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지장재일 법회 - 홍선 스님(범어사 교수사)

▲ 홍선스님은 1953년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사미계를, 1965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1967년 범어사승가대학 수료 후 일본 화원대학에 유학했다. 일본 경도불교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일본 동경대학교와 경도대학교 인도철학과도 수료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LA 유니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시카고 KAECE대학과 중앙승가대 교수를 역임했다. 2002년 중앙승가대학교 초대 대학원장을 지냈다. 현재 금정총림 범어사에 주석하고 있으며 범어사 교수사를 역임하고 있다.

자비심은 베풀수록 커져
유마거사 8가지 법 설해
요익중생·회향·평등 강조

스님은 번뇌를 두껍고 질긴 딱지라고 표현했다. 번뇌의 딱지를 한 꺼풀 벗기러 법당을 찾은 불자를 위해 8월 24일, 범어사 교수사 홍선스님은 유마경을 주제로 번뇌의 사바세계를 벗어나 정토에 나는 법을 설했다. 스님이 법문에서 강조한 건 중생과 보살의 구분을 두지 않는, 차별없는 일심이었다.

번뇌는 검은 구름과 같아
마음이란 건 번뇌로 꽉 차있기 마련입니다. 번뇌라는 건 뿌리도 없고 근본도 없는 것입니다. 실체가 없기에 없애기도 힘들죠. 흡사 검은 구름처럼 마음을 덮고 있으니까 쓸어내는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바닥에 번뇌가 깔려있기에 좋은 생각을 하려해도 할 수가 없어 온갖 업을 짓게 됩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흥분하거나 화날 일이 더러 있을 겁니다. 그러나 법당에 와서 지장보살을 염하고 있으면 그 동안만큼은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지죠. 그때 비로소 우리의 업이 씻어지고 번뇌가 서서히 사라져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나 법당에 앉아 있을 때는 마음이 맑다가도 나가는 순간부터 온갖 번뇌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신발을 챙겨 신을 때부터 누가 자기 신발을 밀어놨나 하며 투덜거리고, 공양하러 갔을 때도 무슨 줄이 이렇게 기냐며 혹여 누가 자기 앞에 서려고 하면 새치기 하지 말라고 쏘아댑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번뇌를 일으키고 번뇌에 힘을 줍니다. 번뇌의 딱지가 두껍고 질기다 보니까 쉬이 없어지지 않는 거죠.
이러한 번뇌, 즉 탐진치를 걷어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종교나 가르침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로지 불교에만 있습니다. 지장보살을 정근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장보살을 염하며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을 때 번뇌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을 생각하며 마음을 좌정한다면 번뇌가 범접하지 못하고 이를 씻어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번뇌가 맥을 못 쓰게 하고 싶다면 지장보살을 부르십시오.

어디서나 자비향이 나는 곳
불교에서는 부처님 전에 향을 꽂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처럼 예경의 뜻을 담아 향을 쓰기 시작했을까요. 5천년도 더 된 아주 옛날, 신과 소통 하고 싶은데 아주 옛날에 살던 사람들도 세상을 살아가다 보니 자기 맘대로 되는 일이 많다는 것도 알고 인생사가 즐겁다가도 힘들기도 하니까 이건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신의 영역을 생각하게 된 거죠. 그래서 신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좋은 향기가 나는 나무를 태워 연기를 피워올리면 이게 하늘에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 풍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때도, 도량을 맑고 깨끗하게 하고자 할 때도 향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향은 부처님의 세계와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두 손 모아 공경하는 한 마음으로 향을 올리는 것이죠.
오늘 법문 주제도 유마경의 향적불품입니다. 향을 아주 많이 쌓아놓은 부처라는 뜻입니다. 향적불이 계시는 곳은 어느 곳에서나 좋은 향기가 나고 말하는 사람 입에서도 향기가 나는 세계라고 합니다.
어느 날 유마거사가 몸이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부처님이 위문차 제자들을 유마거사께 보냅니다. 많은 스님들이 앉아계신 가운데 유마거사는 깊은 삼매에 들게 되죠. 그리고 그 신통력으로 대중에게 어떤 부처님의 나라를 보여줍니다. 이렇듯 삼매능력이 크면 모든 제자들을 함께 삼매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같이 수행하는 입장이라는 거죠.
상방의 세계를 지나 중향이라는 나라에 당도했는데 거기 계신 부처님이 바로 향적부처님입니다. 이 세계의 향이라는 건 바로 자비의 향을 말합니다.
손자들이 할머니를 좋아하는 건 할머니가 손자를 아끼고 실수해도 어루만져주고 다듬어 주시고 하시기 때문이죠. 이러한 자비의 표현들 때문에 손자들이 할머니 곁에 있으려고 하는 겁니다.
다시 유마경으로 돌아가, 공양을 걱정하는 사리불의 마음을 알아챈 유마거사가 신통력으로 향적부처님께 보살을 보내 공양물을 얻어오게 합니다. 그런데 가지고 온 것이 발우 한 그릇이었습니다. 사리불이 다시 걱정하길, 발우 하나가지고 어떻게 이 많은 대중들을 다 먹일 수가 있을까 하고 염려하는데 유마거사가 걱정하지 말라고 하죠. 발우에 담긴 음식을 떠내면 떠낼수록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까요. 이게 상징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말과 생각으로만 행하는게 아니라 자비는 베풀면 베풀수록 더 많아진다는 걸 의미합니다. 결코 베풀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아주 조그마한 것을 주더라도, 안쓰러운 마음과 도와주려는 마음을 먹을수록 그 공덕은 더 커지고 자비심은 더 넓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자비심이 커질 때 자신의 모든 행동과 말에서 마치 향적부처님처럼 향기가 난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향기가 감돌게 되죠.
그리고 유마거사가 이르기를, 분별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마음을 가지면 자비향으로 가득한 음식이 소화가 안 될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역시 밥을 먹으며 간이 짜네 싱겁네 하고 투덜거리곤 합니다. 실컷 힘들여서 밥상을 차렸는데 먹는 이들이 이렇게 말하면 화가 나겠죠. 그러나 반찬가지고 투정한다면 그럴만한 여유가 있다는 얘기니까 성내지 말길 바랍니다. 오히려 이 음식을 먹고 건강해졌으면 하는 자비심을 가지고 상대에게 부드러운 말로 얘기하십시오. 같이 화를 내면 그 음식이 소화가 될 것이며 또는 몸에 영양으로 가겠습니까.

차별없이 행하라
한편 향적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보살들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께 예경과 공양을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향적불이나 석가모니나, 중향에 살고 있는 보살들이나 사바세계의 보살들이나 보살의 지위에 오르신 분들은 차별이 없다는 걸 뜻합니다. 부처님 이름만 다를 뿐이지 모두가 동등한 분입니다. 교화하는 세계가 다르지만 같은 부처님인거죠.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이나 자비나 동등하다는 걸 일러주고 있습니다.
이에 향적부처님은 보살들에게 이르기를, 사바세계에서 아직 보살이 되지 못한 이들이 부끄러워하거나 비굴해하지 않도록 행동하라고 했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비굴함과 섭섭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대하라고 하신겁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요즘에야 외국으로 선교활동을 하러 가는 선교사들에게 지역민들이 차별을 느끼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생존 당시에도 도움받는 사람들을 배려하라는 가르침이 있었죠. 이게 바로 바른 자비 정신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도 후진국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을 보며 배고픈 아이들에게 과자를 던져주곤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우리나라에 주둔하던 미국인들이 꼬마들에게 비스킷과 초콜릿을 주곤 했지요. 그때 저도 어린 아이였는데 정말 먹고 싶었지만 차마 미군들을 쫓아가지 못했습니다. 어리더라도 참 자존심이 상했던 거죠. 어려운 나라가서 차별두지 아니하고 그 나라 사람들이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하지만, 미얀마나 태국 들어가신 주위 스님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경우를 종종 봅니다. 불교만이 옳은 길이라며 구호품으로 차별하는 거죠.

일심으로 공덕 이루는 삶
마지막으로 중향 세계의 보살들이 유마거사에게 “어떤 일을 해야 부처님 정토에 태어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유마거사는 8가지 법을 성취하면 사바세계를 벗어난다고 답합니다. 첫째, 요익중생해야 한다고 합니다. 중생들을 이롭게 하되 보답을 기대하지 말라는 거죠. 그러나 우리는 뭔가 행하면 기대하기 마련이죠. 상대에게 뭔가를 줬을 때 아무런 감사의 인사를 못 받으면 섭섭해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게 바로 보답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기대도 짓지 마십시오.
둘째, 일체중생의 고난을 대신 받고 그 공덕을 중생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회향정신입니다. 대승불교로서의 정체성과 보살의 길로 나아가는 길은 결정적으로 마지막 회향에 달려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을 떠올려보십시오. 평생 벌어놓은 것을 물려주고도 아깝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요즘은 부모 자식 관계가 거칠게 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는 건 본질적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보답만 바라지 않으면 사랑하는 자식에게 주는 건 즐겁기 마련입니다.
셋째,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을 가져 겸허하고 걸림이 없어야 합니다.
넷째, 모든 보살을 부처님 대하듯 해야 합니다. 이 스님, 저 스님 차별두지 말고 같은 마음으로 대하십시오.
다섯째, 아직 듣지 못했던 경을 들었을 때 마음을 모아서 들어보십시오.
여섯째, 남의 단점을 찾아내지 않고 자기 마음을 조복해 항상 자신의 잘못을 반성합니다.
일곱째, 다른 이들이 공양받는 걸 보고 질투하지 말고 자신이 얻은 이익에 교만하지 마십시오.
여덟째, 항상 일심으로 갖가지 공덕을 구합니다.
일심이란 차별, 구별, 계산하지 아니하는 마음입니다. 염불을 일심으로 하라고 하는 것은 비교하고 구별하는 마음을 접어놓으라는 것입니다. 염불하는 내가 지장보살과 마주보며 있는 게 아니라 한 마음으로, 나와 지장보살이 다르지 아니하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구별하는 마음을 지우고 난 그 빈 마음이 지장보살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이품(不二品)이죠. 중생과 부처의 불성이 둘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추하다, 깨끗하다 이러한 분별을 넘어선 세계를 일컫는 말이며 불성의 세계이고 부처님의 세계며 우리 본성의 세계죠.
그리고 일심에서 한 걸음 더 걸어가 무심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일체 모든 생각이 지워져서 오롯한 그것이 바로 무심입니다.
일심으로 기도를 하며 모든 공덕을 이루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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