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원성 보살의 바라밀 일기

문명과 제도만으로 자녀교육 안돼
대한민국이 따뜻하게 기억되길


청학동 아이들을 보고
70이 넘은 지금도 나는 가끔씩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난다. “남의 허물이 보일 때, 내 허물부터 살펴보라. 남의 약점 보다 그 사람의 장점을 보라.”
생전의 아버님은 평소 자식들의 인성에 마음을 많이 쓰셨다. 그래서 좋은 말이나 좋은 글, 또는 당신이 생각하는 소신들을 종종 일러주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화분에 화초를 키우듯, 숲에 나무를 키우듯 아버지는 정성으로 자식들을 키우셨다. 그리고 그 자식들의 바른 인성은 어른들의 바른 언행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시고 평소 당신의 몸가짐에도 마음을 많이 쓰시며 사셨다.
어느 시대나 자라나는 자녀들은 소중한 존재들이다. 작게는 한 가정의 문제이고, 크게는 한 사회와 민족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이다. 한 가정에 한 두 명의 자녀가 고작인 오늘날의 사회에서 자녀들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내가 자라던 시절과는 또 다른 문제들이 부모와 자녀들을 힘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한 두 마디의 덕담이나 훈계가 훈육이 되고, 부모의 삶이 본보기가 되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집집마다 한두 명밖에 안 되는 귀한 자식들이다보니 냉정하고 객관적인 교육과 편달이 쉽지 않다. 그로 인해 과잉보호나 무관심 등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문제들이 사회전체로 쏟아져 나올 때 가정과 사회가 힘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청학동의 김봉곤 훈장과 그 집 아이들을 TV에서 보게 됐다. 김 훈장의 아이들은 보통의 아이들과는 많이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었다. 보통의 아이들이 누리는 문명의 이기나 환경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김 훈장의 아이들이 왠지 불쌍해 보일 수도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김 훈장의 아이들의 모습에선 그늘이나 불만을 찾아볼 수 없었다. 4남매의 아이들은 반듯하고 당당해 보였다. 나의 걱정이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 물론 TV를 통해 보는 그들의 모습이 그들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나의 걱정이 쓸 데 없는 걱정인 듯 했다. 나의 자녀는 아니지만 왠지 가슴이 벅차고 내 아이들처럼 대견해 보였다.
아버지가 두건을 쓰고 수염을 기르고 한복을 입고 시골에서도 볼 수 없는 아버지의 차림새에도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고 아버지의 가르침에 고마워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예의바른 모습은 도심의 아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도 있었다.
청소년문제가 사회문제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요즘, 청학동 김 훈장의 아이들을 보면서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과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녀 교육의 방법은 무엇일까. 하나의 답만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청학동의 아이들을 보면서 문명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부모와 자녀들에게 청학동의 김 훈장 아이들의 모습이 조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든 아이들을 청학동으로 보내자는 얘기는 아니다. 오늘 날의 문명과 제도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바라본다면 아이들을 문명과 제도 속에서 잠시 떨어져 있게 해보는 것도 부모와 자녀들을 위해 한 번 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절도 그와 비슷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깊은 산사가 아니더라도 주변의 조용한 절이 청학동과 같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문화 가족을 생각하며
TV에서 ‘러브인 아시아’라는 프로를 보게 됐다. 꿈을 품고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 근로자들의 가족들의 감동 사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내가 어릴 적엔 외국인이라고 하면 마치 하늘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신기하게 보였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세계가 한 지붕이다. 오고감이 자유롭고 사는 곳도 다양해졌다. 우리나라에도 다문화 가족이 많아졌다. 같은 나라 안에서 살아도 자주 볼 수 없는 가족들도 많은데, 하물며 머나먼 이국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모형제를 만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프로그램을 통해 보게 된 그들의 사연을 보면서 사람 사는 게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애환을 보면서 그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이들은 한 걸음에 달려가 부모형제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마치 내가 겪고 있는 듯 따라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사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묘소를 찾은 손주는 묘비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사는 모습은 다 비슷했다. 우리 주변에 많은 다문화 가족들을 우리가 보듬어 이웃이 되어주고 보살펴주어 그들이 더는 외롭지 않고, 그곳의 그리움을 이곳에서 다 내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은 모습만 다를 뿐 다 똑 같은 ‘인간’이었다. 행복하면 웃고 슬플 땐 눈물을 흘리는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인 것이다. 말이 달라도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같은 것이고, 생김새는 달라도 눈물을 흘리는 눈빛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 인류임을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대한민국이 따뜻한 나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부처님 그늘에 함께 한다면 더욱 좋을 일이라 생각했다. 타국에서 외롭고 힘든 그들에게 불교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불자로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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