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전속 신이한 이야기(33)-조달이 눈앞의 이익만 구하다

조달이라는 비구가 있었다. 총명하고 학문이 넓었으며, 12년 동안 죄선하여 정(定)에 들어 마음의 흔들림이 없었다. 열두 가지 두타(頭陀)에 애초부터 모자람이 없었고, 부정관(不淨觀)에 들어 들숨 날숨까지 분명하게 볼 수 있었으며, 세간 제일법으로부터 정법까지를 모두 낱낱이 분별하여 외우고 있었다. 그리고 부처님 말씀도 들은 바대로 그때그때 익혀서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뒤에 그 뜻이 점차 퇴보하면서 점차로 나쁜 생각을 내기 시작하여 남들의 공양이나 바라고 세간의 이익만을 탐내 집착하게 되었다. 어느 날, 조달은 세존 앞에 가서 예배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원하건대 신족(神足)의 도를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이것을 들은 뒤에 잘 수행하겠으며, 저로 하여금 신족을 얻게만 해주신다면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법을 전하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신족은 그만 두어라. 너는 어찌하여 나의 법 중에 중요하고 중요한 무상의 이치와 괴로움의 이치와 공의 이치와 무아의 이치, 이 네 가지 이치는 배우려 하지 않느냐?”
조달은 생각했다.
‘여래가 내게 신족의 이치를 설명해 주지 않는 것은 내가 자기보다 훌륭해지고자기가 나보다 못하게 되면 창피할까봐 그러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래를 버리고 사리불을 찾아가 신족의 도를 구하려 했다. 그러자 사리불은 조달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제 좀 그만 두시오. 그대는 왜 세존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법을 따르지 않습니까?”
조달은 또 생각했다.
‘이 사리불이란 자를 모두들 지혜제일이라고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반딧불을 해나 달에 견주는 것과 같다. 외우고 익힌 것으로 본다면야 감히 나를 비길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나도 신족의 도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사리불 따위가 어찌 알겠는가.’
그렇게 조달은 사리불을 떠나 이번엔 목련을 찾아가 신족의 도를 구했다.

삽화=강병호
조달의 얘기를 들은 목련이 말했다.
“제발 그만 하시오. 그대의 이야기는 내가 다 알고 있습니다. 범행을 닦기로 한 사람이 어찌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다른 생각만 하는 것이오? 부처님이 말씀하신 네 가지 이치를 깨닫고, 다시 4선(禪)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신족의 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목련의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난 조달이 생각했다.
‘목련이란 사람이 신족으로는 자기를 따를 자가 없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 까닭은 아마도 자기가 나보다 못해질까봐 두려워서일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자기가 갖고 있는 지금의 명성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며 신족의 도를 배우려 했지만 모두가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구나. 아우 아난이 들은 것도 많고 학문이 깊으니 덕망을 두루 갖추었으니 이제 그에게 신족의 도를 물어야겠다.’
조달은 아난을 찾아가 물었다.
“재가 듣자하니 그대가 신족을 도를 잘 안다 하니 나에게 그 도를 알려 주시오. 내가 신족을 얻게 되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곳곳에 불법을 전하겠습니다.”
조달의 얘기를 들은 아난이 신족의 도를 조달에게 말했다. 조달은 아난의 설명을 들은 뒤에 고요한 곳에 머무르면서 아난의 말대로 신족의 도를 닦기 시작했다. 허공 안에 머물 수 있을 정도로 도를 닦은 조달은 젖먹이 아이로 변하여 아사세 태자의 무릎에 나타나 젖먹이 짓을 했다. 그러자 태자는 이것이 조달의 몸임을 알면서도 하루 종일 장난을 치며 놀아주었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짝짜궁을 하기도 하면서 태자는 생각했다.
‘조달의 신족이야말로 부처님보다도 훌륭하구나. 이렇게 수없이 여러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사세 태자는 조달에게 날마다 5백 가마의 밥을 공양하고 때마다 모자람이 없게 공양을 했다. 그때 비구들이 아사세 태자가 조달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 조달의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들으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조달의 공양을 부러워하지 마라. 조달은 스스로 함정에 빠지고 다른 사람도 함정에 빠지게 하니, 둘이 다 같이 업을 짓게 될 것이다.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아직 때도 아닌 때에 과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는 것과 같고, 버새가 새끼를 배면 두 생명이 모두 위험한 것과 같다. 옛날에 한 무리의 수리 떼가 저마다 알을 까고서 새끼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만약 날기를 배워 허공을 날게 되었을 때, 땅이 쟁반만 하게 보이면 그 때부터는 더 높이 올라가지 마라. 사나운 바람을 만나면 너희들은 몸뚱이가 산산 조각나 죽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끼들은 어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너무 높이 날아올라가 날다가 목숨을 잃거나 집을 잃게 되었다. 그러니 너희들 비구는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 비구들아, 그러므로 마치 거북 떼와 같이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거북이 새끼들에게 말하곤 했다. ‘너희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어디어디에는 절대 가지 마라. 거기에는 사냥꾼이 숨어 있어서 너희들을 잡아 갈 것이다.’ 그렇지만 거북 새끼들은 그 말을 따르지 않고 그곳에 가서 함께 즐기며 재미있게 놀다가 사냥꾼에게 잡혔다. 간신히 돌아온 새끼에게 거북은 물었다. ‘너는 지금 어디서 오는 것이냐?’ ‘우리들은 서로서로 손을 잡고 그곳에서 놀았는데, 사냥꾼은 보이지 않고 긴 올가미가 우리 뒤를 따라오는 것이 보였어요.’ 거북이 새끼에게 말했다. ‘너희와 같은 선조들도 모두 그 올가미에 걸려 사냥꾼에게 잡혀가 죽었단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마치 배고픈 들개가 다른 짐승의 똥을 먹고 다시 똥을 누는 것처럼 조달 비구가 공양을 탐내는 것 또한 그와 같다.”
동국대역경원 발행 〈경률이상〉에서 발췌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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