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상태 유지하면, 이타행 생겨나
'마음챙김'상태 유지하면, 이타행 생겨나
  • 정리=배현진 기자
  • 승인 2013.09.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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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관음사 일요법회-잔 보우드리 교수(국제 불교학교)

▲ 잔 보우드리 교수는...현재 조계종 국제불교학교 교수이며 중앙승가대학교에서 강사를 맡고 있다. 연구 공간 수유+너머 등에서 학인들과 함께 존재와 삶을 변화시키는 불교 공부를 모색해왔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연극 프로듀서, 디렉터로 일했다.


마음 거칠어져도 세상 속에서 수행해야
수행은 어느 곳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
"우리는 서로 불성의 자리 지키는 지킴이들"

 
법문을 주기 위해 왔지만 도리어 법문을 받아간다고 말하는 법사. 분명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겸손은 아니다. 잔 교수는 법당에 모인 이들에게 “자신도 똑같은 수행자”라며 우리는 서로 불성의 자리를 맡아주는 ‘자리 지킴이’ 같은 존재들이라고 했다. 잠시 방황하다 돌아와도 멈춰졌던 수행, 잊고 있었던 불성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표지말이다. 8월 4일, 청주 관음사에서 열린 일요법회는 법사와 참여자간 잔잔한 법 나눔의 시간이었다.
 

법당, 불이(不二)가 구현되는 장소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떻게 해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주지 스님께서 제게 법문을 해달라고 요청 했을 때, 참 곤혹스러웠습니다. 미묘한 업과 인연 때문에 여러 곳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저는 그저 수행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저는 여기 모인 여러분에게 뭔가를 주기 위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오늘 전 무언가를 받기위해 여기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법회를 시작할 때 합창단 여러분이 노래로 들려주신 법문 때문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성공양을 듣고 있자니 ‘이렇게 귀한 걸 들으러 여기 온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절에 도착했을 때 수행하시는 분들의 에너지가 도량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저보다 수행이 깊으실 테고 수행해 오신 기간도 오래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다시 공부하는 학생이 된 듯한 기분입니다.
아까 이곳에 처음 도착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부처님이 계신 법당에 가서 인사를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부처님이 ‘거기’ 계시더군요. 그것은 부처님 얼굴을 한 불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당 안에서 여러 사람들이 수행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분들의 에너지가 법당 가득 깃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불이(不二)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둘이 아니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가르침입니다. 오늘 법당에서 느꼈던 것은, 부처님과 여러분이 이미 둘이 아니라는 것, 부처님의 마음이 여러분의 마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맞습니다. 부처님의 마음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의 형태를 한 불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라진 것이지요.
 제가 여기에 있는 이유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법당에서 좌복 위에 앉아 수행하다 잠시 자리를 비울 때 있죠? 그때 여러분의 자리임을 표시하는, 여러분의 흔적을 나타내는 좌복을 떠올려보십시오.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은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를, 이곳을 지키는 것과 같다 생각했습니다. 마치 좌복처럼요. 우리는 법당 안 불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경책합니다. 바르게 수행하고 불이(不二)를 발견하도록 법당 부처님은 우리를 늘 격려해 주십니다. 바로 그런 부처님이 불성의 자리를 맡아주는 사람입니다. 부처님은 그냥 거기 계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처님의 형상을 한 불상이 따로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불성은 우리 마음속에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란 것을 새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른 이들로 하여금 우리가 수행을 통해 가고자 하는 길을 끊임없이 경책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수행

 그래도 여전히 저는 제가 뭘 하고 있는지 늘 질문하고는 합니다. 승가대에서도, 국제불교학교에서도 스님들을 대상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여전히 뭘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묻고는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가르치는 과정이 제게 많은 수행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집에 앉아서 혼자 정진할 때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럴 때는 제가 꿋꿋한 수행자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강의를 위해 교실에 들어서면 제 마음속에 폭풍이 일어나고는 합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행위 자체가 제 수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 화두라고 어떤 스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수업 시간에 제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추는 것은 어렵습니다. 제가 뭔가에 집착한다거나, 성낸다거나 하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바로 알아차립니다. 수행을 한다 하지만 아직도 저는 끊임없이 이런 감정들에 휩싸입니다. 상대의 말과 행동들이 조금 거슬린다 싶으면 제 마음 속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감정은 그것에 대한 거부감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다스리는 데 가르침의 과정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교실에 들어가기 전, 마음을 청정하게 하지 않으면 잘 가르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수행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 혹시 보살의 서원을 독송하십니까? 그것을 읽고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 그처럼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교실에 있을 때, 가르침의 수행을 나를 위한 정진이라기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정진한다고 생각하면 훨씬 더 그 과정이 쉬워집니다. 수행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는다 생각하니까요. 어쩌면 제 가르침을 받는 학생보다도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얻을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제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그들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지켜보는 겁니다.

집착할 게 없다

 2008년 미국 불교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미국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여러 수행자들을 인터뷰했는데 흥미로웠던 것은, 미국에 굉장히 많은 종류의 불교가 존재하고 다양한 스승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곳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행복과 만족을 찾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곳에도 많은 고통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서양에서 불교를 얘기할 때 많이 쓰는 표현 가운데 ‘크로스 트레이닝(cross training)’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불교전통을 만나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자기 길을 찾는 것입니다. 선센터에서 티베트 스님을 초청해서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남방불교 스님을 초청해 수행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방법이 사람들로 하여금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수행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창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수행처들을 순례한 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불교를 가르치는 뜻하지 않은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굉장히 깊고 방대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재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공동체 수유+너머에서 불교 강의를 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됐습니다. 그다음에는 그들에게 또 어떤 가르침을 주어야 할지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그때 제게 훌륭한 좌표가 되어 주었던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나 또는 내 것이라고 집착할 만한 것이 없다’ 라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오늘처럼 새로운 분들과 함께 부처님 법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는 지침이죠. 제겐 참으로 도움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많은 것에 집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은 늘 원하는 것을 탐하고 있거나 싫어하는 것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부처님뿐 아니라 달마대사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도를 발견하고 싶다면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고요. 선의 전통에서도 집착하지 않음이 다시 한 번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조 혜능 대사께서도 똑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수행은 집착하지 않음이다’. 육조단경도 우리가 어떤 대상에 집착하면 그로부터 태어남과 죽음이 일어난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윤회라는 것이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수행은 집착하지 않음, 매달리지 않음, 끄달리지 않음의 수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를 알기 전에는 제 마음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제 존재를 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때는 모든 잘못이 나 아닌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고통이 나,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돌이표 수행일지라도
 
 좌복 위에 앉아서 수행하는 것보다 세상 속에서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지요. 집을 나서려고 문을 여는 순간부터 제 마음은 혼란스러워집니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버스를 탈 때면 운전기사분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죠. 또한 에어컨을 안 틀었다고 혹은 너무 세게 틀었다고 짜증스런 마음이 일어납니다. 학교로 가는 매일 매일, 탐냄과 성냄의 마음이 들었다가 사라지고는 합니다. 그러다가 강의를 위해 교실에 들어설 때면 저는 선생님처럼 반듯하게 행동하려고 합니다. 별로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죠. 마음이 오락가락하다 좋은 선생님으로 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쉽지는 않지만 분명 가능한 일입니다. 방하착이라고 하죠. 내려놓음과 집착하지 않음의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굉장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탐냄, 성냄의 마음이 일어날 때, 알아차림과 마음챙김을 한다면 그 순간에 우린 그것을 수행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알아차림을 통해 성냄과 탐욕을 내려놓고 우리 일상에서의 수행이 조금씩 탄탄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불이(不二)의 마음, 우리 안에 깃들어 있다는 불성을 줄곧 견지하고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 하루를 보내고 오면 마음이 많이 거칠어져있기 때문에, 다시 수행이 도로 아미타불이 된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방석 위에 앉아서 하는 수행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밖에 나갔을 때도 끊임없이 제 수행을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부처님의 마음을 다시 가져오려는 마음챙김을 수시로 하는 거죠. 이는 탐진치가 없는 마음상태를 일컫습니다. 마음챙김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자신을 이롭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한 자리 지킴이 역할을 합니다. 불성을 되새겨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교실에서 강의를 하거나 오늘처럼 법회에 참석할 때 저의 역할은 그저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불성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한테 불성의 자리를 맡아주는 표지 같은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이들이,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마음챙김을 하면서 그들 옆에 있다는 것은,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이 지닌 불성의 자리를 대신 맡아주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저에게 해주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자비로운 마음과 약간의 마음챙김만으로 우리 수행이 얼마나 쉬워질 수 있는지, 우리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걸 해줄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한 수행이지만 큰 결과를 만들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이 저에게 이런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소박하지만 온전한 법 나눔이 이루어진 것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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