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살이 상주하는 북한산 이야기 - 5. 문수봉(文殊峰)

탄연 스님 창건 문수암에서 유래
동자 따라간 동굴서 문수보살 친견
동굴 옆에 지은 문수암 3대 문수성지

문수봉은 의상봉에서 시작하는 의상봉능선의 마지막 봉우리로 높이는 727미터이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속한다. 봉우리 북쪽 자락의 청수동암문에서 의상봉능선, 산성주능선, 그리고 비봉능선이 만난다. 봉우리 위에 있는 두꺼비 모양의 바위 등에 걸터앉아 기도하면 지혜로운 자녀가 태어난다는 전설이 전한다.

문수봉은 고려 시대에 탄연(坦然) 스님이 창건한 문수암(문수사)에서 명칭이 유래한다. 탄연 스님의 속성은 손(孫), 호는 묵암(默庵), 시호는 대감국사(大鑑國師)이다. 스님은 고려 문종 24년(1070)에 밀양에서 태어나, 19세에 개성 광명사의 혜소(慧炤) 스님에게 사사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인종 23년(1145)에 왕사가 되고, 의종 13년(1159)에 지리산 단속사에서 입적했다.
탄연 스님은 출가 후 국내의 이름난 산을 찾아다니며 수도하다가 어느 날 삼각산에 들어서게 되었다. 해가 저물어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았으나 인가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멀리 길을 가는 동자가 있었다. 스님이 동자에게 길을 물으려고 따라갔으나 좀체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동자는 계곡을 건널 때나 바위를 오를 때 힘든 기색이 없었다. 동자의 걸음걸이는 바람처럼 가벼우면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스님이 동자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뛰듯이 달려가도 유유히 걷는 동자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스님은 동자를 따라 점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스님은 허겁지겁 동자를 따르기 바빴는데, 가쁜 숨을 돌리고 보니 어느 순간 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스님이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굴속이었다.
굴속은 아늑했고 한쪽 구석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스님은 샘물로 목을 축였다. 샘물은 달고 시원했다. 샘물을 마시자 배고픈 느낌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비로소 스님은 굴속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굴 한가운데 문수보살이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연화대에 좌정해 있었다. 주위에는 수많은 동자가 문수보살을 호위하고 있었다.
동자들은 한결같이 천진난만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굴속은 문수보살의 후광으로 대낮처럼 밝았고, 은은한 향기가 가득했다. 스님이 급히 일어나 문수보살께 삼배를 올리고 고개를 들자 사자를 탄 문수보살이 봉우리 위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수많은 동자가 오색구름이 피어오르는 봉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스님은 문수보살과 동자를 향하여 합장하였다. 비로소 스님은 모든 것이 문수보살의 뜻임을 알았다. 문수보살이 동자로 하여금 스님을 동굴로 인도하게 한 것이다. 스님은 그 동굴을 문수굴이라 칭하고 수도를 하기 시작했다. 스님이 경을 읽으면 언제나 산속의 길짐승과 날짐승들이 모여 독경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스님은 불법에 정진하는 한편, 틈틈이 서예를 연마했다. 스님은 나뭇가지를 꺾어 붓으로 삼고 땅바닥을 종이로 삼아 글씨쓰기를 했다. 굴 바닥이 움푹 팬 것도 스님이 글씨쓰기 연습을 많이 한 때문이라고 한다.
스님은 예종 4년(1109년)에 문수굴 옆에 절을 지어 문수암이라 칭했다. 문수보살이 지혜의 화신이요, 지혜가 불도를 이루는 근본임을 널리 알리기 위함이었다. 문수암은 탄연 스님이 창건한 이래 뛰어난 스님들이 수행한 장소로 유명하다. 고려 불교의 중흥조인 태고 보우국사가 문수암에서 정진할 때 청의동자로부터 차 한 잔을 받아 마시고 크게 깨달았다고 하는데, 그 청의동자 역시 문수보살의 화신으로 전해진다.
탄연 스님과 보우국사뿐만 아니라 문수암에서 수도한 뛰어난 스님들은 모두 문수보살의 가피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 이래 문수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행했다. 삼각산 문수암은 오대산 상원사, 고성 문수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문수 성지이다.
문수암과 문수봉은 국내 제일의 기도처로 알려져 고려 시대에는 의종이 친히 등정하였고, 조선조 문종 원년에는 연창 공주가 문수암을 중창하여 왕실의 원찰이 되기도 하였다. 영조 때의 암행어사 박문수는 그 아버지가 문수암에서 기도하여 얻은 아들이라고 한다. 근대에 들어서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어머니가 문수암에서 백일 기도를 올린 뒤 이승만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8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문수암에 올랐다. 현존하는 건물로 대웅전과 나한전, 산신각 등이 있는데, 대웅전의 문수보살상은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가 모신 것이고, 석가모니불은 영친왕 이은(李垠)의 비인 이방자(李方子) 여사가 모신 것이다.
문수암이라는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문수암에 올랐을 때 쓴 것이다.
문수암은 6·25 전쟁 때 불탄 것을 1957년에 중창하였다. 불나기 전에는 오백 나한을 모신 나한전이 유명하였다. 1983년 허혜정 스님이 문수굴을 굴법당으로 장엄하여 불자들의 기도와 참배 공간이 되었다.
지혜의 화신인 문수보살에서 명칭이 유래한 문수봉은 마치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듯 우뚝 솟아 있다. 봉우리 위에는 문수보살을 호위한 동자들처럼 다양한 모양의 바위가 둘러싸고 있는데,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작용으로 기이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을 지니고 있다. 정상으로 오르는 바윗길은 험난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지혜와 구도의 참뜻을 되새기게 한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