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단, 불탁, 불단→영기단(靈氣壇) 하

지난 34회에서는 경흥사(慶興寺) 영기단(靈氣壇)을 다루었는데 완전한 형태는 아니었으나 측면의 영기문이 고구려 사신총 벽화의 영기문(본지 948호 참조)과 그 원리전개가 정확히 같아서 특별히 다룬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영기단은 은해사(銀海寺) 백흥암(百興庵)에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훌륭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모든 영기단의 조형미술은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영기화생의 원리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은 물론, 그 모든 불단의 조형에 변화가 많아서 그 다양성에 놀란다. 도대체 그토록 핍박을 받아온 조선시대의 스님들은 어떻게 괘불(掛佛)이나 영기단처럼 위대한 작품들을 수 없이 만들었을까?

 

다양한 조형언어의 통일성

문자언어로 쓰면 유생들이 모두 읽을 수 있어서 더욱 핍박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형언어로 작품을 만들면 유생들은 읽을 수 없어서 탄압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껏 폭발적으로 조형미술에서 불교의 정신을 나타냈던 것이다. 그런 불교미술의 요소는 조선시대 궁궐건축에서도 꽃피우고 있으나, 왕과 유생들은 그 조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니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불교미술이라 해도 그 불교미술이 선도미술(仙道美術)의 바탕 위에 성립한 것이어서 불교미술에 우리민족의 근원적인 사상과 그것을 표현한 조형미술이 고스란히 이어져 왔다.

그런 수 천 년 동안 역사적으로 이어온 우리나라 조형들을 집약시킨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기단이다.(그림 ①) 크고 작은 구획진 불단 가운데 세 영기문만을 선정하여 채색분석해 보았다. 선묘(線描)를 직접하고 채색분석해보면서 영기단의 용어가 얼마나 부합하는지 여실하여 기쁘기 그지없다. 올바른 용어를 만들려면 대상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용의 입에서 나온 영기꽃(모란 모양)과 같은 영기꽃이 피어나는 영기문이 불단 가운데 있다.(그림 ②) 모란이 아니라는 것은 차차 증명할 것이다. 중앙에 영기꽃과 줄기가 있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영기문이 기세 좋게 구상적으로 발산하고 있는데 현실에서 보는 잎같이 보이나 잎이 아니고 영기싹을 구상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런 가운데 양쪽에서 두 영수가 화생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부르기 어렵지만 용의 속성을 지닌 영수다. 꼬리에는 태극모양이나 기세가 강한 영기문이 연이어져 있는데 이 역시 꼬리로부터 영수가 화생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해서 화생한 만물(영수가 대표)에서 영기문이 발산하는데 이런 과정이 영기화생론의 골자다.(영기에서 만물이 화생하고 화생한 만물에서 영기가 발산한다) 그래서 영수의 발이나 몸에서 각각 빨간 색의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지 않은가!

또 다른 예로 앞 회에서 다룬 영기문의 조형과 똑같이 전개하는 도상이 있다.(그림 ③) 즉 고구려 사신총 벽화의 영기문의 전개와 똑같은 원리로 전개하되 영기 줄기에서 갖가지 제3영기싹들이 돋아나고 있으니 매우 강력한 영기문이다. 그리고 전개과정에서 거대한 보주(노란 색으로 칠한 것: 원래 색은 금색이다)를 감싼 큰 영기꽃이 활짝 피어 있다. 그런 영기문을 입체적으로 표현하여 그 사이에서 두 물고기가 화생하고 있다. 이 백흥암 영기단에는 용의 영기화생 도상도 있는데 물고기의 영기화생과 같은 상징을 띤다.

 

장식 장엄이란 말로도 부족한 표현

거대한 직육면체의 단 안의 공간 안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며 영기가 가득 차 있음은 이미 언급했다. 즉 그 단 안은 우주의 광활한 공간이요, 허공이다. 그 맨 아래 부분에는 영기창들이 뚫려 있고, 영기창 마다에서 용의 정면 얼굴이 나오려 하며 그 입에서 영기꽃이 양쪽으로 뻗쳐나가고 있다.(그림 ④) 흔히 모란이라 말하나 모란이 아니고 만물을 화생시키는 영기꽃이다. 그 까닭은 영기단 모든 도상에는 다양한 영기문이 바탕에 깔려 있거나 입체적으로 조각했는데 그 영기문에서 만물이 화생하고 있다. 갖가지 영조(靈鳥), 영수(靈獸), 용과 마찬가지로 물을 상징하는 물고기, 사람들 등이 화생하고 있다. 그러므로 많게는 백 개가 넘는 구획을 짓고 있어서 영기단은 갖가지 생명생성의 다양한 모습을 망라하고 있어서 영기단이야 말로 영기화생의 장엄한 광경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장식이 아니며 장식을 높여서 말하는 장엄도 역시 아니다.

그러니까 영기단 맨 밑 부분의 용들의 입에서 발산하는 갖가지 영기문들이 영기단 전체에서 갖가지 만물을 탄생시키고 있는 셈이다! 즉 영기단 안의 허공에 가득 찬 영적(靈的)인 물(靈水)이 넘쳐흘러 밖으로 나오는 형상을 맨 밑의 영기창들의 용의 정면 얼굴로 나타낸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감회가 깊다. 마침내 단순한 불단이 아니라 여래의 영기화생을 괘불에서와 같이 체험했기 때문이다. 아미타 삼존불이 영기화생하는 대 드라마가 안전(眼前)에서 벌어지고 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한 분의 여래를 봉안하는 소규모의 영기좌는 다음 연재에서 다루기로 한다)

그림① 백흥사 극락전. 아미타삼존상

그림② 두 영수가 영기문에서 화생하는 도상

그림④맨밑의 영기창에서 용이 나오며 용의 입에서 양쪽으로 영기꽃이 발산하고 있다.

그림③경흥사 불단의 영기문과 맥을 같이 한다. 그 영기문에서 물을 상징하는 물고기가 화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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