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살이 상주하는 북한산 이야기 - 4.보현봉(普賢峰)

문수봉·비봉과 함께 남쪽 주봉
조망 뛰어나 사대문 안 한 눈에
도선국사 창건 ‘보현사’에서 유래
중종때 보현보살께 기우제 지내던 곳

보현봉은 북한산 대남문 밖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서 높이는 714m이다.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에 속한다. 보현봉은 문수봉, 비봉과 함께 북한산 남쪽의 주봉을 형성한다. 보현봉은 북한산 봉우리 중에서도 조망이 뛰어나서 북악산과 인왕산 너머 서울 사대문 안 중심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세조도 이곳에 올라 천문 관측을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보현봉이 기가 센 곳이라는 소문이 나서 종교인과 무속인의 왕래가 잦자,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산림 보호를 위하여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보현봉은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보현사(지금의 일선사)에서 명칭이 유래한다. 도선국사는 신라 말의 승려로서 속성은 김(金), 자는 옥룡(玉龍), 호는 연기이다.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에서 스님이 되었다.
도선국사가 고려 태조의 출생을 예언한 연유로 태조 이후의 고려 왕들은 도선국사를 극진히 존경했다. 도선국사는 승려로서보다 음양풍수설의 대가로서 알려져 있다. 저술로 〈도선비〉, 〈송악명당기〉, 〈도선답산가〉, 〈삼각산명당기〉 등이 있다.
도선국사는 풍수지리의 대가답게 전국을 순회하며 명당에 해당하는 곳에 절을 많이 지었다. 스님은 남경(지금의 서울 부근)이 새로운 왕조의 도읍지가 될 곳임을 알았다.
스님은 남경의 진산에 해당하는 삼각산에 특히 주목했는데, 〈삼각산명당기〉를 지은 것도 그 즈음이다. 스님은 삼각산을 답사하다가 기가 가장 센 봉우리를 발견하고, 그 봉우리 아래 굴(보현굴, 일명 다라니굴)에서 수도했다. 스님은 지금의 일선사 자리에 절을 세우고 보현사라 칭했다. 보현사 뒤의 봉우리는 보현사의 이름을 따서 보현봉이라 불리게 되었다.
보현굴 안 벽에는 신선도가, 오른쪽 바위에는 칠성도가 양각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훼손되어 흔적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세종실록〉에, 세종이 “오늘 백악산(북악산, 해발 342미터)에 올라서 오랫동안 살펴본 즉, 보현봉의 산맥이 곧게 백악으로 들어왔으니 지금의 경복궁이 바로 명당이다.”라는 기록이 전한다. 또, “삼각산 봉우리에서 내려와 보현봉이 되고, 보현봉에서 내려와 평평한 언덕 두어 마장이 되었다가 우뚝 솟아 일어난 높은 봉우리가 백악이다. 그 아래에 명당을 이루어 널찍하게 바둑판같이 되어서 만 명의 군사가 들어설 만하니 이것이 바로 명당이고, 여기가 곧 명당 앞뒤로의 한복판 되는 땅이다.”라 하여 보현봉이 고대로부터 국방의 요충지였음을 밝혔다.
조선 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은 남북 축선을 따라 정연하게 전각을 배치했다. 광화문과 근정전을 지나는 남북 축선을 연장하면 북쪽은 북한산 보현봉, 남쪽은 관악산을 지난다.
경복궁은 국토의 관념상 중심이며 건축물의 규범이었다. 임금이 직무를 보던 근정전을 보현봉과 일직선으로 한 것만 보아도 보현봉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조선조 중종 때의 일이다. 조정에서 지금의 종로구 평창동 지역에 양곡을 저장하는 창고를 지었다. 평창이란 지명도 거기에서 유래한다. 조정에서는 창고를 지은 후 풍년을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낼 곳을 물색한 끝에 삼각산 보현봉을 그 장소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막상 기우제를 지내려 하자 보현봉에 운무가 끼어서 좀체 접근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이 논의한 끝에 보현사의 스님께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보현사의 노스님이 보현보살께 기도를 올렸더니 운무가 걷혀 무사히 기우제를 지낼 수 있었다. 보현봉 아래에 있는 천제단이 바로 매년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유교적 이념을 숭상하던 조선 시대에 보현봉에서 기우제를 지낸 것은 보현보살의 위신력에 의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 신분이 낮았던 스님을 청해 기도를 올린 것도 만백성이 한마음으로 합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중생의 이익을 위해 원을 세우고 실천한 보현보살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함께 석가모니 부처님을 좌우에서 보좌하는 보살이다. 문수보살이 지혜의 화신이라면 보현보살은 실천 수행의 화신이다. 보현보살이 중생을 위하여 세운 열 가지 원(願)은 모든 구도자가 실천해야 하는 덕목이다.
우리나라는 삼국 시대부터 보현 신앙이 발달했다. 고려 광종 때 균여대사가 〈보현십원가〉를 지은 것도 이를 민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함이었다.
예부터 보현봉을 북한산의 주봉으로 여겨 온 것은 서울 어디서 보아도 제일 잘 보이기 때문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근정전 너머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가 보현봉이다.
보현봉은 바위 구간이어서 등반이 쉽지 않지만 봉우리에 오르면 조망이 뛰어나다. 이는 마치 실천 수행의 어려움과 그 보람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문수봉과 보현봉이 대남문을 가운데 두고 마주하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어둠 속에서 헤매는 중생들에게 지혜와 실천 수행의 참뜻을 일깨워 주려 함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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