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서 고찰을 가다- ②교토 청수사

장수 등 기원하는 세 물줄기
이 물을 마시러 참배객 몰려
본당 등 전각, 빼어난 건축미

▲ 일본 법상종의 총본산인 청수사의 전경. 일본의 국보인 청수사 본당은 139개의 나무기둥이 못 하나 없이 세워져 장엄미를 더한다. 청수사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일본의 교토는 794년 간무천왕이 수도로 정한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3년 도쿄로 수도를 옮기기 까지 약 천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곳이다. 그래서 일본의 교토지역 사람들은 다른 도시 사람보다 자부심과 긍지가 엄청나다. 실제 교토 토박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최소 삼대(三代)가 교토에서 거주했어야 할 정도다.
그만큼 교토에는 고찰이 많고, 그 중에는 미적,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도 적지 않다. 교토의 청수사(淸水寺)가 바로 그런 곳이다.

청수사는 서기 780년경 엔친대사(延鎭上人)가 꿈속에서 맑은 물을 찾아가라는 현몽을 꾸고 이를 찾아 헤매이다 소나무와 흰 구름을 두루고 있는 음우산(音羽山) 중턱 오토와의 폭포 근처에서 수행 중이던 한 선인을 만나게 된다. 그 선인으로부터 나무 조각을 건네받은 엔친대사는 ‘십일면관음’을 조각해 선인의 암자에 봉헌한 것으로부터 청수사의 역사는 시작된다. 천년을 이어 온 고찰 청수사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청수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성스러운 물인 ‘청수(淸水)’다.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것으로 전해지는 이 물을 먹기 위해 지금도 많은 순례객과 관광 인파가 청수사를 찾는다.

청수사의 ‘청수’는 본당 무대 아래에 있다. 오토와 폭포에서 나오는 물이 석재로 만들어진 수구(水口)를 따라 세 줄기로 흐르고 있다. 본래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다는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장수(건강), 결혼(사랑), 학문(학업)을 증진시키는 의미로 변화했다.

오토와 폭포 앞에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육근이 청정해지고 소원이 이뤄지길 바란다는 문구가 있다. 삼보에 귀의하는 예경심을 상징하는 폭포는 이제는 세간 사람들의 소망과 염원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깊다.

▲ 청수사의 명물 ‘오토와 폭포’. 세 줄기의 물은 장수, 결혼, 학업을 상징한다.
청수사에서 문화재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은 본당이다. 절벽위의 10m의 절벽에 세워져 그 아찔함이 자랑인 본당 마루는 139개의 나무 기둥에 못 하나 없이 세워졌으며, 이 같은 조형 가치를 인정받아 일본의 국보로 등록돼 있다. 실제 가파른 경사지에 목재 기둥과 보를 엮어 올려 본당을 이뤄낸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안타까운 것은 원래 건물은 화재로 전소됐다는 점이다. 현재 본당은 1633년에 그대로 복원한 것이지만 1200여년 전에 이런 거대한 건물을 경사지에 세웠다는 점은 당시의 일본인들의 불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본당의 주불은 창건주인 엔친 대사가 선인에게 건네받아서 조성했다고 하는 십일면관음보살이다. 일본의 국보인 ‘십일면관음보살상’은 비불(秘佛)로서 일반에는 어지간해서는 공개가 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본당의 현판도 눈길을 끈다. 청수사 본당의 현판에는 ‘자안시중생 복취해무량(慈眼視衆生 福聚海無量, 자비의 눈으로 중생을 굽어 살피고 복은 바다와 같이 한량이 없다)’이라고 적혀있다. 이는 〈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나오는 경구로 관세음보살의 자재함과 공덕을 함께 칭송하는 장면이다.  관세음보살을 의심하지 말고 애경하고 의지하며, 일심으로 예배를 올릴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본당과 주불, 오토와 폭포까지 청수사는 인간사의 염원과 소망을 기원하는 것으로 점철돼 있다. 이 같은 신앙을 ‘타력’이나 ‘기복’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한국불교 정서 안에는 적지 않으나 일본불교는 이를 친숙하게 생활 안으로 녹여내고 있다. 옛 문화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 일본의 젊은 연인들과 여고생들이 사찰 경내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자주 목도할 수 있는 점도 일본불교의 강점이다.  

본당을 나오면 음우산 정상 중턱을 따라 긴 산책길이 있다. 이곳에서 보이는 교토의 전경은 청수사의 또 다른 볼거리다. 또한 청수사의 다른 전경도 확인할 수 있는 점도 사찰 순례의 즐거움이다.

조금 더 첨언하면 청수사를 오르는 비탈길에는 좌우로 상가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한국 사하촌 상가들과 비슷하다도 생각할 수 있지만, 난잡하지 않고 질서 정연하다. 마지막 상가부터 인왕문 앞 고개를 ‘3년 고개’라고 한다. 이유는 여기서 넘어지면 3년 동안 재수가 없기 때문이다. 경치가 좋은 만큼 ‘조고각하’하며 올라오라는 일본인의 해학이 담겨 있는 대목이겠지만, 혹시 모르니 찾는 이들은 조심하시길.  

<이 원고는 조계종 교육원 승려 연수프로그램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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