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단, 불탁, 불단→영기좌(靈氣座) 영기단(靈氣壇) 상
영기단 안에는 ‘무량한 물’이 담겨져 있다. 우리는 중국의 불화에서 여래가 앉아 있는 수미단을 아주 조금 들추어 주어서 그 안에 바다가 넘실대는 파도를 엿본 적이 있다. 즉 그것은 무한한 영기가 충만해 있음을 뜻한다. ‘영묘한 물’에서 갖가지 영기문이 나타난다.’ 즉 영기단이라는 육면체의 거대한 나무 상자는 ‘만병(滿甁)’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그 안에는 물이 가득 차 있다. 즉 망망대해(茫茫大海)가 들어있다. 그 진실은 표면에 새긴 수많은 영기문으로 알 수 있다. 만일 그 무한한 공간에 물이나 영기가 충만하지 않으면 그처럼 생명생성의 과정을 보여주는 다양한 영기문을 표면에 새겨질 수 없다. 그러므로 영기단 맨 아래의 영기창으로부터 용(龍)의 얼굴이 나오고 입에서 영기문이 좌우로 뻗친다. 그것은 불단 맨 밑으로부터 ‘물’이 무량하게 쏟아져 나오는 것을 상징한다.
바로 만물을 영기화생하게 만드는 영기좌(靈氣座: 작은 대좌)나 영기단(靈氣壇: 큰 대좌)에서 마침내 절대적 진리인 여래가 화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래가 영기화생하는 장엄한 광경을 보여 주는 그 근원적 표현이 영기단인데, 불단이라는 명칭으로는 그 엄청난 상징을 떠 올릴 수 없다. ‘여래와 보살을 영기화생시키는 단’이라는 명칭을 줄여서 ‘영기좌’나 ‘영기단’이라 부르려는 것이다. 이처럼 ‘영기에서 여래가 화생하고, 화생한 여래로부터 영기가 발산한다’는 원리에서 보면 화생한 여래에서 발산하는 영기는 바로 설법할 때 여래의 입에서 발산하는 법문(法門), 즉 성음(聖音), 혹은 영음(靈音)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조선시대에 여래로부터 발산하는 이른 바 광배(光背)가 대부분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하나의 영기단을 채색분석하면서 설명해보기로 한다.
경산시 동학산(東鶴山) 경흥사(慶興寺)의 영기단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보았을 때 매우 놀랐다. 부산의 도반들과 함께 경흥사에 가서 조선시대의 영기단을 보았다.(그림 ①) 고맙게도 파손된 불단에서 3개의 목판을 취하여 현재의 영기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놀란 까닭은 이 불단의 영기문이 고구려 사신총 영기문의 전통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림 ②) 앞면의 것은 일반적인 조선시대의 형식으로 모두 영기문에서 만물이 생성하는 도상인데 다음 회에서 다룰 것이다. 측면의 것만 자세히 다루어 보고자 한다. 채색분석 한 도면에 설명을 붙이므로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글에서는 설명하지 않는다.(그림 ③, ④) 이 영기문 조각은 매우 입체적이어서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매듭에서 사방으로 발산하는 영기문을 표현했으므로 뒤에 숨어있는 것도 많다. 그래서 부분을 크게 그려서 채색분석 해 보았다.(그림 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중요한, 생명이 충만한 조형들을 그릇된 용어와 의미 없는 용어로 숨 막히도록 목을 졸라왔는가,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자신이 속한 문화가 강요하는 좁은 정신적 틀 안에서 스스로를 속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