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전속 신이한 이야기(46) 건타시리 국왕의 태자

건타시리 국왕의 태자는 영화(榮華)에 뜻이 없어 호사(豪奢)를 버리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 살고 있었다. 그때에 깊은 골짜기에는 한 마리 굶주린 범이 있었다. 새끼 일곱 마리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눈까지 내려서 어미 범은 새기를 품고 사흘이 지나도록 먹이를 구할 수 없었다. 새끼가 얼어 죽을까 걱정스러워 배고픔을 참고 새끼를 보호하고 있는데 눈이 그치지 않았다. 어미와 새끼는 모두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어미는 너무도 굶주린 나머지 새끼를 잡아먹으려 했다. 이때 여러 신선들이 말했다.
“누가 몸을 버려서 저들을 구제하겠는가?”
신선들의 말을 들은 태자가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낭떠러지 끝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미 범이 새기를 품은 채 눈에 덮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태자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산꼭대기에 서서 선정에 들었다. 곧 청정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서 과거의 아득한 겁 동안의 일을 자세히 살펴보고, 미래 또한 그렇게 살펴보고서 곧 돌아와 스승과 5백의 동학들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몸을 버리겠습니다.”
스승이 말했다.
“도를 배운지 오래지 않았고 지견도 아직 넓지 못한데, 왜 갑자기 아까운 몸을 버리려고 하느냐?”
태자는 대답했다.
“저는 옛날에 천 개의 몸을 버리기로 서원했습니다. 전생에 999개의 몸을 버렸으니, 오늘 버리게 되면 서원을 이루게 됩니다. 이 때문에 버리는 것이니, 스승께서도 기뻐해 주십시오.”
스승이 말했다.
“그대의 뜻과 원이 높고도 미묘하여 반드시 도를 얻을 것이니, 다시는 버리려고 하지 말라.”
그러나 태자는 스승에게 하직 인사를 올렸다. 스승과 5백의 신선들은 눈이 붓도록 슬피 울면서 태자를 따라 산 벼랑 끝까지 이르렀다. 때마침 그날 부란 장자가 남녀 5백을 데리고 공양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갔다가 태자가 몸을 버리려 하는 것을 보고 슬피 울면서 역시 태자를 따라 산벼랑 끝에 이르렀다. 태자는 대중들 앞에서 크게 서원을 세웠다.

삽화=강병호
“나는 지금 몸을 버려 중생의 생명을 구제하겠습니다. 보리를 이루어 금강의 몸과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무위법신을 얻어서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고, 해탈하지 못한 이를 해탈하게 하고 편안하지 못한 이를 편안하게 할 것입니다. 나의 지금의 이 몸에는 무상과 괴로움과 온갖 독이 쌓여 있고, 이 몸은 깨끗하지 않습니다. 이런 몸을 되풀이하며 감미로운 음식과 5욕락으로 공양한다면 이 몸이 죽은 뒤에 은혜를 받을 훌륭함이라곤 없으니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서원하며 말했다.
“지금 나의 살과 피로써 저 주린 범을 구제하고 나머지 사리골은 나의 부모가 뒷날 탑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일체 중생의 몸에 있는 모든 병고와 외로움이 전생에 지은 죄로 인해 탕약과 침과 뜸으로 나을 수 없게 될 때, 나의 탑에 와서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하면 병의 경중에 따라 백 일이 되기 전에 반드시 나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만약 진실이요 거짓이 아니라면, 여러 하늘들은 향과 꽃을 비처럼 내려 주십시오.”
태자가 말을 마치자 하늘에서 만다라꽃이 비처럼 내렸으며 땅이 모두 진동했다. 태자는 곧 사슴 갑옷을 벗어서 머리를 싸매고 스스로 몸을 범 앞에 던졌다. 그러자 어미와 새끼가 태자의 살을 먹고, 모두 다 살아났다. 이때 낭떠러지 끝에 있던 대중은 태자가 범에게 먹혀 뼈와 살이 흩어져 어지러이 널린 것을 바라보고 슬피 울며 크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그 소리가 산을 진동시켰다. 어떤 이는 스스로 가슴을 치면서 땅에 누워 뒹구는 이도 있었고, 어떤 이는 선정에 드는 이도 있었고, 머리를 조아리며 참회하는 이도 있었다. 여러 하늘과 천제석과 사천왕 등과 일월의 하늘들과 수천만 대중들은 모두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내어 음악을 울리고 향을 지피며 꽃을 흩뿌리면서 태자를 공양하고 부르짖었다.
“훌륭하십니다. 마하살타시여. 이로부터 오래지 않아서 도량에 앉으시게 되오리다.”
사자(使者)가 두려워하면서 곧 음식을 여러 신선들에게 주고 돌아와서 태자의 어머니인 왕비에게 자세히 위의 일을 전했다. 왕비가 말했다.
“재화(災禍)로구나, 나의 아들이 죽은 것이다.”
그리고는 가슴을 치고 크게 부르짖으며 왕에게로 달려갔다. 왕이 듣고는 기절해 버렸으므로 신하들은 왕에게 간하였다.
“태자는 산에 계시오니, 왕께서는 잠시 진정하십시오.”왕과 부인과 비후, 채녀, 신하, 백성들이 달려서 산으로 올라갔고, 장자 부란은 마중 나와서 왕에게 말했다.
“태자는 어제 몸을 바위 아래로 던져 자신의 살을 범에게 먹였습니다. 지금은 뼈가 흩어져 어지러이 땅에 있을 뿐이니, 함께 시신이 있는 데로 가십시오.”
왕와 왕비를 비롯한 대중이 소리 높여 슬피 울부짖어 산골짜기가 진동했다. 왕과 왕비는 아들의 시신 위에 엎드려 간장이 끊어지도록 슬피 울다가 기절하여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태자비는 나아가 태자의 머리를 붙들고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말했다.
“차라리 내 몸이 부서져서 남편 대신 범의 먹이가 될 것을.”
그때에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말했다.
“태자는 보시하며 중생 제도하기를 서원했고, 무상의 살귀에게 빼앗긴 것이 아닙니다. 아직 냄새가 나거나 문드러지지 않았으니, 공양을 베푸셔야 합니다.
곧 유골을 거두어 산골짜기 어귀로 나와서 평평한 땅에다 전단향의 나무를 쌓고 향과 소유를 뿌리고 화장하였으며, 사리를 거두어 가져다 칠보탑을 세웠다. 그때의 태자는 훗날의 석가모니 부처님이시고 부왕은 부처님의 아버지이며, 부인은 부처님의 어머니였으며 화장을 한 이는 아난이었다. (〈보살투신반아호경〉에 나온다.) 동국대역경원 발행 〈경률이상〉에서 발췌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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