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미얀마, 본격적인 불교 진흥 나서다
근대 미얀마, 본격적인 불교 진흥 나서다
  • 노덕현 기자
  • 승인 2013.08.16 2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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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종교성과 불교평의회의 설치

1954년 미얀마 수도 양곤 까바에 파고다에서는 제6차 상좌부 경전 결집대회가 열렸다. 까바에 파고다 안에는 부처님 제자인 사리불 목건련 사리가 모셔져 있다. 또한 이곳은 상좌불교대학과 불교예술박물관 등 불교관련 시설이 있어 미얀마 정부의 신앙적인 권위이자 평화의 상징이다.
독립 이후 초대수상으로 선출된 우누는 미얀마를 불교와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룬 국가로 이끌려고 하였다. 그는 특히 불교를 중심으로 자유와 평화 그리고 행복이 넘치는 사회를 추구하려는 정책을 펼치려 하였다. 그는 국가차원에서 다방면으로 불교 진흥책을 추진했는데 그 중 종교성의 설치와 불교의 국교화는 세계불교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업적으로 꼽을 수 있다.

#정부공인 기관 종교성 설치

우누 정부는 1950년 정부기관으로 종교성(宗敎省: Ministry of Religious Affairs)을 설치한다.

미얀마 헌법 제21조 1항에는 ‘국가는 연방의 최대 다수가 신봉하는 종교로서 불교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한다’고 명시돼있다. 이러한 헌법정신에 걸맞게 불교를 진흥시키기 위한 기구가 필요했다.

미얀마에서 종교성이 형성된 것은 독립 이전인 1947년 경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식으로 미얀마 정부에 의해 종교성이 설립된 해는 1950년이다. 초대 종교성 장관으로는 네윈이 임명된다. 이후 오랫동안 군부 독재로 권력을 장악했던 네윈이 종교성 장관 출신임이었음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미얀마 정부 자료에 의하면 종교성의 설치목적과 역할은 다음과 같이 명시된다.

‘미얀마의 종교성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다. 그러나 상좌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공고히 하고, 진흥하며, 정화하는 것을 지원한다. 그리고 미얀마 관습과 전통문화를 향상시킨다.’

이 문구에서 종교성은 바로 불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진흥하려는 기구로 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종교성은 불교에만 국한해 지원하지는 않으며 불교를 포함한 가톨릭, 개신교, 힌두교 그리고 이슬람 등의 종교 집단에도 지원하고 있다.

종교성에는 여러 부속기관이 있는데 △종교분과(Department of Religious Affairs) △불교 포교와 불교진흥분과(Department for the Promotion And Propagation of Sasana) △국제 상좌불교 대학교(International Theravada Buddhist Missionary University) △국제 승가 위원회(State Sangha Maha Nayaka Committee)가 그것이다.

이중 종교분과는 미얀마의 종교를 지원하며 미얀마 전통과 문화유산을 발전시키고 보존하는 역할과 책임을 맞고 있다.

불교포교와 불교진흥분과는 미얀마 국내는 물론 외국에 이르기까지 불교포교를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다. 경전을 번역하고 불교전적들을 편집하는 일과 양곤과 만달레이에 국립경학대학교(The State Pariyatti Sasana University)를 지원하고 관리하는 일 등이다.

국제 상좌불교 대학교는 1998년 12월 9일 12명의 미얀마 현지인과 42명의 외국 학생들로 개교했는데 순수한 상좌불교를 선양하기 위해 설립됐다.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며 디플로마(diploma) 과정과 학부와 석사 그리고 박사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필자가 2013년 초에 이 대학을 찾았을 때 약 10명 정도의 한국유학생들이 석박사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현재 종교성은 미얀마 수도인 네피도 청사가 있으며 2013년 현재 장관은 우 싼씬(U Sann Sint)이 맡고 있다. 미얀마 불교와 종교성의 상징인 법왕(Dhammaraja)은 현재 우 꾸마라(U Kumara) 사야도이다. 정부 주도에 의해 설치된 종교성은 실제 운용 과정에 있어 정부의 불교 진흥책과 더불어 정부가 불교승가를 관리 통제하는데 이용되는 경향도 띄었다.

#불교지도자 모임, 불교평의회 발족

독실한 불교신자인 우누는 1951년 불교지도자들의 모임인 ‘미얀마 연방 불교평의회(Union of Burma Buddha Sasana Council)’를 설치한다. 미얀마 종교를 아우르는 종교성이 불교진흥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누는 불교평의회 활동을 통해 불교진흥을 가속화하려고 했다. 불교평의회는 80명 이상의 미얀마 불교의 대표성을 갖는 위원들로 구성됐다.

1951년 불교평의회는 종교장관인 네윈이 추인하는 형식의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이 성명에는 ‘정부는 과거 식민지 기간 동안 해체된 불교 기구를 방관하지 않으며 승가의 화합과 불교 교학과 실천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지원해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우누는 불교평의회를 통해 미얀마에 불교를 확고히 하고 더 나아가 외국에 까지 불교를 알리고자 했다. 불교평의회는 국내외에 포교원을 개설하고 이에 따른 연구시설을 갖추는 한편, 필기와 구술 등의 불교경전 시험을 시행하는 행사를 주최하는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불교평의회는 빠알리 경전의 미얀마어 번역과 발행을 지원하고 경전 시험을 주최하였다. 불교평의회가 주최하는 경전 시험에는 증서가 발행될 뿐만 아니라 큰 상금이 주어졌다.

필자는 미얀마 방문 시 인도에서 같이 수학하던 국제상좌불교대학교의 교수 스님 처소에서 몇 일간 머무른 바가 있다. 그 당시 놀란 점은 스님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빠알리 논서인 빳타나(Paṭṭhāna)를 독송하는 것이었다. 함께 머문 미얀마어 재가자 교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 경전 시험을 대비하는 것이었다. 현재에도 많은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경전과 논서를 열심히 암송하고 익힌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불교평의회의 경전 시험 보급이 이후 미얀마의 불교교학 수준을 높이는 데는 큰 효과를 발휘하였다는 것을 느꼈다.

불교평의회는 불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산간의 소수 민족들에게도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나섰다. 불교평의회는 종교성 공무원과 함께 포교사를 파견했다.

또 불교의 발상지이지만 불교가 사라진 인도에도 다시 불교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우누 수상은 인도불교의 부흥을 위해 인도의 소년을 미얀마로 유학시키고 다시 인도로 돌아가 포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이와 함께 교육과정에서 힌디어와 영어를 배우도록 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미얀마 출신의 스님들이 해외에 많이 진출한 이유는 이러한 노력에 힘입은 것이다. ‘미얀마’하면 위빠사나 수행을 연상시킬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마하시 위빠사나 센터 등에 해외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제6차 결집 바탕 마련한 우누

불교 국교화에 크게 공헌한 초대수상 우누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그의 인생에서 출가 경험이 일곱 번이나 될 정도였다. 그는 특히 깔라마(Kalama) 경전을 좋아했는데 깔라마 경전에서 부처님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자유롭고 비판적인 진리탐구의 정신을 강조하며 스스로 진리를 증명하기를 권한다. 이를 통해 우누의 종교관 또는 불교관을 이해할 수 있다.

우누의 업적 중 또 다른 하나는 제6차 결집의 바탕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1954년 미얀마 수도 양곤 까바에 파고다에서는 제6차 상좌부 경전 결집대회가 열렸다.

까바에 파고다 안에는 부처님 제자인 사리불 목건련 사리가 모셔져 있다. 또한 이곳은 상좌불교대학과 불교예술박물관 등 불교관련 시설이 있어 미얀마 정부의 신앙적인 권위이자 평화의 상징이다. 종교성이 네피도에 있지만 실무는 까바에 파고다에서 이뤄진다. 까바에 파고다에는 인도 산치 대탑에서 발굴된 부처님과 그의 제자인 사리불과 목련 존자 등의 진신 사리가 소장돼있다.

당초 사리는 영국의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햄이 발굴해 영국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인도가 영국으로 독립할 당시 사리를 반환 받았는데 우누는 인도 네루 수상에게 간청해 일부를 기증 받았게 된다. 이에 우누는 당시 수도인 양곤에 1952년 파고다를 건립한다. 바로 까바에 파고다다.

우누는 1961년 8월에 자신이 입안한 국가종교 진흥책 법안(the State Religion Promotion Act)을 국회에서 통과시킨다. 국가종교 진흥책에 따라 포살일이 공식적인 수행일로 정해졌다. 포살일에는 학교와 관공서가 쉬며 각 방송에서 종교적인 프로그램으로 이날을 기념한다. 진흥책에 따라 공공장소에서 음주가 금지됐다. 또 국립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불교경전을 공부하도록 하였으며 도축 또한 금지됐다.

하지만 우누는 1962년 네윈(1911~2002)의 쿠테타 이후 수감생활과 망명 생활을 전전한다. 그는 1995년 87세의 나이로 임종을 맞기 전까지 강연과 함께 불교관련 저서를 많이 남겼는데 소설은 물론 시나리오까지 다양했다. 우누는 불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청정한 승가, 둘째는 확고하게 화합하는 재가, 셋째는 모든 대중과 정부가 하나가 되는 것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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