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점(梅花點)→무량보주(無量寶珠)

‘매화점(梅花點)’이란 용어는 단청 관련 모든 책에 예외 없이 나온다. 실제로 사찰 법당들은 물론, 경복궁이나 창덕궁 등 조선시대 궁궐의 크고 작은 건물에 그 조형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나 그 조형에 시선이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면 왜 그 용어가 옳지 않은가? 옳지 않은 이름을 가지고 보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귀면은 인터넷에서 한자로 전환하면 금방 ‘鬼面’이 떠서 편리하지만, 용면은 전환할 수 없어 용(龍)과 면(面)을 따로따로 한자로 전환시켜야 한다. 시간이 걸리므로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보주(寶珠)’라는 용어는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인터넷에서 단 번에 한자로 전환할 수 없다. 매화점 역시 자판 한 터치에 금방 뜬다. 인터넷에서는 ‘가장 옳은 용어는 뜨지 않고, 가장 그른 용어는 뜬다.’

매화점도 마찬가지다. 단청 전문가들의 모든 책에 매화점이란 용어가 있으나 설명이 없으며 더 나아가 법당이나 궁궐 건축에 왜 그리도 많은지 밝히지 않고 있다. 어찌하여 건축 곳곳에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조형들이 그리도 많은가! 그토록 많다면 필시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다. 매화점이라는 것은 매화꽃을 닮아서 붙인 이름일 것이다. 매화-난-국화-대나무 등, 사군자(四君子)를 먹물 묻혀서 붓으로 쳐 본 사람은 금방 알 것이다. 언뜻 보면 매화를 연상하지만 매화는 결코 아니다. 이미 말했거니와 근대 이전의 조형미술에는 현실에서 보는 조형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외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조형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기운’을 표현한 것이어서 장인 이외의 사람들은 그 보이도록 나타낸 조형들이 눈에 보일 리 없다. 사람들이 매화점이라고 부르는 조형은 ‘우주의 기운’을 표현한 것이다. 왜 그런지 증명해 나갈 것이다. 무한한 우주의 상징을 최대한으로 압축한 것이어서 인류는 그 조형의 구성 원리와 상징구조를 읽어내어 문자언어로 기록하지 않았다. 장인들은 충분히 알고 그렸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도저히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본 비슷한 사물을 보고 용어를 만들었으므로 매화점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영원히 매몰시켜 왔던 것이다. 단청 책들에 나오는 매화점에 대한 설명을 다음에 인용하여 읽어보기로 하자.

‘부리초’란 부재의 끝 마구리면에 장식되는 문양을 가리키는 것으로, 부연이나 서까래, 보, 도리, 평방, 창방, 사래, 추녀, 첨차의 부리가 모두 해당된다. 각 부리의 중심에는 간단한 단독 문양을 장식한다… 부리초 문양으로는 먹 바탕에 백색 매화점이나 백색 태평화 등… 이 사용된다. 매화점은 백색으로 중심의 꽃 심에 해당하는 원을 찍고, 다시 그 둘레에 원을 5~6개 찍어 완성한다. 태평화는 천하가 태평해 만사가 평안해지기를 기원하는 도안이다… (<한국의 단청>, 곽동해 지음, p. 283)

태평화(太平花)도 한자로 전환하는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매화점과 태평화는 조형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을 지닌 것인데 이 글에서는 매화점만 다루기로 한다. 매화점의 정체를 밝혀보면, 한 마디로 ‘무량보주(無量寶珠)’를 말한다. 즉 중앙의 비교적 큰 보주에서 사방으로 여러 개의 작은 보주가 생겨나는 조형으로 그 조형의 역사는 유구하다.(그림 ①)

단청의 무량보주를 자세히 보면 중앙의 보주에서 주변의 보주에 모두 가는 줄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중앙의 보주에서 무량한 보주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가는 줄이 있는 조형은 말할 수 없이 귀중하다. 그런 조형이 경우에 따라 줄이 없어진다. 우선 부석사 괘불의 하늘에서 그런 조형을 찾아볼 수 있다.(그림 ②)

원래 하늘에는 무량한 보주가 가득 차 있는데 그저 수많은 보주들로 가득 차게 하면 혼란스러우므로 중앙에 보주를 두고 주변에 보주를 두르는 단위의 조형을 만들어 검은 하늘에 가득 배치한다. 밤하늘이 아니다. 옛 사람들은 하늘이 깊어서 현(玄)이라 표현했으므로 검게 칠한 것이지 밤하늘이 아니다. ‘별 같이 보주들이 가득 찬 하늘’이다. 불화의 이런 조형을 보고 매화점이라 부를 것인가?

11월 12일, 통도사 적멸보궁 조사하러 가면서 관음전(觀音殿)의 부연이나 서까래, 보, 도리, 평방, 창방, 사래, 추녀, 첨차 등 그 수많은 마구리는 물론 일체 부재뿐만 아니라, 지붕의 각종 기와에서 우리가 매화점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무량보주’라고 고쳐야만 하는 조형들이 명료하게 눈에 들어왔다. 무한한 우주의 압축인 법당전체에서 무량보주가 폭발하듯 발산하는 장엄한 드라마를 보았다.(그림 ③)

보주들이 여러 개가 있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의 보주라도 보주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오므로 무량보주라고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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