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에서
가을의 문턱에서
  • 이정옥(부산연꽃모임)
  • 승인 2013.10.15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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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원성 보살의 바라밀 일기

코스모스 사진을 선물로 보낸 사돈
세상에서 만나는 것들 모두 ‘공부’

사돈의 선물
가을이다. 멀리서 날아온 편지 한 통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영광에서 온 사돈의 편지였다. 정성어린 손편지와 가을을 알리는 코스모스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가을을 담아 보낸 편지였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눈(眼)이나 몸으로 느끼는 계절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비로소 시작되는 계절이란 생각을 했다. 올 가을은 사돈의 편지 한통으로 시작됐다.
사돈으로 인연을 맺은 지 벌써 17년이다. 그 동안 한 번도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지내왔다. 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사돈이 워낙 경우가 밝은 분이다. 향을 담았던 종이에선 향냄새가 난다고 했던가. 밝고 곧은 사돈 덕에 덩달아 경우 밝게 산다. 그렇게 한쪽에서 좋은 말과 좋은 시선으로 서있으니 짧지 않은 세월을 길지 않게 살아올 수 있었다.
가을의 문턱에서 받은 사돈의 편지 한 통이 그토록 유난스러울 일은 아니지만, 거리에 뒹구는 가을 낙엽이 사람의 마음을 붙들듯이 사돈의 편지 한 통은 고마운 선물이다.
사돈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혼자 보기 아까워 사진을 보낸 것이라고 했다. 늘 따라갈 수 없는 어른이라 생각했지만 새삼 느꼈다. 늘 마음이 나보다 한 발짝씩은 앞서 있는 사돈을 볼 때마다 ‘큰마음’, ‘깊은 마음’이 무엇인지 공부하게 된다. 사진 속에서 코스모스들이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서울의 딸에게 사돈 얘기도 할 겸 전화를 했다. 그곳에도 이미 코스모스가 가 있었다. 사돈이 보내준 코스모스 사진 얘기를 했더니 딸아이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도 코스모스 피었습니다.”
지난봄에는 우리내외가 사돈을 부산으로 초대해 해운대에서 휴가를 보냈는데, 그때 사돈은 특별한 나들이였다며 고마워했었다. 편지에 그때 이야기를 쓰셨다. 그리고 그 고마움에 대한 마음으로 코스모스 사진을 보낸다고 했다.
언제부터의 인연일까. 부처님법 속에 살다보면 인연법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그것을 따져 무엇 할까 싶지만 살고 또 살다보면 그것이 그렇지 않다. 인연의 순서를 궁금해 하다보면 삶이 조금이라도 곧아진다. 좋은 인연을 만나고 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드는 것도 그런 연유인 것 같다. 좋은 인연 속에 살고 있어 마음이 훈훈하고 감사하다.
곧 가을이 절정에 이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가을을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 곳곳의 가을을 뒤지고 다닐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입가에 미소가 지나갔다. 나는 이미 가을을 만났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김상희의 노래 ‘코스모스 꽃길’을 흥얼거렸다. 내년엔 꼭 한번 이 사진속의 꽃길을 사돈과 함께 거닐며 사진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매들의 나들이
수원 봉녕사에서 열리는 ‘사찰음식 대향연’을 보러 도반들과 함께 갔다. 작년에 가려다 못 갔었는데, 나를 비롯해 도반들의 원이 깊어져 한 걸음에 달려왔다. 기차를 타고 수원으로 가는 길. 우리는 여고시절에 갔던 수학여행처럼 마냥 신이 났다. 각자가 준비해온 먹을거리를 내놓고 서로 나누며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나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을 버스에 태워 거의가 사찰 참배 아니면 큰 스님들을 친견 공양하는 일로 바쁘기만 했었는데 이번엔 여유롭게 나설 수 있었다.
수원에 도착해 마중 나온 큰딸 근영이의 안내를 받으며 봉녕사로 갔다. 법당 참배 후 점심공양을 마치고 도량 이곳저곳을 돌았다. 얼마 전 입적하신 비구니계의 큰 어른 스님인 묘엄 스님 생각이 났다. 조금 늦게 도착해 ‘사찰음식 대향연’은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다른 여러 나라 스님들과 발우를 들고 경내를 도는 탁발 행사에 동참했다. 베트남, 중국, 미얀마, 스리랑카, 태국, 일본, 네팔, 티베트, 부탄 등에서 오신 스님들이 동참했다.
이렇게 한 곳에서 많은 스님들을 향해 작은 시주금이지만 인연 지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에 감사했다.
봉녕사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서울로 갔다. 다음날은 음력 9월 초하루 법회가 있는 날이다. 우리는 조계사 법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마당은 신도들로 북적이고 법당에선 스님 예불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도량에는 국화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국화들이 뿜어주는 향기가 사찰의 운치를 더했고 가을기운을 더했다.
우리 일행은 각자의 서원을 위해 불전에 앉아 예경하고 법문도 들었다. 부처님 도량은 그곳이 어디든 마음이 편안하고 경건해진다. 많은 불자들과 함께 앉아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있으니 여행으로 인한 피로가 한 순간에 날아가는 듯 했다. 법회를 마치고 우리는 부산으로 향했다.
우리는 부산으로 돌아오는 내내 수원과 서울에서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도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세상이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볼 수 있고, 이사람 저사람 만날 수 있고, 그것이 결국 모두 ‘공부’라고 생각하니, 나에게 아니 우리에게 세상은 너무나 고마운 것이었다. 이야기꽃을 피우다보니 ‘꽃보다 할배’라는 TV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우리는 ‘꽃보다 할매’였다. 얼마 안 남은 생이지만 이토록 고마운 세상에 살고 있는 만큼 정성스럽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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