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원성 보살의 바라밀 일기

“달은 달맛이지”
어린 손자에게 듣는 법문

손자도 스승
손자 원영이의 전화를 받았다. 어린 애기 때부터 무수한 법문을 토해내던 외손자 원영이를 나는 스승님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인 원영이는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법문을 했다. 세 살 무렵, 가족이 서울 선유도에 나들이를 갔을 때였다. 하늘을 바라보니 반달이 떠 있었다. 나는 그 달을 보고 오늘이 며칠이기에 반달일까? 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때 원영이가 말했다.
“할머니 반달은 원영이가 달의 반을 먹어버려서 반달만 남은거야.”
나는 너무 놀랐다.
“달을 먹었다고?”하며 되물었더니 그 세 살짜리 아기가 벌떡 일어서면서 말했다.
“달을 먹었더니 이렇게 커졌지요.”
나는 이 놀라운 말에 또다시 물었다.
“달이 무슨 맛이었는데?”
그러자 원영이가 대답했다. “달은 달 맛이지”
그날은 세 살짜리 아기로부터 한 소식을 듣는 날이었다. 그 후 어느 날 백담사 참배 가는 길 차 속에서 원영이가 말했다.
“할머니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여러 나라에 살다가 여러 문을 거쳐서 한국에 왔어요.”
너무나 놀란 나는 또 물었다.
“그럼 어디에서 많이 살았나요?” 했더니 “미국과 일본에서 많이 살았어요.” 라고 했다. 겨우 4살 아기가 이런 말을 하다니 나는 매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늘 감동하고 감탄하며 함부로 대할 일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다섯 살 때 친손자가 태어나는 날, 그날도 큰 딸 근영이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길인데 차 지붕이 열려 있어 또래인 사촌 사나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어! 오늘은 어제보다 달이 더 뚱뚱 해 졌네!”하고 사나가 말하자 원영이가 답을 했다.
“응 어제 내가 삼켰다가 오늘 토해냈더니 저렇게 큰 달이 되었어.”
어느날, 엄마의 핸드폰으로 큰 나무를 찍어서 내게 전송하면서 한 말씀 덧붙였다.
“할머니도 이 큰 나무처럼 큰마음으로 큰 사람 되십시오.”
그래서 날마다 “오늘의 법문은 무엇인지요?”하고 전화로 청하기도 했었다.
어느 날, 내게 이런 질문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고민을 하다가 “사자나 코끼리가 아닐까” 했더니 손자가 말했다.
“할머니 땅이 제일 힘이 세지요. 세상에서 아무리 무거운 기차도 빌딩도 그리고 차들도 들도 산도 모두 다 땅이 이고 있으니까 힘이 젤 세지요” 했다.
안개가 많이 낀 날이 있었다.
“할머니 지금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이 안개를 없앨 수 있나요?” 하기에 나는 “그건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니 기다려야지요.” 했더니 손자의 답은 “바람이 씨웅~씨웅~ 불어오면 안개는 바람 따라 날아가고 말 거예요” 했다.
“밥을 많이 먹었나요?” 하고 물어 볼 때면 “나는 밥을 먹은 것이 아니라 똥을 먹었지요.” 하기에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고 했더니 “밥을 먹으면 똥이 되지요” 했다.
무수한 원영이의 이야기들을 나는 큰스님의 귀한 법문이라고 생각했고 ‘손자도 스승’이라 생각했다.
학교에 입학을 하고, 생활이 바뀌게 되면서부터 나와는 점점 전화하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어느 날 물었다 “왜 요즘엔 법문을 안 해주느냐?” 했더니 “이미 그동안 다 해 줬으니 그걸 잘 생각하면 되지요.” 하는 것이다. 더 할 말이 없었다.
“지금은 학교 숙제도 해야 하고 그림도 그려야하고 학원도 가야하니 바빠서 그런 생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래! 나도 일곱 살이 되면 이런 법문 듣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알고 있었음은 그 맑고 깨끗한 영혼에 세상의 많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받아들이면서 전생의 익힌 습성을 덮어가기 때문이리라. 조금 아쉬운 마음이지만 잠재된 지혜만은 언젠가 또 다시 빛으로 나타나리라 믿으며 더 큰 스승으로 세상의 어른이 되어 줄 것을 축원했다.
그런데 오늘은 문득 그 묻힌 보석 같은 화두를 꺼낸 것일까? 원영이가 얘기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왜 하필이면 강원영이란 이름으로 태어났을까? 사람들은 천상이나 극락에 가야만 부귀영화를 누릴 수가 있다고 믿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극락과 지옥이 있는데…”
오랜만에 듣는 원영이의 말이었다. 어제도 전생으로 흘러가고 있는 지금의 시간 속에 살고 있으면서 그 먼 옛적의 전생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았으며 또 무슨 업연으로 살았을까? 옛날 우리가 자랄 때 아버지께서 날마다 칠판에 글을 써 두고 일러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과거생의 내 삶이 궁금하면 지금의 내 삶을 보면 알 것이고, 다음 생에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지금 내가 살고 있음을 보면 알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말 한마디의 상처가 아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더렵혀진 강물이 맑으려면 또 얼마나 많은 물이 흘러가야지만 맑은 물이 되어 흐르게 될까? 익힌 나쁜 습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 한번 생각하고 말할 것이며 한번 생각하고 행동 해야만 나도 남도 상처와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나의 스승님의 말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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