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과 법철학 上 - 고준환 경기대 명예교수

▲ 고준환교수는...국민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경기대 법학대학장과 교수불자연합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경기대학교 명예교수며 본각선교원장이다.


지난 주 금강경과 정치철학에 이어 이번주에는 본각선교원에서 진행하는 금강경과 법철학을 만나본다. 2주에 걸쳐 불법의 핵심이 담긴 금강경과 현대 사회의 법을 비교 통찰해 보기로 한다.
 

부처님 설법의 핵심

본각 선교원의「금강경과 법철학」강좌는 불교대승경전인 금강반야바라밀경을 중심으로 한 불교철학과 세간의 평화질서로서 법에 관한 철학인 법철학을 비교 통찰하여 진리에 도달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며 나아가 견성성불을 하면, 금상첨화라 하겠다.
부처님의 법은 달마(Dharma 출세간법)라 하고, 세간법은 러-(law 세간법)라고 달리 부르나, 기본은 자연과 인간에 관한 진리와 정의를 말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법은 같은 점도 있으나 차이점도 많다.
지금부터 약 2천6백년 전에 석가모니는 인도 붓다가야 대각사 자리에서 보리수 아래 길상초를 깔고 가부좌로 앉아 새벽별을 보고, 큰 깨달음에 이르셨다. 대각을 하신 석가모니는 인연과 근기에 따라 방편으로 중생을 구제하고자 47년간 법을 설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셨다.
석가모니께서 설하신 법은 8만대장경으로, 화엄경, 아함경, 방등경, 반야경, 법화열반경이 순차적으로 설해졌다. 이는 말에 의한 진리라 하여 의언진여(依言眞如)라 한다. 또한 문자를 세우지 않고 교외별전으로 마하가섭에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 말을 떠난 진리(이언진여, 離言眞如)가 있으니, 그것이 유명한 선문의 3처전심인 것이다. 영산회상 거염화, 다자탑전 분반좌, 사라쌍수 곽시쌍부가 그것이다.
<화엄경>의 ‘화엄게’(야마천궁 게찬품)와 <열반경>의 ‘열반게’를 봄으로써, 석가모니 법의 핵심을 짚어보자.

<화엄게>
사람이 3세 일체불을 끝내주게 알려면, 일체가 마음이 만든다는 것(一切唯心造) 전존재의 성품이 이 같음을 마땅히 보라.
마음은 화가(工畵師)와 같아서 능히 세간의 모든 것을 그릴 수 있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차별이 없다.

<열반게>
제행은 덧없으니 이것이 생멸법이요.
생멸이 이미 멸하니 적멸락(寂滅樂)이로다.

이를 보면, 부처님 법은 존재의 절대면으로 일심적멸뿐이고, 존재의 상대면으로 보면, 인연과보의 원리로 돌아가는 생멸의 세계는 무상하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출세간법과 세간법의 차이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면 부처님의 출세간법은 불이법, 무위법, 무소유법, 무소득법, 무상법, 무주법, 공법, 구족법, 출세간락이라 할 수 있고, 세간법은 이분법, 유위법, 소유법, 소득법, 유상법, 주착법, 색법, 부족법, 세간락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 의미는 본론에서 다룬다.

불교철학의 중심 금강경
금강경은 ‘한마음’ ‘적멸락’ 불이중도(不二中道), 무주(無住), 무상(無相)의 사상을 담고 있는 불교철학의 중심이다.
금강경의 대의는 제3분 ‘대승정종분’에 기술되어 있다. 구류중생인 보살이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고 항복 받아서 무상의 깨달음과 열반의 경지에 이르러 성불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다.
금강경 제1분은 “이같이 내가 들었다” (如是我聞)로 시작한다. “이같이” 할 때 이미 우주의 진면목은 드러난다. 찰라생 찰라멸 하는 그 바탕 뿐이다.
불경들의 첫머리가 여시아문으로 시작되는 것은, 석가모니를 오래 시봉한 아난존자의 겸손함은 물론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함을 나타낸다.
“어느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큰 비구 1250인과 함께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공양 때가 되었으므로 가사를 입으시고 바루를 가지시고 사위성에 들어가 차례로 밥을 빌었다. 그리고 본 곳으로 돌아와 공양을 마치신 뒤, 가사와 바루를 거두시고 발을 씻은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이것이 유명한 금강경의 머리 제1분 전문이다. 너무나 평범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아니다. 밥 빌고 밥 먹고 발 씻고 자리에 앉는 등 일체가 진여일심자리를 여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제5분에는 금강경 4구게의 하나인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가 들어있다. 무릇 있는 바 모든 형상은 모두 허망하니, 모든 형상이 진실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본다는 것이다. 모든 현상은 찰라생, 찰라멸이고, 연생연멸(緣生緣滅)이며 환생환멸(幻生幻滅)이므로 근본적으로는 불생불멸이고 적멸이라는 것이다.
제10분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에는 여래가 연등불소에서 어떤 진리를 얻으신 바 없고(眞無所得), 보살이 국토를 장엄한다고 할 수 없다.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은 곧 장엄함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장엄일 뿐이라. 모든 보살마하살은 청정한 마음을 낼지니, 마땅히 물질에 마음을 내지말고 성향미촉법에도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낼 것이니라. 이 분에도 금강경 4구게가 있으니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다. 마땅히 머물지 말고(집착없이, 放下着)마음을 내라는 것이다.
이상 적멸 제14분은 형상을 떠나면, 적멸(생멸이 멸한 자리)에 이른다는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강경을 듣고 믿어 이해하여 받아 지닌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제일희유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아상(我相, 나라는 생각), 인상(人相, 사람이라는 생각), 중생상(衆生相, 뭇생명이라는 생각) 수자상(壽者相, 수명이 있다는 생각)이 없는 까닭이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인욕바라밀은 인욕바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일 뿐이다. 수보리야 왜 그러냐하면, 내가 옛날 가리왕에게 몸을 베이고 찢길 때, 내가 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옛날에 마디마디 4지를 찢기고 끊길 그때, 만약 나에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었다면 응당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을 것이니라.
제17분 ‘구경무아분’엔 나라고 할 것이 없고 고정된 나가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인연과보 원리에 따라 인연가화합으로 뜬구름처럼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 한다. 인연아(因緣我)다. 인연아는 몽중아(夢中我, 꿈속나)와 같아서 일체 현상이 꿈속의 일과 같음을 의미한다. 물론 비인연아(非因緣我)인 진여, 즉 부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제26분은 ‘법신비상분’으로 법신불은 형상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만일 모양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으려하면
이는 곧 삿된 길을 가는 것이다
여래를 볼수가 없느니라


제32분은 금강경의 끝으로 ‘응화비진분’, 즉 응화신은 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금강경이나 사구게등을 수지독송하여 남을 위해 연설하면 그 복이 무량아승지세계에 가득한 7보로 보시한 것보다 더 크다는 걸 뜻한다. 어떤 것이 남을 위해 연설하는 것인가? 생각과 현상에 끄달리지 말고, 여여히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不取於相 如如不動). 마지막 금강경 4구게를 통해 이를 보충해본다.

일체유위법여시 一切有爲法如是
몽환포영노전운 夢幻泡影露電雲
운간청천고금동 雲間靑天古今同


일체 현상계의 생멸법은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구름같은데도 구름사이 푸른 하늘은 지금과 옛날이 같더라는 이야기다.

세간 법철학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헤겔은 <법철학>책 머리글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야 날기 시작한다”고 썼다. 철학은 사태가 일정하게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 뜻이 명징해지는 걸 뜻한다. 학문의 회색성이다. 학문은 도(道)와는 다르다. 이는 분별과 생각의 산물이 정리되는데 2차적으로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의 세간살이는 복잡다단하다. 더욱이 서양격언에 “좋은 법률가는 나쁜 이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욕망을 충족시켜 행복하게 살려고 한다. 그런데 욕망을 충족시킬 대상은 제한돼 있는 반면, 욕망과 소유욕은 무한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해 나가려면, 일정한 기준이나 길이 필요하다. 인간이 걸어가야 할 당연함, 즉 당위(must, sollen)를 규범(規範)이라 한다. 규범(Norm)에는 임의 규범(임의로 양심상 지키면 좋으나 안 지켜도 제재가 없는 규범)과 강제규범(지키지 않으면, 국가 등이 강제로 제재하는 규범)이 있다. 임의규범은 도덕규범이라고도 하며 윤리규범을 포함한다. 삼강오륜이 아닌 사회3륜, 불피해행(不被害行 남에게 해를 주는 행위를 피함), 인격예우, 약속준수가 사회도덕적으로 절실히 요청된다.
인간사회의 강제규범은 법(法)규범이다. 국가권력 등에 의하여 법 실현이 보장된다. 그러나 권력은 선하기도 하지만, 악마적 성격이 강하다. 원래 법은 한자로 鹿法로서 水(氵)물수 +鹿(해태치) + 去(갈거)자로 파자해 볼 수 있다. 이는 불의를 보면 들이받는 정의의 외뿔을 가진 해태가 냇물을 따라감을 뜻했다. 법은 물의 흐름과 같다는 것이다. 노자 또한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하였다.
법은 인간사회의 평화질서이다.  법철학의 역사적 주제는 정의와 힘과 법의 관계였다. 자연법론자들은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 하였고, 법실증주의자들(실정법만이 법이라는 주장자들)은 권력자의 의지 실현이 법이라고 보고, 법 발효의 근거를 힘이라고 보았다. 국민들은 선한 권력을 원하나 선한 권력이 가능한지는 어려운 문제이다.

출세간법은 불이법, 무위법
세간법은 이분법, 유위법
다른 듯 보여도 자연에 대한 진리 설해

법은 물의 흐름과 같고
사회 평화질서 지키는 일
이는 불법과 모두 상통해

정의는 사람에 따라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 일반적 정의와 특수적 정의, 절대적 정의와 상대적 정의 등으로 나눈다.
평균적 정의는 당사자 사이를 등가관계로 유지하는 산술적, 교환적 정의이고, 배분적 정의는 각자의 능력과 공적에 따라 개인차를 인정하고 공정하게 분배하는 비례적 평등이다.
‘사회 있는 곳에 법이 있다(ubi societas ibi ius)’는 말도 있듯,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하여 독배를 마시면서 죽어가는 자기 자신을 관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동물(Zoon Politicon 정치적 동물)’이라고 하면서, 정의는 인간최고의 덕이며, 일반적 정의는 공동생활을 위해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이고, 특수적 정의는 각인의 이해배분을 구체적 사례에 따라 평등히 하는 것이라고 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나 울피아누스는 “정의는 각자에게 그 권리 몫을 분배해주는 영원한 의사”라고 하였다. 중세봉건시대 이전엔 왕권신수설에 입각하여 절대적 정의를 논하기도 했으나, 근세 문예부흥이 일어나면서 상대적 정의론이 득세했으며, 파스칼은 팡세에서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의 정의가 저쪽에서는 부정의다”라고 갈파한 바 있다. 법 철학자 G.라드부르흐는 정의는 합목적성과 법적안정성이 요청된다 하였고, R.파운드는 정치적 조직체의 사회통제가 법이고, 인간들의 욕구 등을 사회통제를 통화여 조직시키는 것이 정의라고 하였다.
칼 맑스는 역사를 계급투쟁사로 보며 노동의 잉여가치론을 중심으로 생산력이 생산구조를 결정하는데, 생산구조가 하부구조이고, 법등 문화는 상부구조라고 보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모택동은 인민민주전정에 따라 노농계급의 합작사를 거쳐 인민공사체제로 가서 평등적 정의를 시현하려 했으나 중단되었다.
<계속>
이 원고는 본각선교원에서 강의하는 내용을 미리 간추려 소개한 것입니다. 본각선교원 (02)762-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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