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대(白雲臺)

우리나라 오악(五嶽) 중 하나인 북한산은 서울을 지키는 진산으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1년에 1000만의 사람들이 찾고 있는 북한산엔 총 42개의 봉우리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이중엔 불교에서 비롯된 이름이 반 이다. 오랜세월 불교와 인연을 맺어온 북한산은 수도 서울의 진산으로 도성을 수호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왔다. 불교적 이름을 지닌 봉우리를 ‘스토리텔링’이라는 방식으로 소개해, 북한산이 지니고 있는 불교적 의미를 조명해 본다.

백운대는 서울시 도봉구와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있는 북한산 최고봉으로 높이는 836m에 이른다. 맑은 날에는 인천 앞바다와, 강화도의 마니산, 개성의 송악산까지 볼 수 있으며 백운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조선창업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성계는 공손하게 예를 갖춘 후 무학대사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해몽을 청했다. 하지만 무학대사는 조용히 이성계의 얼굴을 바라볼 뿐 좀 채로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긴장 속에서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무학대사가 꿈을 해설 해 주었다.
“등에 서까래를 짊어졌으니 임금 왕(王)자 형상이 분명하고, 꽃이 떨어졌으니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힐 것이며, 거울이 깨졌다는 것은 세상이 시끄럽게 된다는 뜻이니 조만간 새 임금이 탄생될 징조로 참으로 큰 꿈이 외다.”
무학대사로부터 꿈 해몽을 들은 이성계의 가슴은 감격과 두려움으로 떨렸다. 그동안 변방을 지키며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러 온 이성계로서는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는 쇠락한 왕조를 무너뜨리고 강력한 새 왕조를 세워야만 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막상 무학대사로부터 새 왕조를 세우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나니 두려움이 앞섰다.
“대사님, 제게 좀 더 확실한 언질을 주십시오. 과연 제가 그 대업을 이루어 낼 수 있겠습니까?”
“그건 오직 하늘만 알 뿐 소승은 모르는 일이외다.”
“그럼 하늘의 뜻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습니까?”
이성계로부터 질문을 받은 무학대사는 잠시 눈을 감고 선정에 들어 있다가 이렇게 대답 했다.
“장차 도읍을 정하게 될 땅엔 세 개의 산봉우리가 있을 것이외다. 그중에서 백운(白雲)을 찾도록 하십시오. 하늘이 장군을 허락한다면 백운이 그 위용을 드러내게 될 것이외다.”
이성계는 스님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고 물러났다. 그러면서 백운(白雲)이라는 두 글자를 가슴속에 깊이 새기며, 새 왕조를 세우려는 야망을 조심스럽게 키워갔다.
왜구와 홍건적의 침략을 막아내며 용맹함을 떨쳤던 이성계에 대한 백성들의 칭송은 날로 더해갔다. 1388년 우왕이 즉위한지 14년째 되는 해였다. 원을 격파한 명이 예전 원의 땅이었던 철령 이북 땅을 내놓으라고 했다. 고려조정은 명의 요구를 거절하고 요동을 정벌하려 했으나 이성계의 생각은 달랐다. 승산 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왕명을 따라야 할지? 자신의 판단을 따라야 할지? 기로에 선 이성계의 머릿속에 ‘백운(白雲)’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왕명을 받고 오랜만에 개경으로 온 이성계는 개경 주변을 돌다가 남경이라고 불리는 한강 부근까지 내려왔다. 그는 한강 주변의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면서 산세를 살피다가 지나가는 한 노인을 붙들고, 세 개의 산봉우리가 어깨를 맞대고 있는 산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대답 없이 지팡이를 들어 등 뒤의 산을 가리켰다. 이성계는 노인이 가리키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람의 발길이 나 있지 않은 산은 한 발자국도 옮기기가 힘들었다. 전쟁터를 누비고 살아 온 그였지만 칡넝쿨과 가시덤불, 바위와 나뭇가지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산을 오르는 일은 참으로 험난했다. 하지만 이성계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산길을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결심을 굳힐 강력한 자기암시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얼마간 그렇게 산길을 오르자 뿔처럼 높이 솟은 세 개의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났다. 그 봉우리들을 보는 순간 이성계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자기가 찾고 있는 봉우리들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흙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소나무는 마치 수없이 많은 전쟁터에서 위태롭게 살아온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성계는 고개를 들어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봉우리가 셋임은 분명한데 그 봉우리들은 검은 구름에 감겨 있어서 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백운(白雲),자신이 찾고 있는 봉우리는 어느 것인가? 검은 구름에 가려있는 세 개의 봉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이성계의 가슴은 흔들렸다. 백운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불안감에 젖어 있던 이성계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 세 개의 봉우리가 잘 보이는 자리에 정좌하고 앉았다. 그리고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힌 뒤 산봉우리를 우러러 보며 기도를 드렸다. “꼭 부강한 나라를 세워 백성을 편안히 살게 하겠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성계의 눈앞에 기적처럼 한 봉우리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봉우리 주위로 흰 구름이 겹겹이 둘러 쳐지고 있었다. 흰 구름에 쌓여 있는 봉우리는 너무도 신령스러워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경건해 졌다. 이성계는 하늘의 화답에 감격해하며 오랫동안 흰 구름에 쌓인 산봉우리를 우러러 보았다. 이성계에게 왕의 자리를 허락해준 봉우리를 사람들은 ‘백운대’로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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