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좌(蓮華座)→영기좌(靈氣座) 상

작은 금동불이라 하더라도 앞서 다룬 고구려 벽화에서와 같이 가능한 한 갖가지 영기문을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옛 장인들은 연꽃 모양에 온갖 영기문을 부여하여 영기꽃으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전혀 다른 차원으로 조형화하여 여래나 보살을 화생시켰다.

여러분! 여래와 보살은 단지 연꽃 위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작은 금동불은 영기좌를 단순화 했지만, 복잡한 예를 들어 설명하려 한다. 실은 더 나아가서 결정적으로 여래를 화생시키는 것은 바로 꽃의 씨방=보주이다. 여래와 보살은 막연히 연꽃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씨방 위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꽃은 씨방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연꽃모양일까?

모든 꽃은 씨방이 자루 모양인데 연꽃만이 원추형(圓錐形)이어서 그 위에 서 있거나 앉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원추형 씨방에서 구체(球體)나 타원체(?圓體)의 씨앗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만물의 근원인 씨앗을 형이상학적으로 변형시켜 보주(寶珠)로 인식하여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엄격히 본질적으로 말하면 여래의 보주화생(寶珠化生)이고, 영화된 꽃잎은 다만 보주화생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인데 지금까지 사람들은 연꽃잎만 보아왔다. 그 까닭은 씨앗=보주 씨앗과 보주의 관계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잎에 갖가지 영기문을 부여하여 씨방과 더불어 강력한 영기꽃을 형성한다.

드문 예이지만 통일신라초의 금제불상 영기좌(靈氣座)를 살펴보면 왜 그런 용어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총 높이는 불과 21. 8센티에 불과하니 대좌의 높이는 6센티미터 가량 밖에 안 되는 작은 작품이다.(그림 ①-1) 영기좌를 각도를 달리하여 보면 놀라운 도상을 볼 수 있다.(그림②-1)

5년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통일신라불상 특별전을 열었을 때, 이 작은 작품을 살피다가 대좌를 찍고 사진을 확대하여 보고 깜짝 놀랐다. 이리저리 각도를 달리하여 대좌를 찍어두었다가 이번에 선묘하고 채색분석하니 감회가 깊다. 영기좌 전체를 채색분석한 것을 살펴보기로 한다.(그림②-1)

기단부에는 투각한 단순한 영기창(靈氣窓: 안상이 아니다)을 통하여 기단부 전체가 무한한 우주 공간인 허공을 상징하고 있다. 혹은 영화된 물[靈水]이 가득 찰 수도 있다. 한 가지 색으로 도금한 것이므로 채색분석해 보아야 한다. 하대(下臺)의 연꽃잎마다에는 복잡한 조형이 있다.

우선 제1영기싹을 면(面)으로 한 형태가 연이어 있으며 그 사이 중앙에 큰 보주가 있고 그 보주에서 생긴 무량한 작은 보주들로 가득 차 있다. 즉 무량보주의 영기화생이다.

그 잎 모양 사이마다에서 잎 모양이 아닌 형태가 나오는데 입체적 양감이 대단하다. 즉 이 꽃잎 역시 막(膜) 같은 얇은 잎에 영기를 한껏 불어넣어 영화(靈化)시킨 것이다. 중대(中臺)에도 영기창이 새겨져 있는데 투각하지 않고 수많은 작은 보주들을 새겼다! 이것은 ‘우주에 충만한 생명력 가득 찬 무량한 보주’를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상대(上臺)의 연잎마다에도 하대에서와 같이 무량보주의 영기화생을 나타냈다.(그림②-2)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씨방이 화생하는데 씨방 안에는 씨앗=무량보주가 화생하고 있다.

즉, ‘이 전체의 조형은 무량한 보주가 영기화생하는 조형이지 연꽃 대좌가 아니다.’ 바로 이런 영기좌(靈氣座)에서 여래가 영기화생하는 것이다. 영기좌를 보면 오로지 무량보주의 영기화생이라는 실상(實相)이 있을 뿐, 연꽃이라는 것은 허상(虛像)에 불과하다. 상대(上帶)의 조형 전체를 잘 보이도록 올려다본 것을 다시 채색분석해 보면 전모를 더욱 확실히 파악해 볼 수 있다.(그림②-2)

매우 드믄 영기좌이지만 이 예로 보아 다른 모든 불상의 예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즉 다른 예들은 이러한 도상들을 생략한 셈이다. 마침내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영기문들이 분명히 보이니 여래의 장엄한 영기화생의 드라마가 눈앞에 펼쳐지지 않는가.

채색분석해 보면 영기좌의 실상이 매우 뚜렷하게 드러나므로 내 스스로 큰 충격을 받는 동시에 희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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