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사 백중6재 법회-양관 스님(동화사 승가대학 강주)

▲ 통도사 강원 졸업. 은해사 승가대학원 졸업. 동국대 선학과 박사과정 수료. 통도사 강사. 동국대 선학과 강사. 현재 팔공총림 동화사 승가대학 학장.

목련존자 효심으로 비롯
"우란분은 거꾸로 매달린
지옥 중생 구한다는 의미"

지상에서 맺었던 부모 자식간의 연. 그 끈을 동아줄 삼아 구천을 헤매는 부모의 넋을 천도하고자 하는 우란분재. 조상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재이지만, 그 속에는 업과 참회와 용서의 의미가 담겨 있어 살아있는 이들에게 경책이 되어준다. 8월 14일 동화사 백중 법회에 모인 이들은 승가대학 강주 양관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불교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우란분절에 담긴 의미를 되새겼다.


인과법을 수용하는 자세


승가대학 강사로 있으면서 일반인 여러분께 법문을 설하는 일은 많이 없었지만 우란분절을 맞아 이렇게 여러분과 만나게 되니 반갑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단편적으로 들었던 목련존자 얘기라든지 악업을 행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지옥에 떨어진다는 얘기 등이 어떤 경전을 근거로 해서 설해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깊이 생각해 보는 분도 있으셨겠지만 아마 많은 분들이 계속해서 들어왔던 이야기라고 생각해 흘려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음력 7월 15일인 백중. 불자들은 무슨 이유로 이 더위에 법당에 모여 조상님들을 다시 불러내고자 하며 또 각자 서원을 세우고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걸까요. 백중 6재인 오늘  여기 이렇게 우리가 모였다는 건 먼저 떠나신 분들이나 살아있는 존재나 다 함께 인연이라는 하나의 끈으로 묶여있다는 걸 느끼기 위해서일 겁니다. 우리 삶을 되돌아보며 먼저가신 이들의 극락왕생을 빌기도 하며 모여 있는 겁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우란분경을 함께 읽으며 우란분절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잠시 사리불의 얘기를 할까 합니다. 부처님의 초기제자 중에서 지혜제일존자 사리불과 목련존자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습니다. 부처님이 출가해서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초기에 제자가 된 분들이죠. 그때 사리불은 탁발을 나갔다가  아주 여법하게 탁발을 하고 있는 마승 비구를 보고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의 제자이며 당신의 스승이 가르치는 법은 무엇이냐”고요. 그때 마승 비구가 “저는 아직 출가한 지 얼마 안 돼서 스승의 가르침을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일어나고 멸해간다는 것이 스승의 가르침입니다”고 얘기했습니다. 사리불은 그 말을 듣고 세상에 그러한 스승이 있다는 걸 알고 뛸 듯이 기뻐합니다. 모든 일이 인연법을 따라 간다는 말은  하도 많이 들어서 지금 우리들에겐 별반 감흥을 일으키지 못합니다만,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내용은 당시 수행자들에게 반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말들을 가슴깊이 받아들이지 않고 한귀로 흘려듣는 우리들과 비교하면 천지차이죠. 어쨌건 사리불은 그 말을 듣고 부처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목련존자에게 찾아가 훌륭한 스승을 발견했다며 함께 출가하자고 권유하죠.

목련존자. 그는 목련존자는 신통을 부리면서 중생들을 교화한 분이기도 하고 어느 누구보다 포교일선에서 많은 외도들을 부처님 품안으로 인도했던 분이기도 합니다. 다 아시다시피 부처님의 10대제자 중에서 신통력이 가장 뛰어나서 신통제일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목련존자는 외도들의 돌에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신통력을 부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을 쓰지 않으셨던 겁니다. 당신이 살아오면서 행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원한으로 갚지 않고 인과로써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셨던 거죠. 인과법을 수용하는 자세를 직접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분인거죠.


우란분절은 부모에 회향하는 날

음력 7월 15일을 백중, 우란분절이라고 합니다. 백중은 24절기의 중간에 있는 날입니다. 예로부터 머슴들이 호미를 놓고 쉴 수 있는 민속의 날이기도 했으며, 불교에서는 전생 부모님을 천도하는 의식과 효도하는 마음이 합쳐져 그들을 기리는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기도 했죠. 고려시대 때부터 성행해서 ‘부처님오신날’과 버금가는 날로 인식돼 왔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 이미 존재했던 많은 분들을 생각하고 그 분들께 이러한 마음을 회향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란분재는 효성이 지극한 목련존자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목련존자는 처음 신통을 얻고나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았는데, 도안으로 보니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지은 업 때문에 아귀지옥에 있었습니다. 목련존자는 음식을 잡수시지도 못하고 피골이 상접한 어머니를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슬픔을 가다듬고 밥이 가득 담긴 발우를 들고 지옥에 들어가 어머니께 드리게되죠. 그러나 어머니의 손이 닿자마자 밥은 뜨거운 석탄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우란분경의 시작입니다.

우란분은 인도 범어로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뜻으로 지옥에 매달려 있는 중생을 구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오래 서 있으면 바로 서는 것도 힘든데, 거꾸로 매달려 있는 이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우리는 몸은 비록 바로 서 있을지 몰라도 마음이 뒤틀려 거꾸로 매달린 존재가 될 수도 있고, 번뇌에 쌓여있어 머리가 아래로 향한, 항상 고뇌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란분경은 이러한 분들을 어떻게 구제할 건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란분재는 승가, 대중에게 음식과 여러 필수품을 공양하여 복을 짓는 불사를 가리킵니다. 이 공덕으로 돌아가신 부모를 포함해 7대조 부모까지 모두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 하늘에 태어나도록 발원하는 거죠.

목련존자 어머니는 목련존자가 출가하면서 재산을 보시하고 환원했는데 그 재산을 흥청망청 탕진해 아귀 몸을 받게 됐습니다. 승가에서는 한 아들이 출가하면 삼족이 하늘나라에 태어난다고는 말이 전해 내려오는데요. 목련존자 어머니는 훌륭한 수행자를 아들로 두고 있었지만 자기 업은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목련존자도 외도들의 돌에 맞아죽었다고 했지요. 부처님도 깨달음을 얻기 전 다른 사람이 공양 가져온 걸 보고서 마음에 차지 않아  핀잔을 놓습니다. 악담 아닌 악담을 해서 그 과보로 부처님도 고통을 겪게 되지요.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가 깨닫기 이전 행위에 대해서도 반드시 거기에 따른 과보가 오기 마련입니다. 항상 행동을 선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가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인과가 분명하다는 것. 부처님도 보여주셨고 목련존자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과는 분명한 것 하지만 변할 수 있어

우란분경은 금강경과 마찬가지로 기수급고독원에서 설해지고 있습니다. 기원정사를 보시한 급고독장자는 외로운 노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대부호였고 부처님 법을 한번 듣고서 감동받아 기타 태자가 갖고 있던 동산을 사서 부처님을 위한 절을 지었습니다. 부처가 설법하는 장소를 마련해준 것이죠. 부처님이 가장 오래 기거하신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삼귀의를 할 때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고 하는데요. 이는 귀불양족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고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 분께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는 무엇일까요. 바로 복과 지혜입니다. 우리는 복을 많이 받고 지혜를 갖췄으면 바라죠. 그렇다면 복을 닦는 길은 무엇일까요. 보통 생각하길 부모님께 효도하고 착한 일 하고, 수행해서 마음 맑히는 것 등등 여러 가지를 이야기 하죠. 복을 가장 많이 닦았던 분이 바로 급고독장자가 아니겠습니까.

현생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다음 생이 달라진다고 하죠. 철저히 인과에 기인하고 있다 얘기하는데 대승불교에서는 이것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여지를 남겨둡니다. 우리들의 염원과 회향에 의해 약간 변화될 수 있다고 말하는 거죠. 대표적인 것이 지장보살입니다. 우리가 지장보살 정근할 때 지장보살 멸정업진언하지 않습니까. 결정된 업까지도 멸하게 해준다는 건데요. 이러한 우리의 서원을 도와주는 분이 지장보살입니다.

일반적으로 윤회를 얘기할 때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아귀, 축생, 지옥 삼악도에 떨어진다고들 합니다. 또한 선한 행위를 한 사람들은 인간으로 돌아오든지 천상으로 간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선업을 쌓아 인간으로 태어났는데도 불구, 현실을 보면 때로는 불평등해 보이는 상황들을 보기 마련이죠. 태어난 환경이 다르고 외모가 다르고 능력이 다릅니다. 인간으로 태어날 복은 지었으되, 그 복이 모자란 경우 여러 가지 불평등한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다는겁니다. 전생에 살생을 했던 사람은 건강이 좋지 않고 일찍 죽게 된다고 하고, 투도 즉 도둑질 한 사람은 가난하게 태어난다고들 합니다. 도둑질의 반대는 보시를 많이 하는 겁니다. 우란분경도 부모님을 천도하는 의식도 있지만 스님들에게 공양물을 올림으로써 보시를 행하는 부분이 크게 설해져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보시를 많이 행해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좀 더 나은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겁니다. 계속해서 보자면 사음을 행했던 이는 가족들이 정숙하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망어, 거짓말을 일삼은 이는 하는 말에 신용이 없고 남한테 멸시를 받게 된다고 하고, 양설, 이간질을 한 사람들은 마음이 항상 불안하고 가정불화를 겪거나 친구한테 버림받는다고 합니다. 악구, 욕을 자주 한 사람은 다음 생에 얼굴이 못생기고 듣기 싫은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나 사람들에게 항상 미움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기어, 번지르르한 말하길 즐긴 사람은 남에게 미움 받고, 가족들이 흩어지게 된다고 하고, 탐욕이 많거나 성을 잘 내는 이도 다음 생에 그대로 욕심도 많고 화를 잘 내게 됩니다. 이처럼 인과는 분명하다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올바른 불자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요.


음 7월 15일 '자자' 행하는 스님을 공양

다시 경전으로 돌아가 살펴보면 목련존자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목 놓아 통곡을 하고 부처님께 달려와 하소연을 합니다. 이에 부처님은 아무리 목련존자가 신통해도 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머니를 구할 수가 없으며 천신지신, 사천왕까지도 어찌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오로지 스님들의 위신력만이 어머니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7월 15일에 자자를 행하는 스님들께 공양하라고 일러줍니다. 자자는 안거를 마친 스님들이 모여 서로 청정하게 지냈는지 참회하고 충고하는 대중행사고 자신의 허물을 대중에게 스스로 고백하는 날입니다. 고해성사가 천주교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수행에 접목시켜 대중과 함께 자신의 업을 참회하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수행임을 알려주죠. 우란분재는 이처럼 해탈이 개인의 뛰어난 신통력보다 대중들의 참회와 용서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일러줍니다.

매번 불법승 삼보를 얘기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믿는 마음이 모자라면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겨납니다. 철저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우리를 업에서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우란분재에는 부모를 위하고 자신의 다음 생을 위해 업장을 참회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세세생생 함께해 마음도 닦고 우리가 죄를 짓고 있지는 않은지, 악업을 짓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나가도록 하세요. 이러한 의미와 더불어 부모님께 효도하는 의식도 함께 행함으로써 우리 자식들에게도 이를 알려나가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도리가 아닐까 합니다. 우란분재에 참여하는 것은 결국 조상을 천도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천도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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