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서 고찰을 가다- ③교토 광륭사

한국산 적송으로 만들어진
일본 국보 ‘미륵반가사유상’
철학자 야스퍼스도 극찬한
한일 불교 교류의 정점

▲ 일본국보1호로 잘 알려진 ‘목조미륵반가사유상’. 광륭사에서는 일본 아스카시대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일본을 방문해 교토의 고찰인 광륭사(廣隆寺)에 들르게 된다. 그곳에서 야스퍼스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사유에 대한 표현이 담긴 예술품을 목도한다. 그리고는 이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이것은 지상의 모든 시간적인 것, 속박을 넘어 달관한 인간 존재의 가장 정화된, 가장 원만한, 가장 영원한 모습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불상은 우리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영원한 평화와 이상을 실로 아낌없이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벽안의 서양 철학자마저도 절창을 하게 만든 문화재, 바로 일본 국보 1호로 한국에 잘 알려진 광륭사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광륭사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한국의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그래서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일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한국에서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 광륭사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한국의 도래된 양식임을 증명하는 것이 불상의 재질이다. 일본 광륭사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재질을 확인할 수 있던 계기는 학생의 실수에서 비롯된 점이 재미있다.

야사(野史)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20세기 초 광륭사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보존 및 수리에 들어가는 데 그 과정에서 일본 불교미술을 공부하는 한 여학생이 실수로 목조반가사유상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게 된다. 이후 불상의 소재를 연구하고 싶었던 오사카 대학 한 학부생이 이쑤시개 4분의 1 크기의 파손 부위를 얻는다. 연구 결과 불상의 재질이 한반도에서 전해진 적송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일본도 공식적으로 도래 양식임을 인정하게 된다.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만큼 일본 광륭사 미륵보살반가사유상도 문화재적, 미적 가치가 매우 높다. 보관의 형태를 비롯해 우수를 머금은 온화한 표정과 입가에 맴도는 미소, 불상 전체를 휘감고 있는 곡선의 미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미학 연구가인 명법 스님 역시 본지의 기획 연재 칼럼 ‘불교와 미학’에서 미륵반가사유상에 대해 “동양적인 얼굴에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간 눈, 두 눈을 반쯤 감고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이 보살상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고뇌하는 표정도, 불안정 자세도 없다.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지만 매우 안정적이며 편안하고 우아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 같은 곡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불상이 한국과 일본 양국에 나란히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옛 선현들의 불심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 광륭사 대웅전
사실 광륭사 창건도 한국과 관련이 깊다. 〈일본 서기〉에 따르면 고구려와 백제 승려를 스승으로 모셨던 쇼토쿠(聖德)태자가 “고귀한 불상을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 이 불상을 모실 자가 없는가”라고 물었고, 신라에서 건너 온 하다노 카와카스(泰河勝)가 자진해 사찰을 창건할 것을 청했다. 이후 하다노 카와카스는 스이코 천황 11년(603년) 광륭사의 전신인 봉강사(蜂岡寺)를 창건해 이를 모셨다고 전해진다.

현재 광륭사는 진언종의 소속 사찰로 교토 지방에서 가장 오래됐으며, 쇼토쿠 태자가 설립한 7대 사찰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특히 광륭사의 ‘강당’은 1165년 건립된 것으로 교토의 목조 건축물 중 최고(最古)의 역사를 자랑한다. 강당 안에는 약 2m 40cm에 달하는 아미타여래상과 지장보살상, 허공장보살상이 안치돼 있다.

강당 뒤쪽에는 대웅전에 해당하는 조구오인(上宮王院)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 본존상은 33세 무렵의 쇼토쿠 태자상이다. 지금도 일본 사찰 곳곳에는 한반도의 문화를 적극 수용해 일본을 발전시킨 쇼토쿠 태자를 모시고 있다.

이런 광륭사는 일본 아스카 문화의 백미이다. 일본 문화 가운데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아스카 문화에는 한반도의 옛 선현들의 발자취가 아로 새겨져 있다. 우리가 태어나 너무 익숙해 체감할 수 없던 한국 문화의 근간을 일본의 천년 수도 교토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 또한 선현이 준 은혜이다. 

<이 원고는 조계종 교육원 승려 연수프로그램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