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대(萬景臺)

‘만경’은 만상을 비추는 ‘해인’의 뜻
거울이 되어 산 아래 세상 보여줘


해발 800m. 봉우리들이 보는 방향에 따라 만 가지 풍경으로 보이기 때문에 만경대라 부르며, 국망봉이라 불리기도 한다. 만경은 불교에서 만상(萬象)을 비추는 해인(海印)의 의미로 쓰인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새로운 왕조를 건설할 도읍지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성계의 부탁을 받은 무학대사는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알려진 계룡산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막상 가서 지세와 산세를 살펴보니 새로운 왕조의 도읍지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무학대사는 다시 발길을 돌려 한강유역으로 올라 왔다. 그리고 봉은사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아침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니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과연 길지로구나. 여기다 왕조를 세우면 되겠구나. 무학대사는 만족한 얼굴로 주위 산세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 때 한 노인이 소를 몰고 가며 “이 놈 미련하기가 꼭 무학 같구나.”하면서 소 엉덩이를 회초리로 후려갈겼다.
그 말을 들은 무학대사는 귀가 번쩍 띄어서 “노인 어른, 지금 소한테 뭐라고 하셨습니까?”하며 쫓아가서 물었다.
“미련하기가 무학 같다 했소.”
노인은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가며 대답했다.
“지금 하신 그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무학대사가 노인 등 뒤에 대고 간곡히 물었다.
“무학이 요즈음 새 도읍지를 찾아다니는 모양인데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니 어찌 미련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소.”
노인은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무학대사는 그 노인이 예사 사람이 아님을 알고 쫓아가서 청을 드렸다.
“제가 바로 그 미련한 무학입니다.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천년대계를 세울 도읍지를 알려 주십시오.”
그러자 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들고 있던 채찍으로 서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십리쯤 더 들어가서 지형을 살펴보도록 하시오. 그러면 도읍지가 보일 것이오.”
노인은 이렇게 말한 후 홀연히 사라졌다.
무학대사는 노인이 사라진 쪽을 향해 공손히 합장 한 후 서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십리쯤 걸었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니 과연 길지 중의 길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명당이로구나!”
무학대사는 지금의 경복궁터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한참동안 무아경에 잠겨있던 무학대사는 널따란 바위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선정에 들었다. 한양을 에워싼 주변 지형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풍부한 수량을 지닌 큰 강이 유유히 흐르기도 하고, 넓은 옥토가 끝없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리고 산봉우리들이 우뚝우뚝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그때 어깨를 맞대고 있는 세 개의 산봉우리가 우뚝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 봉우리를 보는 순간 이성계는 자신도 모르게 아! 하고 감탄했다. 그 봉우리들은 석왕사에 있을 때 삼매 속에서 본 바로 그 봉우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장군한테 일러줬던 그 봉우리들이 바로 내 눈앞에 나타나는 구나.”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무학대사는 자신이 그 봉우리를 올라 가 봐야 한다는 자기 암시 같은 것을 받았다. 그래서 이튿날 일찍 북쪽에 있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은 온갖 잡목과 덤불로 뒤엉켜 있었다. 무학대사는 들고 있던 주장자로 잡목과 수풀을 헤쳐 길을 만들며 산길을 올랐다. 얼마간 그렇게 산길을 오르자 뿔처럼 우뚝하게 솟은 세 개의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여기로구나!”
무학대사는 삼매에서 본 봉우리가 바로 눈앞에 있는 봉우리임을 알고 걸음을 멈춰 섰다. 그러면서 고개를 젖히고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가슴은 감개무량했다.
“백운(白雲), 저 봉우리가 바로 백운이군.”
무학대사는 흰 구름에 쌓여 있는 봉우리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수 이성계에게 찾아가서 하늘의 뜻을 확인하도록 권했던 봉우리, 백운!
무학대사는 백운대 옆에 있는 봉우리 위로 올라갔다. 봉우리 위에 올라가서 산 아래를 굽어보니 바위 능선과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우애 좋은 형제들처럼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멀리 강과 들판이 풍요로운 곳간처럼 한양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만하면 도읍을 정하기에 부족함이 없구나.”
무학대사는 도읍을 정함에 손색이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조용히 선정에 들었다.
왕위를 놓고 형제들 간에 각축이 벌어지고, 조정의 대신들이 파당을 만들어 싸움질을 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외적의 침입이 잦아 백성들이 고달프게 사는 모습도 보이고, 가뭄과 홍수로 나라 안이 황폐 해 지는 것도 보였다.

“사람도 아이에서 어른이 되려면 각종 시련을 겪어야 하듯, 땅 역시 그 이치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어쩌랴 ! 그러나 육백여 년이 지나고 나면 이 땅은 번영의 시기가 도래 해 백성들은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이며,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세계의 중심을 만들어 갈 것이다.”
무학대사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며 조용히 선정에서 깨어났다.
선정 속에서 미래에 펼쳐질 만상의 모습을 본 무학대사는 해인海印의 의미를 담아 그 봉우리를 만경대(萬景臺)라 명명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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