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좌(蓮華座)→영기좌(靈氣座) 하

 

연화좌라는 용어는 틀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화려하고 장엄하게 영화(靈化)시켜서 고차원의 조형을 창조하였으므로, 개구리를 보고 올챙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더구나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연꽃이 아니므로 올바른 용어가 아니다. 그것이 영기꽃[靈氣花]이라는 것을 우리는 통일신라 9세기 석조 비로자나불상조각의 영기좌(靈氣座)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로자나불의 영기화생

성직자들이나 미술사학자들은 여래가 앉는 자리를 주시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앉는 자리’가 매우 중요하다. 속세에서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독일 속담이 있다. 그 자리란 그 사람이 자리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래와 보살이 엄청난 영기에서 화생하였으니 그에 합당한 설법과 실천을 해야 한다. 광배에 관한 설명은 다음 기회에 하고 영기좌에 주력하고자 한다.

어느 날 그 불상을 조사하기 위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갔었다. 평생 불상을 공부하고 사진을 찍어왔으나 이런 각도에서 찍은 것은 처음이었다.(그림 ①, 그림 ②) ‘영기화생하는 비로자나불’ 전체 모습을 보면 왜 영기화생 할 수밖에 없는지 그 영기좌를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 세부를 보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조형이다.(그림 ③) 영기좌를 보면 하대(下臺)의 연꽃은 앞서 말한 것처럼, 하나의 잎에 타원체(?圓體) 영기문이 두 개 표현되어 있으므로 복판(複辦)이 아니다.

영기를 연꽃잎에 불어넣었지만 평면적으로 보이는 것은, 통일신라 하대에는 강력한 양감 대신에 복잡한 장식처럼 보이는 영기문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형이 바로 상대(上帶)의 연꽃이다. 보세요! 그런 연꽃이 어디 있습니까! 도대체 이런 조형은 무엇일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누구도 설명한 적이 없으니 용어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용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그 조형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탐구하다가 올바로 풀려지면 올바른 용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올바른 용어가 저절로 생겨날 것이다.

 

보주의 무량한 생성 드라마

선묘하고 채색하여 보니 굉장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원래 ‘영기문(靈氣文)이란 것은 생명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단계적인 전개가 반드시 있으므로, 만일 그 과정을 보고 싶은 분은 나의 홈페이지(www.kang-woobang.or.kr)로 들어오면 어떤 경우에는 50회 내외에 걸친 단계를 볼 수 있다. 연재에서는 마지막 단계만 보여줄 수밖에 없다.(그림 ④) 그러면 해석해 보기로 한다.

주의할 것은 반드시 그림과 대조하면서 글을 읽어야 한다. ①꽃잎이 중복하여 있는데 아래 부분의 꽃잎은 우선 아래 중앙에 시발점인 보주가 있다. 그 보주에서 영기잎이 양쪽으로 뻗쳐나가고 있다. ②그 중앙의 보주에서 위로 다시 작은 보주가 세 개 맺히고 있고 녹색의 잎이 뻗어 나가는데 불교회화에서는 흔히 보는 조형이다. ③다시 그 위로 부채 살처럼 다섯 개의 보주를 지닌 꽃잎이 확산하고 있다. 바로 여기까지의 조형이 영기꽃의 실상(實相)이고, 꽃잎이 아니므로 연꽃잎은 허상이어서 다른 형태로도 얼마든지 연꽃잎을 대체할 수 있다. ④그 모든 보주의 무량한 확산을 이처럼 조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 전체를 감싸는 연꽃모양이 있는데 역시 얇은 막의 꽃잎에 영기를 불어넣어 두툼하게 만들었다. 혹자는 돌이므로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작은 금동불이나 회화를 보면 그렇게 표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⑤그런 영기꽃을 조각한 다음 다시 그 영기꽃 사이사이에서 다시 보주가 화생하고 있다.

간략화하면 만물생성의 근원을 상징하는 제3영기싹이다. ⑥그 큰 빨간 보주에서 다시 양쪽으로 파란색 보주가 나오고 다시 사이에서 큰 빨간 보주가 나온다. ⑦그 네 개의 보주에 연이어 무량한 보주가 생기는 것이지만 이쯤 해서 끝내는 것뿐이다. ⑧그 다음 다시 부채 살처럼 작은 보주를 지닌 영기꽃잎이 확산하여 가고 있다. 이것도 무한히 전개하는 것이지만 주어진 공간에서 중지한 것뿐이다.

그 다음 그 사이사이에서 꽃잎이 생겨나는데 역시 두툼하다. ⑩이렇게 하여 영기꽃이 만들어지는데 실은 이러한 전개가 무한히 뻗쳐나가는 것이다. 이런 무량한 보주가 화생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표현을 연꽃잎을 빌려서 나타냈을 뿐이다. 그러므로 실상은 보주에 있다. 이러한 강력한 영기꽃에서 마침내 비로자나불이 극적으로 화생한다. 이러한 드라마가 일어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저 연꽃 위에 여래가 앉아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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