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전속 신이한 이야기(37) 숙리의 공덕

사위국 어느 장자의 아내가 너무나 아름다운 딸을 낳았다. 그런데 그 아이는 태어날 때에 섬세하고 부드러운 흰 털 옷으로 몸을 감싸고 나왔다. 부모가 괴이하게 생각하여 관상을 보았더니 아주 길한 징조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장자는 기뻐하며 딸의 이름을 숙리(叔離ㆍ양나라 말로 희다(白)는 뜻)라고 지었다. 숙리가 자라자 털옷도 몸을 따라 커졌다.
숙리의 빼어난 미모는 익히 알려져 있던 터라 원근에서 청혼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숙리는 혼인에 뜻이 없었다. 그녀는 출가에 뜻을 두고 있었다. 어느 날, 숙리는 부모님에게 말했다.
“저는 출가하려 합니다.”
부모는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였기에 그의 뜻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부모는 이내 털옷을 들어내고 다섯 가지 옷(五衣ㆍ비구에게는 3의가지게 했고, 비구니에게는 5의를 가지게 했다.)을 만들려고 했지만, 여인은 부모에게 말했다.
“제가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로 이미 완전하니 다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출가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리고 바로 부처님께서 가서 예배하고 출가하기를 청했다. 부처님이 그녀의 출가를 허락하시자 숙리의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고 입고 있던 흰 털옷이 이내 다섯 가지 옷으로 변하였다. 숙리는 대애도를 스승으로 모시고 정진하다가 오래지 않아서 아라한의 도를 이루었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숙리는 본래 무슨 덕을 닦았기에 태어나면서 털옷이 함께 나왔고, 또 출가하여 도를 얻게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 비바시 부처님 때의 일이다. 이때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이 공양을 많이 베풀었다. 단니기라는 여인이 남편과 함게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너무나 가난하여 두 사람이 가진 것이라곤 오직 털옷 하나뿐이었다. 때문에 만약 남편이 바깥에 나가면서 그 옷을 입고 가면 아내는 발가숭이로 있었고 만약 아내가 털옷을 입으면 남편은 발가벗고 앉아있었다.

삽화=강병호
권화라고 하는 어떤 비구가 다니다가 그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여인을 보고 권하며 말했다.
‘부처님 세상을 만나기는 어렵고 사람 몸은 얻기도 어렵습니다. 당신은 법을 들어야 하고 당신은 보시를 해야 합니다.’
여인은 집으로 돌아가 남편에게 말했다.
‘바깥에서 사문이 우리에게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들으며 보시를 하라고 권하십니다.’
그러자 남편이 대답했다.
‘우리 집이 이렇게 가난한데, 비록 우리에게 보시할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무엇으로 보시를 할 수 있겠소?’
아내는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이 털옷을 보시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대답했다.
‘당신과 나는 오직 이 털옷 하나를 번갈아 입으며 살아왔소. 만약 이것을 보시해 버린다면, 우리는 밖에 나갈 수 없고, 그리하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그냥 앉아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할 것이오.’
부인이 말했다.
‘사람이란 나면 죽음이 있어서 보시와 상관없이 반드시 죽는 것입니다. 보시한다면 죽은 뒤에 희망이나 있겠지만, 보시를 하지 않고 죽으면 마침내 고통을 당할 지도 모릅니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은 기뻐하면서 말했다.
‘죽을 것이 분명하니 그럼 우리 보시를 하십시다.’
아내는 나가서 밖에 있던 권화 비구에게 말했다.
‘대덕이시여, 보시 책에 우리 이름을 올려주십시오.’
비구는 대답했다.
‘만약 보시를 하시겠다면 지금 당장에 보시하십시오. 그대들을 위하여 축원을 하겠습니다.’
그러자 단니기는 말했다.
‘있는 것이라고는 지금 입고 있는 이 털옷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 입었던 털옷을 벗어서 비구에게 주었다. 비구는 축원을 하고 털옷을 받아 부처님께 돌아갔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야 그 털옷을 가지고 오너라.’
비구가 부처님께 털옷을 드리자 부처님께서 손수 받으셨다. 그런데 그 털옷은 더럽게 때가 끼어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 모여 있던 왕과 여러 대중들은 마음속으로 부처님께서 그 때가 낀 털옷을 받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대중의 마음을 읽으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대중을 살피건대 이 털옷을 보시한 이보다 더 깨끗하고 큰 보시를 한 이는 없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대중들은 모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자 왕의 부인은 마음을 내어 자신이 입고 있던 비단 옷을 벗어서 단니기에게 보냈고, 왕 또한 비단 옷을 단니기의 남편에게 보내어 법회에 나올 것을 청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의 가난한 여인 단니기란 이가 바로 지금의 숙리 비구니이다. 그때에 청정한 마음으로 털옷을 보시하였기 때문에 91겁 동안 태어나는 곳마다 언제나 털옷과 함께 태어났고, 모자란 바가 없었다.”(<현우경> 제7권에 나온다.)
동국대역경원 발행 〈경률이상〉에서 발췌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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