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찰의 샘물은 사찰의 청정성을 측정하는 지표다. 오염되어 먹을 수 없게 된 오래된 샘물. 사진은 경상북도 ㅂ사찰에 있는 샘물
역사가 오래된 사찰치고 명당이 아닌 곳에 자리를 정했던 사찰은 많지 않다. 특히 사찰의 입지가 산으로 옮겨가고 스님들이 풍수지리의 원리를 적용하면서부터는 더욱 더 좋은 자리에 사찰이 지어지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물 좋고, 그윽한 곳을 찾아서 절을 지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물이 좋다는 것은 일상생활에 사용할 물이 충분하다는 뜻도 있지만 마실 수 있는 물이 좋다는 뜻이 더 강하다. 예로부터 절이 자리를 잡은 곳에는 약수가 많았는데, 절을 짓고 보니 약수가 나온 것이 아니라 약수가 있는 곳을 찾아 절을 지었던 것이 분명하다.

몇 해 전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를 보면, 강원도 고산군 설봉리에 있는 석왕사(釋王寺) 약수가 만성소화기질환 및 간염치료에 특효가 있으며, 이 약수에는 유리탄산과 나트륨이온, 칼슘이온이 들어 있고 철이나 동 성분도 풍부히 함유되어 있다고 전했다. 북한에서도 이렇게 좋은 약수는 그냥 두지 않고 상품화하여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찰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신이한 효험을 보인 약수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경주 석굴암, 장흥 보림사, 고성 옥천사, 경주 기림사, 하동 쌍계사, 고성 건봉사, 구례 천은사, 강화 정수사, 동두천 자재암 등이 대표적이다.

석굴암 약수는 요내정에서 샘솟는 것으로 〈삼국유사〉에 이 약수에 대한 기사가 있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요내정도, 약수도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 사찰에 그렇게 많던 샘물 가운데에서 물의 청정성이나 수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은 이제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수원이 훼손되거나 수맥이 단절되면서 수질이 오염되기도 하고 물이 말라 나오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은 한번 오염되면 다시는 원상을 회복하기 어렵고, 수맥은 한번 끊어지면 이미 그 물은 다른 곳으로 흐르게 된다.

절에서조차 시중에서 판매하는 생수를 사 먹는다면 이것은 사찰의 청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사찰의 샘물이 오염되면 사찰만큼은 아직도 청정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게 된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사찰의 샘물은 사찰의 청정성을 측정하는 지표가 될 수 있으므로 사찰의 샘물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곧 우리나라 사찰의 환경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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