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마저 응축시킨 ‘禪 정원’의 미학
자연마저 응축시킨 ‘禪 정원’의 미학
  • 신중일 기자
  • 승인 2013.10.25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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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교토 료안지

15개 돌과 모래, 이끼 등으로
삼라만상 표현…日 정원의 진수

 

▲ 교토 료안지(龍安寺)의 석정. 가레산스이 정원 양식의 절정인 료안지의 석정은 15개의 돌로 삼라만상을 표현하고 있다.
모래 위 하얀 자갈이 물결무늬를 짓는다. 그 위에는 돌이 무리를 지어 함께 또는 따로 배치돼 있다. 그 앞에서 있는 사람들은 말이 없다. 오로지 돌과 자갈, 이끼 그리고 벽담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풍광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비어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 채워진 듯 하다. 오로지 이 공간에는 돌과 자갈과 모래가 만들어내는 자연 풍광과 내가 있을 뿐이다.

자연을 압축해 조형한 일본의 정원. 이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색에 잠기게 된다. 어떤 이들은 압축된 자연에서 선의 묘미를 찾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정원 양식에 대한 탐구를 한 번쯤은 하게 만든다.

실제 일본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정원 문화다. 특히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은 일본 정원 미학의 정점이다. 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과 모래 등에 의해 산수의 풍경을 표현하는 정원 양식인 가레산스이는 무로마치 막부 시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무로마치 막부는 선종 사찰들을 정책적으로 건립했는데 모든 사찰에 물을 사용하는 기존 형식의 정원을 만들 수 없었다. 결국 사찰 정원을 위한 ‘가레산스이’ 양식이 창안됐고 그 후부터 물을 쓰지 않더라도 정원을 만들 수 있게 됐다.

▲ 료안지 석정의 입구. 쿠리(庫裡)라고 한다.
이 같은 정원 문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사쿠테이키(作庭記)〉라는 책이다. 정원에 대한 세계 최고(最古)의 고서(古書)인 〈사쿠테이키〉에는 어떻게 정원을 꾸미고 조경할 것인지를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한국에도 김승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협력사업본부장이 이를 번역해 2012년에 출간하기도 했다. 책을 살펴보면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자연 풍광을 정원에 가져다 놓았는지를 알 수 있다. 

“땅과 연못의 모양에 따라 각 장소에 맞는 풍정(風情)을 구상하면서 자연풍경(生得の山水)을 회상해 ‘그 장소는 이와 같았구나’ 하고 견주어 생각하면서 정원을 만들라. 정원을 만들 때 옛 명인들의 뛰어난 작품들을 지침으로 삼아라. 그리고 집주인의 뜻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자신의 풍정(我風情)에도 역시 주의를 기울여라.”〈사쿠테이키 中〉

책을 번역한 김승윤은 이 같은 일본의 조경 문화의 연원을 〈일본 서기〉에 기록된 백제의 노자공(路子工)에서 찾는다. 이에 따르면 백제인 노자공은 당시 일본에 수미산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고 기술돼 있는데 이러한 기술이 발전돼 가레산스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교토 료안지(龍安寺)의 석정(石庭)은 가레산스이의 정점이다. 현재 일본의 대표 선종 종단인 임제종 사찰인 료안지는 1450년 무로마치 막부의 무사 호소카와 가츠모토가 도쿠다이지 가문의 별장을 개조해 만든 것이다. 이후 오닌의 난으로 소실됐지만 1499년에 재건돼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 교토의 고찰이다. 이 사찰 역시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료안지의 석정은 장방형으로 동서 25m, 남북 10m의 넓이로 1500년 경 토쿠후오 젠케츠 등을 중심으로 한 뛰어난 선승들에 의해 조성됐다고 알려져 있다. 가레이산스이 정원의 정점인 만큼 나무와 풀, 물은 절대 사용돼지 않았으며, 모래 위에 풀 한 포기 없이 흰 자갈, 이끼, 돌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했다.

15개의 돌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5개, 2개, 3개, 2개, 3개씩 무리지어 배치하였는데 돌의 모양, 크기, 배치를 통해 우주를 표현하고 있다. 15개의 돌은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 15개가 다 보이지 않는다. 이는 우주 전체를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이해할 수 없으며 끊임없는 참선을 통해서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선종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흙으로 낮게 만들어진 벽담도 눈여겨 볼만 하다. 유채기름을 사용해 반죽한 흙으로 만들어진 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기름으로 인해 특유한 빛깔을 자아내게 됐다. 

▲ 석정의 모형을 보고 있는 일본 학생.
이 같은 조형들이 어우러진 료안지의 석정은 일본인이 생각하는 ‘선(禪)의 미학’의 전형이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저술한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은 이를 두고 “일본 정원이란 돌의 언어로 묘사된 자연 풍경의 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료안지가 비치해 둔 사찰 안내서에는 석정에 대해 이렇게 써 있다. “석정을 보시는 분은 이 독자적인 정원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찾아내 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오래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자신 안의 자유를 더욱 넓혀낼 수 있을 것입니다.”

4백여 년 전, 일본 고승이 돌로 남긴 화두를 모든 것을 채우려고만 하는 현대인들이 타파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우매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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