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나라 야쿠시지

韓 사천왕사와 비슷한 쌍탑 구조
원형 간직한 동탑, 현재 보수 중
국보 약사 삼존상 장엄함 눈길

▲ 일본 나라 7대 사찰 중 하나인 야쿠시지(藥師寺)의 전경. 동서 대탑과 회랑은 신라 사천왕사에서 시작된 쌍탑 일금당 양식을 그대로 받아드린 것이다.
요즘 한국 대중문화는 아이돌이 이끌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본 역시 일찍이 아이돌 문화가 자리 잡은 곳이다. 대형 아이돌 걸그룹의 효시 ‘모닝구무스메’로 시작해 ‘AKB48’까지 그 수와 층위도 다양하다. 총 48명의 소녀들로 구성된 ‘AKB48’은 현재 일본 국민 걸그룹으로 그 인기는 한국의 ‘소녀시대’와 비할만 하다. 

여기서 한 가지 상상을 해보자. 당대 최고의 아이돌들이 사찰의 법당 신축 법회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처님께 헌정하는 콘서트를 개최한다면? 실제 이런 일이 일본 나라 야쿠시지(藥師寺)에서는 있었다.

나라 천도 1300주년을 맞았던 2010년 야쿠시지는 강당 신축을 기념하는 행사를 9월 26일 개최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법회와는 다른 행사였다. 당대 최고 아이돌 걸그룹 ‘AKB48’가 ‘꿈의 꽃잎’들을 타이틀로 장대한 공연을 펼쳤기 때문이다. 앞서 6, 7월에는 유명 남성 아이돌 가수 도모토 쯔요시(킨키키즈 소속)가 단독 콘서트를 같은 자리에서 진행했다. 두 공연 모두 새로 태어난 야쿠시지에 자신의 공연을 부처님께 봉헌하는 의미로 진행됐고, 불교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일본 아이돌 팬들로 사찰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도모토 쯔요시는 항상 어머니가 사찰에서 가져다 준 염주와 단주를 착용하는 신실한 불자로 자신이 출연한 로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도 나라 야쿠시지 강당에서 노래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공연 소식은 대중적 친밀감을 불러 일으켰고 현재 야쿠시지는 일본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사찰이 됐다. 스스로 고찰에서 공연을 자처하는 유명 아이돌이 있다니 한국 불자로서 한편으로는 부러운 일이기도 하다.

▲ 일본 아이돌 걸그룹 ‘AKB48’이 2010년 야쿠시지 강당 앞 특설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유명 가수 도모토 쯔요시도 단독콘서트를 같은 자리에서 열었다. <사진= 유튜브 동영상 캡처>
대형 아이돌 그룹을 불러들여 신축 법당 기념행사를 할 정도로 파격을 보여주는 야쿠시지이지만 본래는 법상종의 본산으로 나라 7대 사찰 중 하나다. 

680년 덴무 천황이 황후의 병이 치유되기를 기원하며 창건한 야쿠시지는 발원자인 덴무 천황 때 건립되지 못하고 698년 지토 천황대에 이르러 완성된다. 

원래의 야쿠시지는 아스카 시대에 일본의 수도였던 후지와라쿄에 세워졌으나 황실이 새로운 수도로 이전한지 8년 후에 나라로 이전됐다. 오랫동안 야쿠시지는 수도 이전한 후에 718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됐다고 여겨왔지만 1990년대에 후지와라쿄의 야쿠시지 터가 발굴되면서 두 개의 야쿠시지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후지와라쿄에서 발굴된 야쿠시지는 현재 ‘원(元) 야쿠시지’로 불리우고 있다.

973년에 화재로 절 건물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1528년의 화재로 금당이 소실됐다. 오랜 불사 끝에 1976년에 금당이 재건되기 시작해 현재는 사찰 전체가 복원된 상태이다.

야쿠시지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화재는 본당과 함께 대칭적으로 서 있는 동서 대탑이다. 이중 동탑은 야쿠시지의 유일한 8세기 건축물이다. 이 탑은 하쿠호 시대와 덴표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는 일본의 가장 정교한 불탑의 하나로 여겨진다.

목탑은 삼층탑이지만 차양지붕 때문에 삼층탑이 아닌 것처럼 착각을 들게 한다. 특히 동탑의 경우 서탑보다 30cm가 크게 만들어졌다. 나무가 수축되는 성질을 고려해 200년 후에는 같은 높이가 된다고 한다. 답사 당시에는 동탑이 해체 복원 불사를 진행 중이어서 그 위용을 확인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만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자신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일본편>에서 동탑을 음악과 비유한 구절을 통해 그 장엄함을 가늠할 뿐이다.

“야쿠시지는 내 마음 속 음악과 함께 남아 있다. 100여 년 전 문화재 조사 차 야쿠시지에 온 페놀로사는 야쿠시지 동탑을 보는 순간 저것은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감탄했다. 건축적 리듬감을 절묘하게 표현한 이 명언은 동탑의 아름다움을 더욱 고양해 줬다. 그의 가르침대로 동탑 앞에 서 있으면 마치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이 건축적으로 형상화된 듯 리드미컬한 율동감을 받게 된다.”

▲ 야쿠시지의 동탑. 현재는 해체 복원 중이다.
동서 대탑에 금당을 중심으로 회랑이 둘러쳐진 야쿠시지의 건축 구조는 신라 시대의 사천왕사에서 시작된 쌍탑 일금당 양식을 그대로 습합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반도의 불교 건축이 현재의 야쿠시지를 있게 한 시금석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국보로 지정된 금당의 약사 삼존불도 눈길을 끌게 하는 성보 문화재다. 중생의 병고를 치유하는 약사여래와 두 협시보살은 그 크기도 웅장하며 풍만한 조각기법은 자애로움을 자아낸다. 이런 모습들을 만들어 낸 청동주조법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다. 여기에 하늘하늘 타오르는 듯한 뒤편 광배 역시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  

이런 모든 성보들을 품고 있는 야쿠시지는 사찰 자체만으로도 나라 시대의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당대 최고 아이돌들마저 매료시킨 힘의 원동력은 여기 있었다. 앞서 소개한 도모토 쯔요시는 공연에 앞서 자신의 홈페이지 이렇게 글을 남겼다.

“이번 저의 고향인 나라에서 세계유산인 야쿠시지에서 콘서트를 열게 됐습니다. 나라는 ‘일본문화 원점’이기도 하고 저 ‘자신의 원점’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 물려받은 많은 멜로디와 가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 야쿠시지의 하늘 아래서 노래하고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음에 저는 행복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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