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石榴)→씨앗이 가득 찬 씨방→보주가 가득 찬 씨방

우리는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여래와 보살이 화생한 자리가, 우주에 충만한 영기가 연꽃모양으로 조형화함에 따라 현실에서 보는 연꽃이 고차원으로 승화된 영기꽃[靈氣花]임을 밝혔다. 따라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으로는 영기꽃의 씨앗이 보주의 개념으로 역시 승화되었음을 충분히 설명해왔다.


즉 연꽃이 영기꽃으로 승화하였으니 연꽃의 씨앗들도 보주들로 승화되어야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리라. 씨앗에서 여래와 보살이 화생한다는 것, 더 나아가 씨앗이 보주로 승화하여 그 보주에서 여래와 보살이 화생한다는 진실[연꽃→영기꽃, 씨앗→보주]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던가! 문자로 기록된 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조형미술 자체에서 찾아내야했었는데 마침내 미혹의 강을 건너 저편의 강변에 이르렀을 때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그 이후 잇따라 수많은 문제들이 풀려졌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석류모양이 그림에 매우 많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그것이 석류(石榴)라고 생각했는데[여기까지가 사실: fact], 10여 년 전에 그 석류 안의 붉은 씨앗들이 보주가 된다고 확신하고 매우 흥분한 적이 있었다. 보주의 본질에 대하여 끊임없이 추구하여 가는 동안, 연꽃=영기꽃의 씨앗이 생명의 근원이므로 씨앗이 승화하여 보주가 되어간다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 당시 ‘여래나 보살이 보주에서 화생한다’는 관념이, ‘여래와 보살이 씨방에서 화생한다’는 조형과 만나 당시 매우 고양된 상태였었다.[여기까지는 진리: truth] 생각이 아니라 명상이었으리라.


석류를 상점에서 사서 열어 보았다. 선명하고 투명한 빠알간 유리알 같은 씨앗들을 보고 환희 작약했었다. 너무도 아름다워서 가슴이 환히 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석류라는 특정의 씨방이 아니라 일반적인 씨방이라는 진실을 알게 된 것은 그 이후 아내의 도움을 받아서 비로소 이루어졌다. 석류가 아니고 만물생성의 근원인 보주가 무량하게 가득 찬 씨방[이 씨방 역시 승화하여 조형적으로 보주(보주에서 무량한 보주가 생긴다) 혹은 만병(滿甁)이 됨]임을 안 것은 엄청난 미술사적 사건이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알고 있는 석류는 석류가 아니고 보편적 개념인 씨방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형미술에서는 현실에서 보는 꽃은 없다. 비록 똑같다고 하더라도 승화된 영기꽃으로 보아야 한다.


통도사 박물관에서는 부석사 괘불을 다음 달부터 전시할 예정인데 연구실 벽에 붙여있는 포스터에서 석가여래의 처음 보는 광배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그림 ①, 그림 ②) 놀란 까닭은 광배에 수많은 씨방이 영기화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기문에서 연꽃모양 영기문이 화생하고 그 영기꽃에서 큰 씨방 주머니가 화생하고 그 씨방에서 큰 빨간 보주가 하나 나오지만, 그러나 하나가 아니고 무량한 보주가 쏟아져 나오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서 무량한 보주들이 계속 생겨나서 확산하고 있다. 만일 연꽃이라면 씨방이 원추형이라야 하는데 주머니 모양이니 연꽃이 아님이 분명하지 않은가!(그림 ③) 단청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을 띤 조형이므로 따라서 여러 가지 목부재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도상이 있다. 이것을 '석류동'이란 용어로 단청 연구자들이 여러 책에서 쓰고 있으며 건축학 교수들과


학생들도 널리 쓰고 있지만, 이미 내가 <한국미술의 탄생>(솔출판사, 2007년, pp.495~562)에서 그 주된 조형이 석류가 아니고 씨방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하여 그 심원한 상징성을 밝혀서 장편의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다.(그림 ④)


우리나라 사찰건축이나 궁궐건축에 가장 많이 쓰이는 ‘석류동’(이 용어는 이제부터 쓰면 안 된다)은 씨방에서 무량한 보주가 생겨나오는 가장 중요한 조형인데 그와 똑같은 조형이 바로 부석사 괘불의 중심에 있는 석가여래의 광배에 감히 표현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런 조형이 도대체 왜 광배에도 대담하게 쓰이고 있는 것일까? 광배에까지 단청에서와 같은 조형이 쓰이고 있다는 것은 ‘우주의 축소인 건축’과 역시 ‘우주에 충만한 여래’와의 관계를 여실히 나타내주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가 모두 만물생성의 근원자이다. 법계(法界)에 보주가 충만하듯이, 여래 자체가 보주가 충만한 거대한 보주라는 진실을 우리에게 웅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씨방=보주의 조형과 여래의 조형이 같지 않은가! 여래의 정수리에서 무량한 보주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오늘이 개천절이어서인지 씨방의 조형이 여래와 같은 모습으로 현신하는 극적인 광경이 나타나는 듯하다. 이 모든 과정을 짧은 글로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제 여러분은 조형언어를 배웠으므로 스스로 읽어보세요. 그러면 이런 조형은 언제 어디에서 비롯하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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