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점(梅花點)→무량보주(無量寶珠)

앞 회에서 보다시피 매화점이 무량보주를 가리킨다. 중앙에 보주가 있고 그 보주 안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오는 광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은 여래의 정수리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오는 것과 같고, 삼천대천세계를 압축한 건축에서 발산하는 무량한 보주와 맥을 같이 한다. 보주라는 것은 삼천대천세계에 충만한 대생명력을 가장 강하게 가장 작게 압축한 조형이므로 여래와 법당에 일관된 표현원리가 가능하다. 이제 여러분도 점점 보주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여의주(如意珠) 역시 통속화된 그릇된 용어이므로 여의주를 연상하면 보주의 본질은 영원히 풀려지지 않는다. 보주라는 용어 역시 지금까지 수 천 년 도안 축적된 지식을 아낌없이 버려야 보주의 분질에 겨우 다가갈 수 있는 문(門)에 이를 수 있다.

좀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아마도 시대가 올라갈수록 보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하면 믿기 어려울 테지만, 신비하게도 보주의 본질은 문명이 시작할 때부터 완벽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이미 정착하고 있지만, 여러분이 잘 아는 백제의 무령왕릉에 얼마나 많은 무량보주가 많은지 모른다. 무령왕릉의 칠(漆) 목관의 표면에 수많은 금속제 무량보주의 조형이 있다. 학자들은 어느 꽃이라고 가리키지는 않았지만 그저 단순히 꽃장식[花裝飾]이라 부르고 그 의미는 밝히지 않고 지나친다. 그러나 옛 조형에는 그 당시 우주생성론이 투영되어 있으며, 아무리 간단한 장식이라도 의미 없는 조형은 없다. 오히려 간단한 조형에 중요한 상징이 깃들어 있으므로 도리어 상징을 읽어내기 어렵다.

중앙의 보주 주변에 거리를 두고 있는 조형을 금속 공예로 만들 때에는, 백제 무령왕릉의 왕의 목관에서처럼 전면(全面)을 가는 금판(金板))으로 육각수문(六角水文: 귀갑문龜甲文이라 흔히 부르는데 틀린 용어임을 이미 설명했다.)을 고정시키고 그 육각수문 안에 각각 무량보주 조형을 두었으니 ‘물에서 화생하는 무량보주’라는 엄청난 상징이 눈앞에 나타난다. 여래로부터 무량한 보주가 생겨나듯이, 세속의 왕 역시 하늘이 내린 초월적 존재이므로 관 속의 몸으로부터 무량한 보주가 생겨나는 것을 무령왕의 옻칠을 한 목관이나 족침(足枕)에도 표현하여 두었다.(그림 ①-1, 그림 ①-2)

그러면 증거가 있는가? 있다. 반구형의 보주 주변에서 무량한 보주가 생겨나는데 구체적으로 중앙의 보주 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금실을 꿰어 둥근 판을 고정시켰다. 이런 모양을 영락(瓔珞:구슬목걸이)이라 일반적으로 부르고 있지만 이 원판(圓板)은 구형(球形)의 보주를 간단히 편편한 둥근 원으로 나타낸 것이다.(그림②-1, 그림②-2) 신라시대와 백제시대의 금관과 금동관에도 이러한 장식이 수없이 달려있으나 영락이 아니고 모두 보주를 상징한다. 이렇게 올바로 인식하면 왕관(王冠)의 고차원적 개념이 회복되어 큰 의미를 띠게 된다.

무령왕릉에서는 보주에 직접 잘디잔 알갱이를 잔뜩 붙인 조형이 있다. 흔히 누금세공(鏤金細工 , filigree: 작은 금 알갱이를 붙이면서 문양을 나타내는 방법)한 금목걸이라 부르지만 이 역시 놀라운 무량보주를 보여준다.(그림③) 조선시대 단청의 씨방 도안을 입체적으로 나타낸 경이적인 표현방법이다. 그러므로 누금세공이란 제작기법은 문명의 발생지에서 일찍부터 개발된 것으로 ‘보주의 개념’의 역사는 매우 오래고 모든 장르에서 이미 표현하여 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까지 오로지 기법에만 관심을 두어왔다. 일반적인 설명을 읽어보기로 한다. 작은 알갱이란 바로 무량한 보주를 가리킨다.

‘세금세공(細金細工)·입금세공(粒金細工)·필리그리(Filigree)’라고도 부른다. 특히 신라에서 크게 성행하였는데 귀고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반지·팔찌·드리개[垂飾]·구슬·곱은옥[曲玉]의 금모(金帽) 등 장신구와 칼자루장식·말띠드리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귀고리에서는 달개[瓔珞]·드리개장식의 가장자리를 꾸미는데 많이 쓰이나, 경주 보문동 부부총(夫婦塚) 출토의 귀고리는 굵은고리太環]표면에 금알갱이로 거북등과 꽃잎무늬를 세밀하게 장식하였다. 백제의 예로는 공주 무령왕릉 출토의 곱은옥의 금모에 나타난 것이 가장 섬세하고 대표적인 것이다. 누금세공의 기법은 원래 이집트의 12왕조 때에 출현하여 메소포타미아·그리스 등지에서 성행한 것으로 중국에서는 한대(漢代)에 나타난다.’(밑줄 친 것은 틀린 용어: 필자)

대게 이런 정도의 설명인데 독자는 이제 이 설명에서 올바르지 않은 용어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다가 누금기법이 왜 생겼는지 큰 깨달음이 일어났다. 이데아가 먼저 있고 그에 따라 제작기법이 고안된다는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즉 조형미술의 완성을 위하여 제작기법이 개발된 것이다. ‘무량보주(無量寶珠)’는 이미 내가 만든 용어이지만, 하나의 보주를 보고 무량보주라고 말하면 이제 이해하기 쉬울 것이고, 이제는 보주 안에 보이지 않는 무량한 보주가 가득 들어 있다가 밖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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