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전속 신이한 이야기(36) - 도를 얻지 못한 사미의 계율 수호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는 한 비구가 있었다. 이때 안타국에는 삼보를 공경하고 믿는 한 우바새가 있었는데, 그는 죽을 때까지 비구의 공양을 대기로 하고 날마다 공양을 보내고 있었다.
마침 그 나라에 또 어느 한 장자는 사내아이를 낳아서 출가를 시키려고 좋은 스승을 구하다가 그 비구에게로 가서 말했다.
“나는 이 아들을 출가시키려 합니다. 대덕께서 제도해 주십시오.”
그때 비구가 도안(道眼)으로 잘 살펴보니, 이 아이는 출가하면 깨끗한 계율을 잘 지니겠으므로 사미로 삼았다. 이때 우바새에게 사이좋은 한 거사가 있었는데, 다음날 손님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이게 되어 다들 모이게 되어 있었다. 그날 아침에 우바새가 말했다.
“이제 모임에 나가야겠는데, 누가 남아서 집을 지키겠느냐?”
그러자 딸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부모님께서는 여러 종들을 데리고 가셔서 청에 응하십시오, 제가 남아서 지키겠습니다.”
그렇게 온 집안이 다 잔치에 갔다. 딸은 문을 닫고 혼자 집 안에 있었는데, 그날 우바새는 바빠서 그만 잊어버리고 비구의 밥을 보내지 않았다.
그때 존자는 생각했다.
‘밥 때가 지났구나. 속인이라 일이 많은 게로구나.’

삽화=강병호
비구는 사미를 보내어 가서 음식을 가져오게 했다. 사미가 우바새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자, 그 딸이 물었다.
“누구십니까?”
“저는 사미인데, 스님을 위하여 밥을 가지로 왔습니다.”
그러자 우바새의 딸이 이내 문을 열어주었다. 이 여인은 단정하고 용모가 빼어났으며, 나이는 열여섯이었다. 여인은 사미가 마음에 들어 음욕이 일기 시작했다. 여인은 사미 앞에서 갖가지 요염을 부리면서 음욕의 모습을 심하게 나타내었다. 사미는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이 여인이 음욕에 끄달려서 나의 깨끗한 행을 깨뜨리려 하는 것은 아닐까?’
사미가 굳게 점잖은 언행을 지니면서 안색조차 변하지 않자, 여인은 이내 온몸을 땅에 던지고 사미에게 말했다.
“제가 항상 원하던 것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의 이 집안의 값진 보물 창고는 마치 비사문 천궁의 보배 광 같으나 주인이 없습니다. 당신은 그만 생각을 바꾸어서 이 집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종이 되어서 당신을 모시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사미는 생각했다.
‘내가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계율을 깨뜨리지 않겠다. 옛날 어느 비구는 음녀의 집에 가게 되자, 차라리 불구덩이에 몸을 던졌을지언정 음행은 범하지 않았다. 또 여러 비구들이 도둑에게 도둑질을 당하고 풀 가지에 매여 있으면서 바람이 차고 햇볕이 따갑고 온갖 벌레들이 깨물어도, 계율을 수호하려는 생각으로 풀을 끊고 떠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저 바다에서 배가 파괴되자 하좌 비구는 계율을 수호하려고 판자를 상좌에게 주고 바다에 빠져 죽었다. 이런 모든 사람들은 부처님의 제자로서 계율을 능히 지켜낸 분들이다. 나도 부처님의 제자인데 왜 지키지 못한단 말인가? 세존께서는 그들만의 스승이요, 나의 스승이 아니란 말인가?’
사미는 여인에게 말했다.
“그만 문을 닫으시오. 나는 방에 들어가 내 할 일을 해야겠소. 그리고나서 그대에게 나아가겠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이내 문을 닫았다. 사미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칼을 하나 찾아 놓았다. 몸에 입었던 옷을 다 벗어서 횃대 위에 걸어두고 합장하고 무릎을 꿇고 구시나성의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곳을 향해 서원을 세웠다.
‘제가 이제 부처님과 가르침과 스님들을 버리지 않고 계율도 버리지 않으면서 바르게 계율을 지니기 위하여 이 생명을 버립니다. 원하건대 태어날 적마다 출가하고 깨끗한 행으로 번뇌가 다하여 도를 이루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목을 베어 죽었다. 이때 여인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지게문에 나아가 살펴보았다. 그가 이미 죽어서 본래의 모습을 잃었음을 보자, 음욕심은 바로 없어지고 부끄러움과 괴로움으로 슬피 부르짖으며 기절했다.
그의 아버지가 모임에서 돌아와 딸의 모습을 보고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다. 딸이 자세하게 사실대로 대답하므로 아버지는 이내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미의 몸이 온통 피로 더럽혀져서 붉기가 마치 전단향과 같았기에 우바새는 예배하고 찬탄했다.
“부처님 계율을 수호하고 지키려고 목숨까지 버리셨습니다.”
그때 그 나라 법에는 만약 어떤 사문이 속인의 집에서 죽게 되면 벌금을 물어야 했으므로, 우바새는 금전 천 냥을 싣고 왕궁으로 가서 말했다.
“대왕이시여, 저에게 벌을 받을 일이 있으니 이것을 왕에게 드려야 합니다.”
왕은 말했다.
“당신은 삼보를 공경하며 언행에 어김이 없는 사람이오. 당신에게 대체 무슨 허물이 있기에 벌금을 낸다는 것이오?”
우바새가 위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의 딸의 잘못을 책하고 사미를 찬탄하자, 왕은 듣고 말했다.
“사미가 계율을 지키면서 스스로가 생명을 버린 것이요, 당신에게는 허물이 없으니, 다시 가지고 돌아가십시오. 나는 지금 당신의 집에 가서 사미에게 공양하고 싶습니다.”
왕은 우바새의 집으로 가서 사미를 보고 나아가 예배하고, 갖가지 보배로써 높은 수레를 꾸리고는 죽은 사미를 싣고 평탄한 땅으로 가서 많은 향나무를 쌓아 다비하고 공양했다. 그리고 그 여인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잘 꾸며 잘 보이는 곳에 세워놓고 그때 모인 대중들에게 말했다.
“이 여인이 아주 잘 생기고 이렇게 아름답다. 아직 욕심을 여의지 못한 사람이라면 누구인들 음심이 없을 수 있겠느냐? 이 사미는 아직 도를 얻지 못했는지라 생사를 오가는 몸으로써 이와 같이 계율을 받들며 목숨을 버렸으니 매우 기특하고 희유하다.”
왕은 이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스승을 청하여 널리 대중들을 위하여 미묘한 법을 설하게 했다. 그러자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그 일을 보고 듣고서 출가하려 하는 이도 있었고,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내는 이도 있었다. (<현우경> 제7권에 나온다.) 동국대역경원 발행 〈경률이상〉에서 발췌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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