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교토 텐류지 일원

임제종 본산 1위 사찰 공고히
무소 소세키 스님이 조성한
지천회유식 조원지 정원 눈길


▲ 교토 텐류지(天龍寺)의 정원. ‘치센카이유시키(池泉回遊式)’정원으로 그 규모가 크고 아름답다. 이 정원에는 창건자인 무소 소세키 스님의 상생의 화두가 담겨 있다.
1464년 오닌(應仁)의 난은 쇼군의 후계자를 둘러싸고 슈고 다이묘들의 대립이 얽히면서 11년간이나 지속된 내란이다. 무로마치 시대 가장 강력한 쇼군이었던 요시미츠가 죽은 후, 슈고 다이묘의 힘은 쇼군의 힘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쇼군과 다이묘의 대립, 오닌의 난은 하극상의 전국시대를 여는 서막이었다. 11년의 전란으로 천년 고도(古都) 교토는 황폐해졌으며, 막부의 건물은 물론 텐류지(天龍寺) 등과 같은 사찰들은 잿더미가 됐다.

그로부터 450년이 지난 현재, 텐류지 일원은 완연한 관광지이다. 아라시야마(嵐山)의 대나무 숲, 도롯코 열차를 이용하기 위해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텐류지는 이 같은 관광지구의 중심에 있다.

텐류지는 일본 불교 대표 선종 종단인 임제종 텐류지파의 대본산으로 교토 5산 중 제1위 사찰이기도 하다. 원래는 왕실 별궁으로 건립됐으나 1339년 고다이고 일본 천왕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무소 소세키(夢窓疎石, 1275~1351) 스님에 의해 사찰로 개축됐다. 창건 당시에는 150여개의 전각이 들어선 엄청난 규모였으나 오닌의 난으로 인해 현재의 모습으로 축소됐다. 그래도 전해져 내려오는 전각들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다.

텐류지 곳곳에는 명소들이 많다. 법당 천장에 있는 ‘운룡도(雲龍圖)’는 텐류지에 들리면 꼭 봐야 하는 작품이다. 이전에는 메이지 시대 활약했던 스즈키 쇼넨 화백의 운룡도가 있었으나, 수복이 어렵고 손상이 심해 지금 그림은 현대 일본화의 거장이었던 가야마 마타조(加山又造, 1927~2004) 화백이 그린 그림으로 대체됐다. 말년의 가야마 화백이 1997년 그린 운룡도(12.6m×10.6m)는 마치 실제하는 듯 역동적이다. 날카로운 눈은 법당 안 어디를 걸어도 자신을 주시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 같이 거대한 용을 그려놓은 이유는 예로부터 불을 다스린다는 용의 힘으로 법당이 다시는 전화(戰火)에 휩싸이지 않기를 바라는 일본인들의 염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텐류지를 대표하는 곳은 ‘방장(方丈)’이라는 편액이 걸린 전각이다. 대부분의 일본 사찰이 그렇듯 방장 전각에는 회랑을 돌며 감상할 수 있는 ‘소겐지(曹源池)’ 정원이 있다. 사찰 정원을 처음 조성했다고 알려진 무소 스님이 조성한 이 정원은 흰 자갈과 모래, 돌로 그려내는 카레산스이(枯山水)와는 다른 전경을 자아낸다.

조형 양식도 조금 다르다. 용안사가 카레산스이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면 텐류지는 ‘치센카이유시키(池泉回遊式)’로 중앙에 있는 연못 주위를 돌며 관상하도록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규모도 용안사의 정원보다 훨씬 웅대하다. 돌과 바위로는 폭포를 만들었고, 크고 작은 바위들은 어딘가의 풍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했다. 자신이 본 심산유곡의 경관을 그대로 옮겨 놓으려고 했던 일본 특유의 미학이 이곳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텐류지와 정원을 창건한 무소 스님은 이 정원 조성을 위해 패전 포로들을 이용했다. 일편 보기에는 승려가 대립 세력을 노예로 이용하는 것이 비인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속뜻은 달랐다고 한다.

▲ 텐류지 법당 천정의 운룡도
앞서 오닌의 난을 거론했듯이 당시 일본은 하극상이 빈번이 일어났던 전란의 시기였다. 천황, 막부, 막부의 반대 세력 등 치정자들이 한데 뒤엉켜 너나 할 것 없이 아귀 다툼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 치정자부터 민초들까지 숭앙을 받았던 무소 스님은 달랐다. 이들 모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무소 스님은 스스로 원수를 두지 않고 권력자들에게 용서하고 상생하는 삶을 강조했다. 그래서 죽은 천황을 기리는 사찰을 창건토록 한 것이다. 패잔병들에게 사찰의 정원을 조성하는 불사를 책임지게 한 것도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명분을 주기 위해서 였다. 이 같이 텐류지의 저변에는 대립과 갈등의 전란 속에 ‘상생’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살았던 무소 스님의 원력이 담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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