐른다고 여기고는 의심하며 나아가지 못하자, 수제가가 이내 왕을 인도하였으므로 지게문 안으로 나아갔더니, 황금으로 만든 평상과 백옥으로 만든 책상이 있었다. 수제가의 부인은 120겹으로 된 금은의 장막에 있었다. 그때 왕에게 예배하는 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러자 왕이 물었다.
“경의 부인은 나를 보면서 무슨 언짢음이 있기에 눈물을 흘리는가?”
부인이 대답했다.
“왕의 옷에 묻은 연기 때문입니다.”
왕이 말했다.
“서민은 기름을 사르고, 제후는 밀납을 사르고, 천자는 옻을 사르므로 역시 연기가 없는데, 어째서 눈물이 나올 수 있는가?”
수제가는 대답했다.
“신의 집에는 하나의 명월신주가 있어서 당상 위에 걸어 놓으면 밤낮이 다르지 않아 불빛이 필요 없습니다. 왕은 연기 속에서 사는 왕이므로 부인은 아주 작은 연기 기운도 견딜 수 없음에 그러한 것입니다.”
수제가의 집 앞에는 열두 겹으로 된 누각이 있어서 왕을 데리고 끝으로 올라갔는데 동쪽으로 보고 있으면 서쪽을 잊어버리고, 남쪽을 보고 있으면 북쪽을 잊어버렸다. 모르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갔다. 왕이 잠깐 동안은 더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후원의 흐르는 샘과 목욕하는 못에 이르러서 여러 가지 열매들을 먹으니 달고 맛있었다. 왕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 덧 수제가의 집에 머문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가자 대신들이 왕에게 말했다.
“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수제가가 이내 금은의 값진 보물과 두껍고 얇은 비단과 무늬가 화려한 비단을 보시하자 20만 대중들은 말과 수레를 타고 일시에 궁으로 돌아갔다. 궁으로 돌아온 왕은 이내 신하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수제가는 나의 신하이다. 어찌 신하의 사택이 나보다도 훨씬 더 크며, 창고의 보물이 더 많으며, 거느린 종들이 나보다 더 많을 수 있느냐? 신하들은 어찌 생각하느냐?”
여러 신하들이 말했다.
“뺏으셔야 합니다.”
왕이 이내 40만 명의 대중들과 함께 종을 치고 북을 울리면서 수제가의 집을 포위하고서 백 겹의 담장을 허물어뜨렸다. 수제가의 집 문 안에 한 역사(力士)가 있다가 손으로 금 지팡이를 붙잡고 40만 명 대중을 한 번 가리키니 한꺼번에 모두 거꾸러지면서 잠든 것처럼 땅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수제가는 하늘을 나는 구름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올 때는 무슨 뜻이었기에 잠든 것처럼 땅에서 일어나지 못하는가?”
모든 사람들이 몰려온 이유를 말하자 수제가가 물었다.
“얼어나고 싶으냐?”
사람들이 말했다.
“일어나고 싶습니다.”
수제가가 크고 거룩한 눈을 뜨고 한 번 훑어보자 40만 명 대중들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그의 본국으로 돌아갔다. 왕은 이내 사신을 보내어 수제가를 불러서 함께 부처님께 가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수제가는 저의 신하인데, 전생에 무슨 공덕이 있었기에 재물과 거느린 식솔들이 저보다 훨씬 많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수제가는 보시한 공덕으로 천상의 즐거움을 받고 있다. 그는 옛날에 5백 명의 장사꾼 우두머리로서 여러 장사꾼들을 데리고 귀중한 보물을 가지고 빈 산 속을 가다가 한 병든 도인을 만났다. 그에게 풀집을 지어 주고 평상과 이부자리를 두텁게 깔아 주었을 뿐 아니라 물과 솥과 양식을 대주고 등축을 주면서 천당의 공양을 원하였으므로 이제 그 과보를 얻은 것이다.”
다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때에 보시한 이가 지금의 수제가 부부이며, 그때에 병든 도인이 지금의 내 몸이다. 5백 명의 장사꾼들은 모두가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수제가경>에 나온다.)
동국대역경원 발행 〈경률이상〉에서 발췌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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