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 원장의 한국미술의 틀린 용어 바로잡기

삼천대천세계에 충만한 여래란 원래 형상이 없다. 그런 까닭에 석가여래가 열반에 든 이래 500년 동안 원래 불상조각이나 불상회화가 없었다. 기원 전후에 불상조각이 처음 탄생한 것은 그러므로 석가여래의 가르침을 거역한 것이었다. 석가여래는 유언하기를 나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 유언을 거역한 것이다. 바로 그 형상 때문에 사람들은 여래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었다. 그러나 실은 옛 조형미술가(造形美術家)들은 참으로 절묘하게 여래의 모습을 표현하였는데, 역시 사람들은 그 조형미술의 여래를 인간의 모습으로 보았으므로 여래의 본질에 다가 갈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인간은 여래의 유언을 거역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불상조각과 불상회화가 여래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자세히 밝힐 것이다.

바로 그런 여래가 앉는 자리라는 것은 단지 단순히 앉은 대좌나 의자가 아닐 것이다. 여래가 화생(종교적 영묘한 탄생)하는 자리인 만큼 그 자리가 바로 여래의 근원이 된다. 만일 여래를 화생시키는 근원이 없다면 여래는 화생할 수 없다. 그러나 여래가 만물의 근원인데 더 이상 근원적인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앞으로 다루겠다. 우리는 그동안 그런 진리에 이르는 길을 끊임없이 방해한 악마 파순들과 같은 존재를 하나하나 타파해왔기 때문에 이제 그 진리의 세계,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다른 차원의 세계의 문을 통해 여래를 체험해 나갈 때가 되었고 새로운 용어를 만들 때가 되었다. 여래의 본질이란 우주의 대생명력이므로 그것을 영묘한 기운을 뜻하는 ‘영기(靈氣)’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어 동시에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여 나가고 있다.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래를 화생하게 하는 자리는 어떻게 조형적으로 만들어야 하는가는 옛 조형미술가의 고민이었을 것이며, 그 고민은 다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고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옛 장인의 몫이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 토목건축에 관한 일체의 규범을 정하여 놓은 〈영조법식〉 (營造法式)을 편찬해 놓았는데 나무가 아니고 전(塼)으로 수미좌를 쌓아올리는 방법을 볼 수 있다. 그 책에는 수미좌(須彌座)가 아니고 수미좌(須彌坐)라고 썼으므로 이것도 일종의 오류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13세기 기록에 수미단(須彌壇)이란 기록이 있어서 일본의 용어임을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전반기 일본 강점기 때 일본학자들이 우리 대좌를 보고 수미단이라 부른 이래 우리 학계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그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 즉 수미단이란 일본 용어였다! 그러면 수미단이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수미단이란 수미산(須彌山)에서 유래했다. 수미산이란 고대 인도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으로, 그 힌두의 우주관과 최고의 제석천(帝釋天)을 불교에 편입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주위에는 승신주(勝身洲)·섬부주(贍部洲:바로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우화주(牛貨洲)·구로주(俱盧洲)의 4대 주가 동남서북에 있고.....수미산의 하계(下界)에는 지옥이 있고, 수미산의 가장 낮은 곳에는 인간계가 있다. 또 수미산 중턱의 사방으로 동방에는 지국천(持國天), 남쪽에는 증장천(增長天), 서쪽에는 광목천(廣目天), 북쪽에는 다문천(多聞天)의 사왕천(四王天)이 있다. 또한 수미산의 정상에는 선견천(善見天)이 있고 선견궁(善見宮)이 있는데 제석천왕(帝釋天王)이 살고 있다. 이 수미산 위의 공중에는 욕계(欲界) 6천(六天) 가운데 네 개의 하늘과 색계천(色界天)·무색계천(無色界天)들이 차례대로 있다’ 그러나 방편일 뿐, 우리는 이런 설명에 현혹되어서는 진리로부터 점점 멀어져갈 뿐이다.

이 말을 따른다 해도 수미산 정(頂)은 제석천이 머물러 있는 곳이지, 여래나 보살이 앉는 자리가 아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을 그대로 막연히 여래가 앉는 자리라고 착각한 것을 그대로 사실로 알고 그 자리를 수미좌나 수미산으로 단정해 버리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오류인가. 그 첫 오류가 두 번째의 오류를 낳는다. 즉 수미산의 형태는 칠장사(七長寺) 괘불에서 보다시피 수미산은 허리 부분이 가늘고 위아래 부분이 넓다.(그림 ①) 그런데 마침 석불대좌에서 보다시피 아래 부분은 ‘기단-연꽃모양 영기꽃잎 대좌’(하대)-‘중앙부분은 팔각을 이룬 공간을 이루어 보살이나 천인이 머무는 곳’(중대)- ‘연꽃모양 영기꽃잎 대좌’(상대)를 이루어 위아래 부분이 넓고 가운데가 좁은 수미산 모양을 띠고 있다고 한다.(그림 ②) 따라서 여래가 앉는 자리가 수미산이 틀림없다는 주장을 더욱 강화하기에 이른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미단이란 용어가 이 땅에 정착해 버려 모든 사전에 그런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고대 문헌기록이나 사전이라고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얼마나 허망한 추리인가!

우리나라 고려시대 봉정사 대웅전이나 조선시대의 통도사 적멸보궁이나 동화사 대웅전의 거대한 자리 등에는 뜻밖에 ‘탁자(卓子)’라고 붓글씨로 쓴 예가 많고 그 밖에 기록에도 같은 용어를 쓰고 있다. 이들 기록들을 참고로 하여 마침내 ‘불탁(佛卓)’이란 용어를 만든 학자는 허상호씨(‘조선시대 불탁장엄 연구’ 동국대 석사학위 논문, 2002년)로, 처음으로 조선시대 거대한 대좌들을 광범위하게 연구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그 조선시대의 넓은 대좌를 불단(佛壇)이라고 일반적으로 부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기록에 탁자라는 용어가 있어도 허상호 씨는 탁자가 주는 부정확한 의미 때문에 불탁이라는 용어를 고집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에 아무리 탁자라는 기록들이 있더라도 조선시대 법당의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매우 넓은 구조물을 작은 규모의 탁자라고 부르기 주저하게 될 것이다. 불단 자체에 묵서(墨書)로 써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록은 그른 것이라 생각한다. 탁자 같은 일상 명칭은 전문용어가 아니다. 탁자(table)그것은 단어이지 용어가 아니다. 불탁이라고 해도 탁자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다.

이 글에서는 용어만 다루고 불단의 상징을 다루지 않았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불단의 전면과 좌우 면에 새겨진 조각을 보면 엄청난 상징이 숨어 있다. 그러므로 그 상징을 밝히면 수미산에서 비롯된 수미좌나 수미단이나, 탁자나 불단이 얼마나 일차원적인 용어인가 절감할 것이다. 나의 전공이 불상조각인데 그 대좌의 상징을 일흔 살 넘어서야 비로소 파악하게 되니 기쁘기 한이 없다. 다음에 그 엄청난 상징을 처음으로 밝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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