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石榴)→씨앗이 가득 찬 씨방→보주가 가득 찬 씨방

나의 연재를 읽는 분들에게

금년 들어 시작한 연재가 어느덧 제41회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해 다른 신문에 1년간 연재한 것을 더하면 현재 80회를 넘어선 셈입니다. 아마도 이렇게 틀린 용어가 많은가 하고 놀라는 분들이 계시는가 하면, 아직 연재를 접하지 못한 미술사학자들이나 종교사상 연구자들은 틀린 용어 하나도 잡아내지 못하는 분들로도 계십니다.

처음으로 조형언어를 해독하여 조형미술을 설명하는 것이므로 어떤 분은 너무도 생소하여 작품의 조형이 전혀 보이지도 않고 내용을 읽어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읽기는 읽되 지식으로 받아드리기 때문에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학문적 기초가 튼튼하고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분들은 사물을 새로이 ‘인식’하기 때문에 경이를 느낄 것입니다. 조형언어를 처음으로 배우는 연재임을 인식하는 분들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원고를 쓰고 있는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이러한 한글 문장도 처음 접해 보실 것입니다. 세계의 조형언어를 한글로 기록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뜁니다. 우리는 평생 중국의 한문과 종래의 한글을 배워서 읽고 지식을 습득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조형언어는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으므로 난해하기도 하지만 낯설어서 익히기 어렵기도 하여 채색분석을 직접 해야 하므로 조형언어를 배우려는 마음이 거의 없습니다. 문자언어로 익힌 지식이나 지혜와는 전혀 다른 조형언어로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체득하여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재에서 쓰고 있는 내용은 일찍이 문자언어로 쓰여 진 적이 없으며 따라서 경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드러내는 것이므로 텍스트인 작품 하나하나가 금강석같이 존귀합니다. 어느 경우에는 작품 하나가 경전에 맞먹는 풍부한 메타포로 쓰여진 하나의 경전에 해당되기도 합니다. 그 조형언어를 한글과 한문으로 해독하고 있으니, 모름지기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여러분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만, 매회 연재를 프린트하여 조형언어를 재독 삼독하여야 여러분은 스스로의 힘으로 종교사상을 조형언어로 알뜰히 표현한 작품을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러면 다음 주제로 넘어가 조형언어를 해독하여 보기로 합니다.

 

사경(寫經) 표지 조형 해독까지 평생 걸려

우리나라 고려 사경 표지에 그림이 있는데 학계에서는 ‘연화당초문’ 혹은 ‘모란 당초문’ 혹은 ‘보상당초문’이라 부른다. 그런데 연꽃이라면 씨방이 주머니 모양이 될 수 없고, 모란이라도 역시 주머니 모양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연꽃도 모란도 아닌, ‘씨방=보주 주머니를 강조한 영기꽃’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왜 사경 표지에 이런 덩굴모양의 영기꽃을 그렸을까? 영기꽃이란 용어는 내가 만든 용어로 그 용어 가운데는 ‘씨방 안에 충만한 씨앗=보주가 밖으로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며 쏟아져 나오는 무량한 보주’라는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내가 이와 같은 조형을 처음 대한 것은 고려청자 수막새 음각 영기문이었다. 물론 10년 전 그 당시에는 씨방 안에 있는 씨앗을 보지도 못했고 밖으로 나오는 보주가 씨앗이 승화하여 보주로 변한 것이지도 몰랐다. 또 그 당시 채색분석한 것을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10년 만에 다시 채색분석하여 보았다.(그림 ①) 과연 〈한국미술의 탄생〉(p. 331)에 실린 것을 보니 예상대로 초보 수준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혁신적이어서 그것만으로도 매우 흥분했었다. 영기문에서 핀 영기꽃에 주머니 모양 씨방이 있고 그 안의 무량한 씨앗이 무량한 보주로 승화하여 줄줄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지난주의 부석사 괘불 주존불의 광배에 표현한 ‘씨방=보주 영기문’과 맥락을 같이 하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영기줄기에서 연이어 생기는 제2영기싹과, 영기꽃잎의 제2영기싹이 모두 같은 조형의 면(面)으로 되어 있고, 씨방이 주머니 모양이니 현실에서 보는 연꽃이나 모란이 아니다. 양이정(養怡亭)이란 궁궐 건물에 이러한 조형을 청자기와에 표현한 까닭은 왕이 찾는 곳이기에 건축에서 발산하는 무량한 보주를 상징하는 것이다. 앞서 씨방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오는 모양이 여래의 정수리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오는 형국과 똑같은 것처럼, 우주의 축소인 건축에서도 무량한 보주가 발산하는 것이다!

이런 조형의 기원은 통일신라의 월지(月池; 조선시대에는 안압지라 불렀다)에서 발견한 작은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주에서 화생하는 비천이 있고(그림 ②), 여래가 있어야 할 자리에 보주가 있는데 그러므로 여래를 장엄했던 산개(傘蓋)까지 있다.(그림 ③) 그리고 여래로부터 무량하게 발산하는 보주들로 장엄한 광배가 있다.(그림 ④) 그런데 문제는 보주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이 바로 보주(寶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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