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원성 보살의 바라밀 일기

불상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아들 군대보내는 부모마음 다 같아

부처님의 형상

우리는 불자로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를 순례하면서 많은 부처님(불상)을 친견하게 되고, 그 다양한 형상을 보면서 각 나라의 특징도 알게 되었다. 부처님의 모습이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합장 예경하며 공양물도 올린다.

흙으로 만들어진 불상이거나 동으로 만든 불상, 돌로 만든 불상, 또는 목재로 만든 불상 등 여러 종류의 불상은 실상(實相)의 부처님이 아니지만 우리는 그 형상을 통해 살아계시는 부처님을 친견하는 마음으로 모신다. 하지만 그 부처님을 부처님이 아닌데 왜 절하느냐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록 그림일지라도 불상을 보면 부처님이란 생각으로 불상을 보게 되고 부처님이란 글자를 보아도 우리는 부처님이라는 생각에서 다른 시비(是非)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부처님을 크게 모시면서 세계 최대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 또 그 곳이 관광 명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불상이 커야만 반드시 영험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처녀시절 난생 처음으로 이웃 노보살님들을 따라 통도사 백운암에서 삼일기도를 한 일이 있었다. 절은 영취산 깊고 높은 산속에 위치하고 있어서 힘들게 올라갔으며, 그곳의 암자는 아주 작았고 부처님도 작은 유리관 속에 모셨다.

노 보살님들은 새벽 세 시가 되자 너무도 추운 정월이었는데도 개울가에 꽁꽁 얼은 얼음을 방망이로 깨고 찬물 목욕을 하는 것을 보고 나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로 알고 따라서 했었다. 머리는 금방 얼어붙어 빗이 내려가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 했는데, 노보살님들을 따라 절을 하고 있을 때 머리에서 덜거럭 덜거럭 소리가 나더니 방안의 따뜻한 온기와 절 할 때의 열기로 얼음이 녹아내렸다. 나는 이 작은 불상 앞에서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위해 이토록 간절하게 기도하시는지 궁금했고, 나는 아무 뜻도 모르고 노보살님들을 따라 절을 했다. 그러나 기도를 마치고나서부터 나도 모르게 매일 조석으로 집 앞 대각사에 가서 백팔 배를 꼭 해야겠다는 서원을 세우게 되었고 실천에 옮겼다. 그렇게 백일을 기도하는 동안 청년회에 가입을 하게 되었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함께 활동 하게 되었다.

그 후 남해 보리암에 갔을 때도 이곳 역시 작은 법당에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이곳은 우리나라 삼대관음성지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며 간절한 기도로 밤을 새우는 곳이다. 나도 또한 그 속에서 신심으로 부처님의 가피도 알게 되었고 불자로서의 삶이 더욱 성숙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서 부터 매일 절에 갈 수가 없어 작은 불상을 방 한 켠에 모시고 기도하기로 마음먹고 매일 백팔 배와 사경을 했다. 아이들에게도 매를 드는 대신 백팔배를 시켜 부처님 품속에서 자라게 했다. 사람들은 “집에 부처님을 모시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불교를 잘못 이해하고 미신으로 믿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소풍갔을 때나 여행에서 부모님께 귀한 선물이라며 불상을 사올라치면 그마저도 집에 불상을 두면 큰일 난다며 아이를 나무라며 절에 다시 가져와 몰래두고 가는 어리석은 불자들이 있어 안타깝다.

삼귀의례와 오계를 지키고 육바라밀을 행하며 사홍서원을 이루려는 의미를 늘 기억하고 집집마다 불상이 아니면 ‘佛’자 한자라도 걸어두고 내가 누구인지를 느껴보고, 오늘하루도 내게 어떤 잘못과 허물이 있었는지도 살펴보며 기도와 참선으로 바른 불자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 자녀들을 불교 속으로 끌어 들이지 못한다면 미래의 한국불교를 어떻게 말 할 수 있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의 소중한 인격과 인품으로 자랑스러운 불자를 키움이 가장 큰 공덕이 아닐까 싶다.

 

부모의 마음

TV에서 탤런트 이동준의 아들 이일민의 이야기가 소개 되고 있었다. 가족의 화기애애한 행복한 생활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곧 군대에 가야하는 아들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고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은 여느 엄마와 다를 바 없었다. 아들 말만해도 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것을 보고 가슴이 짠해졌다. 아빠인 이동준은 남자여서일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첫 번째 순간은 아들이 태어났을 때였고, 두 번째는 아들이 군대에 가는 영장을 받았을 때라고 했다. 그것도 해병대를 간다고 하니 아들이 너무도 믿음직하다고 했다. TV를 보면서 엄마와 아빠의 마음이 이렇게도 다를까. 생각했다. 아들이 군대에 가기 위해 머리를 깎으러 이발소에 갈 때였다. 함께 따라나선 아버지는 바리캉을 받아 손수 아들의 머리를 밀어 주었는데, 아버지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그 씩씩하던 아버지도 별 수 없었다. 아들은 시원히 깎긴 머리를 어루만지며 서운한 마음과 어색한 듯 미소를 지으며 “아이 추워”라고 했다. 머리를 깎은 아들의 모습을 본 엄마는 “더 애기 같다”며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의 눈엔 그 어떤 모습일지라도 아들을 보는 마음은 마냥 어린 아이 같아 보이는 모양이다. 입대날이 되었다. 전국의 많은 부모님들의 환송을 받고 입대 하는 젊은 청년들 속에 아들 일민이도 있었다. 그리고 이 많은 부모님들 속에 일민이의 부모도 내내 아들을 지켜보며 연신 힘내라고 파이팅을 외쳐 주면서도 계속 눈물을 훔쳤다. 오늘은 아빠도 어쩔 수가 없나보다. 그동안 든든하고 대견하게만 생각했던 아들을 떠나보내는 이 순간만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넘쳐나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부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라도 부모라면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