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도 신용카드 시대

서울 목동 국제선센터의 기도비 카드접수 모습
2012년 6월 조계종이 사찰 내 신용카드 사용을 허가하는 내용을 담은 쇄신 입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사찰 내 전자결제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기도비나 불사금을 ‘카드’로 낼 수 있어, 신도들의 신행문화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김주일·노덕현기자

불교 각 사찰 카드결제기 설치 호응
현금대체 효과에 투명성 제고 기대
사회에선 카드 사용 매년 증가
선진국 현금사용 10% 미만 불과

카드 결제시스템 사찰 전국 30여 곳
편의성 때문에 이용 신도 점점 늘어
재정 투명화 기대로 신뢰도 상승
종교 본연 가치 저하 우려도 제기

각 사찰, 신용카드로 편의성 증대 나서

불자들이 많이 찾는 양양 낙산사(주지 무문)는 7년 전부터 경내에서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낙산사에서는 경내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비용을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사찰 입장료는 물론이고, 기도비 및 기와불사 등 각종 불사금도 모두 신용카드로 보시할 수 있어 낙산사를 찾는 내방객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전자 결제시스템을 낙산사서 처음 도입한 낙산사 회주 정념 스님은 최근 자신이 주지로 있는 서울 흥천사에서도 똑같이 활용해 신도들로 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낙산사 주지 무문 스님은 “당시 회주 스님께서 현금을 소지하지 않은 내방객들이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것을 알고 카드 결제를 도입했다. 특히 문화재구역 입장료를 지불할 때 카드결제가 되니 관람객들에게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또한 무문 스님은 “신도들 역시도 전자 결제 시스템이 사찰 재정 투명화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해서인지 사찰 행정에 대한 신뢰도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조계종 총무원 재무부는 현재 카드 결제시스템을 도입한 사찰을 30여 곳으로 추산한다. 쇄신법안 통과 이후 10여 곳이 늘었다고 밝혔다. 낙산사 외에도 예산 수덕사와 경산 선본사 갓바위, 서울 봉은사, 강화 보문사, 의왕 용화사 등 주요 대형 사찰서 전자 결제 시스템을 시행중이다. 이 같은 변화는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된 일반인들의 소비패턴과도 맞물려 여러면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고명석 조계종 포교원 신도팀장은 “많은 사람들의 소비 패턴이 현금 사용에서 신용카드로 바뀌고 있다. 일반 사회 보다는 변화의 흐름이 더디지만 신도들도 예전과 달리 카드결제, 자동이체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시금을 내고 있어 이 같은 사찰의 변화도 불가피할 것 같다 ”고 설명했다.

서울 봉은사 기도접수처에는 카드 접수자들이 늘고있다.
더 이상 현금 갖고 다니지 않는다

일반 사회에서 현금거래보다 전자결제가 확산되는 현상은 전세계적인 추세다. 1661년 유럽서 처음으로 지폐를 발행한 스웨덴은 현재 현금이 통용되지 않는 경제시스템으로 진화했다. 대중교통 이용시 현금을 받지 않고 카드나 핸드폰으로 결제한다. 상점 또한 카드만 받는 곳들이 늘고 있으며 일부 은행 지점에서는 더 이상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스웨덴 경제에서 지폐와 동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하다. 유로존과 미국도 각각 9%와 7%에 정도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한국의 신용카드 사용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신용카드 이용실적 지표를 보면 2012년 신용카드 이용실적은 577.7조원으로 전년의 558.5조원 대비 10.3%가 증가해 2004년 이후 계속 늘고 있는 편이다.

카드 등 전자결제가 확산되는 이런 사회변화는 종교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선진국에서 이런 변화는 두드러 진다.

유럽의 경우 최근 교회나 성당에 카드 단말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스웨덴 언론은 2012년 칼스함 시(市) 카를 구스타브 교회의 요한 티르베리 목사를 인터뷰한 바 있다. 당시 카를 구스타브 교회는 카드결제가 가능한 헌금함을 교회 내에 설치해 화제가 됐다. 티르베리 목사는 “당장 현금은 없지만 헌금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신자들이 많아 카드 단말기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행복바라미 디지털 모금함에 카드로 기부한 외국인
불사 홍보 및 신뢰 확보에 긍정 효과

우리 사회에서도 기부단체를 중심으로 신용카드 결제가 시작됐다. 구세군에서는 2012년부터 디지털 자선냄비를 선보였다. 구세군의 상징인 빨간색 자선냄비 위에 카드 단말기를 부착한 것이다. 조계종 중앙신도회 산하 사단법인 날마다좋은날 역시 올해 기부모금행사 ‘행복바라미’를 실시하며 디지털 모금함을 설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찬영 날마다좋은날 불교사회적기업지원센터 센터장은 “아직까지 단말기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많지는 않지만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점차 늘고 있다”며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고 홍보하는 차원에서 단말기 시스템을 지속 운영중”이라고 말했다.

서울 도심포교 거점사찰로 설립된 신정동 국제선센터도 올 9월 카드결제를 도입했는데 카드결제의 비율이 현금결제를 넘어설 정도로 폭발적이다. 전해준 국제선센터 종무실장은 “불전함에 넣는 기도비와 달리 불사금, 연등비 등은 신도 입장에서 카드로 결제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라며 “신용카드 결제는 종무원들의 복잡하고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더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박종학 봉은사 종무실장도 “현재 기도 접수처는 30%, 불교용품점에서는 50% 이상이 카드결제가 이뤄지고 있다. 1년등비가 20만원인데 당장 현금으로 결제하기 부담스럽게 느끼기에 카드 할부결제가 늘고 있는 것 같다”고 귀뜸한다.

상업성 우려에 의한 본말 전도 경계해야

하지만 전자결제의 편리함이 자칫 상업성으로 치우쳐 종교 본연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유럽의 경우를 보면 편의성은 증대됐지만 종교에 세속적 가치가 도입되며 오히려 신도수는 감소하고 있다. 독일, 덴마크, 스웨덴,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에서는 기존 헌금함 대신 카드결제가 가능한 세금납부기를 설치하고 국가가 세금으로 거둬 각 교회에 배분하고 있다. 독일은 2000년대 들어 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3% 가량 하락했는데 성직자의 성추행 등 사회적 파문의 영향도 있지만 종교인을 직업의 하나로, 종교세를 의무로 보는 인식변화도 크게 작용했다. 독일 쾰른 대주교구의 경우 2013년 교회의 수익 중 교회세 의존비율이 76%에 달했다.

고명석 포교원 신도팀장은 “아직도 지폐가 꼬깃꼬깃하면 다려서 펴 정성스럽게 보시하는 불자들이 많다. 사찰의 보시금을 ‘정성’과 ‘믿음’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 팀장은 “관광객들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편의성이 증대되는 만큼 종교의 근본가치인 신심을 돋우는 포교활동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정투명화에 신용카드 결제 도입이 직결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황철기 조계종 총무원 재무팀장은 “보시금을 낼 때 이 돈이 어떻게 쓰이길 바라면서 내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냐”며 “‘보시’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신성한 행위이며 그 이후는 ‘신뢰’와 ‘믿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황 팀장은 “카드결제가 되더라도 부정은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 카드결제란 수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정투명화에 대한 대중들의 의지와 신뢰가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교회에 설치된 교회세 카드 납부기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